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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 수도의 현재 지명과 위치
ⓒ 김기동
고구려는 처음 환인을 수도로 정하였으며 이곳에서 40년을 지낸 후, 제2대 유리왕 때 집안으로 옮겨 430년 동안 생활하게 된다. 그 후 제20대 장수왕 때 천도 한 평양에서 240년 동안을 지냈다.

▲ 방학봉,장월영의 [고구려,발해 유적지 소개]
ⓒ 방학봉,장월영
제10대 산상왕과 제11대 동천왕 시기에 수도를 다른 곳으로 옮긴 사실과 고구려 수도의 위치에 관한 많은 의견들은 논외로 한다.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환인과 집안은 압록강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울과 환인을 고속도로로 연결한다면 승용차로 3~4시간 내에 도착할 수 있다.

중국에 있는 고구려 유적 하면 맨 먼저 광개토대왕비를 생각하지만, 환인은 광개토대왕비가 있는 집안보다도 더 오래된 고구려의 도읍지다.

고구려의 첫번 째 수도였던 환인은 청나라를 세웠던 만주족 자치지역으로, 조선족 인구는 현재 만 명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환인지역에는 과거 비류수로 불렸던 혼강이 흐르고 있다.

고구려의 유적으로 산성이었던 오녀산성과 초기 적석총무덤군이 있는 상고성자, 평지성터로 추정되는 하고성자, 동명성왕의 무덤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미창구장군묘가 있다.

▲ 오녀산성의 모습
ⓒ 김기동
▲ 오녀산성의 모습
ⓒ 김기동
오녀산성은 고구려 초기의 산성으로 해발 820m 산 꼭대기에 위치한다. 남쪽은 낭떠러지이며, 사진의 뒤쪽인 북·동·남쪽 3면에 약 300m의 성벽이 있다. 오녀산성은 남북 1km 동서 300m로 축구장 약 300개 정도 크기의 산성이다.

▲ 오녀산성으로 올라가는 길목
ⓒ 김기동
고구려를 세운 추모왕이 처음에는 오녀산 산성에 살았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나라가 안정된 후에는 인근에 있는 하고성자 평지성으로 옮겨 가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오녀산성으로 올라가는 길은 경사가 너무 심하여 평상시에 사람이 살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 광개토대왕비(좌측) 삼국사기(우측)
ⓒ 김기동
고구려를 처음 세운 해모수와 하백의 아들 이름은 기록에 따라 다르다. 414년 장수왕이 만든 광개토대왕비에는 추모왕으로 기록되어 있고, 1145년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는 주몽과 동명성왕으로 기록되어 있다.

청나라의 봉금정책으로 인하여 광개토왕비는 1880년 전후의 시기에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으므로 1880년까지는 주몽으로 불려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아직까지도 주몽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지지만, 고구려시대에 만든 광개토대왕비문에 새겨진 추모왕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여야 한다.

또한 삼국사기에 기록된 동명왕은 고구려의 시조 추모왕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부여의 시조를 가르키는 말이다. 동명왕은 현재의 길림시 지역에 있었던 부여의 시조 였고, 추모왕은 고구려의 시조이다.

▲ 광개토대왕비(좌측) 삼국사기(우측)
ⓒ 김기동
추모왕은 어디에서 왔을까?

414년 장수왕이 만든 광개토대왕비에는 북부여에서 왔다고 기록되어 있고, 1145년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는 부여왕 해부루와 금와가 도읍을 동부여로 옮겼다고 기록되어 있다.

환인의 북쪽에 위치한 길림시에 있는 동단산 평지성터에서 발굴된 부여 귀고리와 환인의 무덤군에서 발굴된 귀고리의 유사성이 발견됨에 따라 추모왕이 북부여에서 환인으로 왔을 것으로 생각된다.

▲ 오녀산성에서 바라본 혼강(비류수)
ⓒ 김기동
북부여의 도읍이었던 길림시에서 환인까지의 거리는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 정도이다. 2000년 전의 교통수단을 생각한다면 추모왕이 이동 중에 겪었을 어려움을 미루어 짐작 할 수 있다.

환인에 도착한 추모왕도 오녀산성에서 비류수를 바라보며 새로운 나라를 세우겠다는 의지를 불태웠을 것이다. 북부여 금와왕과 대소왕자로부터 도망하여 환인에 도착한 추모왕은 처음에 비류수가에 초막을 짓고 생활하지만 3년 후인 추모왕 4년 7월에 성곽과 궁실을 건축하면서 나라의 안정을 도모하게 된다.

방학봉 교수와 함께 한 고구려 여행

중국 연변대학 역사학부 발해사 연구소 제1대 소장 역임 후 현재 저술활동 중인 방학봉 교수님과 함께 2007년 1월 25일부터 2월 1일까지 7박8일 동안 중국 동북부에 위치한 고구려 유적지 연변, 이도백하, 안도, 통화, 환인, 집안를 여행 하게 되었다.

78세의 연세와 아픈 다리에도 불구하고 저와 동행하며 많은 가르침을 주신 교수님께 다시 한번 머리 숙여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이 글은 방학봉, 장월영의 <고구려,발해 유적지 소개 1995년>와 강맹산 편저 <고구려의 발자취 1982년>에 기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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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중국사람이야기>,<중국인의 탈무드 증광현문>이 있고, 논문으로 <중국 산동성 중부 도시 한국 관광객 유치 활성화 연구>가 있다. 중국인의 사고방식과 행위방식의 근저에 있는 그들의 인생관과 세계관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어, 중국인과 대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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