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국립공원입장료가 폐지된 후에도 똑같은 금액의 문화재관람료를 받는 천은사 매표소.
ⓒ 이윤기
지난 11일, 함께 일하는 교사들과 함께 지리산 노고단에 다녀왔습니다. 하동군 화개면 의신마을에서 첫날밤을 자고, 둘째 날에는 자동차로 성삼재까지 올라가서 노고단에 다녀왔습니다.

@BRI@예전에는 쌍계사 위편에 있는 의신마을에 갈 때도 국립공원 입장료를 내야 했는데, 새해 들어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된 후 매표소는 아무도 지키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노고단에 오르려고 나선 둘째 날, 노고단 도로 입구에 있는 '천은사 매표소'에서 문화재관람료를 내라는 요구를 받았습니다.

지리산 천은사는 노고단 도로 입구 왼편에 있는 제법 큰 절입니다. 저는 여러 번 노고단 도로를 이용해서 성삼재까지 차를 타고 지나간 적이 있지만, 한 번도 천은사에 들어가 본 적은 없습니다.

저는 텔레비전 뉴스에서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된 후 문화재관람료를 징수하는 사찰이 있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지만, 국립공원 안에 문화재가 있으면 문화재관람료만 따로 징수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국립공원입장료 폐지, 그러나 더 많은 관람료 내야 하는 상황

그런데 이곳 천은사는 사정이 다릅니다. 자동차로 천은사 매표소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문화재인 '천은사'를 보러가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로 성삼재까지 올라가서 지리산 노고단에 가려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그런데도 천은사 측에서는 국립공원입장료가 폐지된 후에도 똑같은 장소에서 문화재관람료를 받을 뿐만 아니라, 천은사 관람 목적이 아니라 단지 노고단에 가기 위해 지나가는 등산객들에게도 변함없이 문화재관람료를 징수하고 있었습니다.

작년까지는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입장료 1600원을 받았는데, 새해부터는 천은사 직원들이 문화재관람료로 명목만 바꿔서 똑같이 1600원을 받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인근에 있는 화엄사 매표소에선 작년까지 2200원 받다가 올해부터는 3000원으로 인상된 요금을 받는다고 합니다. 국립공원입장료를 폐지하고 나서 더 많은 관람료를 내야 하는 상황입니다.

▲ 일주문에서 시암재까지 모두 문화재보호구역이라고요?
ⓒ 이윤기
렌터카를 타고 천은사 입구를 지나는데, 매표소에서 천은사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달려 나와서 차를 세우더군요. 그러고는 문화재관람료를 내고 가야 한다고 막무가내로 막아섰습니다.

"보다시피 우리는 노고단 등산을 하러 왔다, 천은사 구경을 하려고 온 것이 아니다,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됐으니 천은사 구경을 온 사람들에게만 입장료를 받아야하는 것 아니냐?" 하고 따졌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막무가내였습니다. "당신들이 방금 지나온 노고단 도로 입구의 일주문부터 '시암재'(성삼재 아래에 있는 주차장)까지는 모두 문화재보호구역이다. 문화재보호구역을 지나가기 때문에 문화재관람료를 내야한다."

한참 따지고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문화재관람료를 내고 성삼재로 올랐습니다. 매표소를 지나 왼쪽에 있는 천은사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자동차로 노고단 도로를 올라갔습니다. 노고단 도로를 이용해서 성삼재로 올라가는 동안, 천은사에 속해있는 암자인지는 모르겠으나, 두 군데 작은 사찰이 있었습니다. 물론 우리는 이곳에서도 차를 세우지 않고 지나쳤습니다.

공짜로 국립공원 시설 이용하려니 미안했습니다

눈이 종아리까지 쌓인 노고단을 다녀오면서, 동파되지 않도록 국립공원공단 직원들이 신경 써서 관리하고 있는 화장실도 이용했고 노고단 대피소에 있는 취사시설도 모두 공짜로 이용했습니다. 오히려 국립공원 시설을 공짜로 이용하려니 미안한 마음이 들더군요.

그러고 나니 천은사에 주고 온 문화재관람료가 아깝고 억지로 낸 게 억울하다는 마음이 더 들었습니다. 천은사 일주문을 지나오긴 했지만, 노고단 도로를 천은사에서 만든 것도 아닐 텐데 자동차를 타고 도로를 지나온 것만으로 '문화재관람료'를 받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 '아름다운 절'이라는 예쁜 글씨의 입간판이 왠지 초라해 보입니다.
ⓒ 이윤기
노고단을 다녀오는 길에 만난 여러 방문객들도 저와 같은 문제의식을 품고 있었습니다. 한결같이 "도대체 천은사 구경은 하지도 않았는데, 절 옆으로 차를 타고 지나오는데도 '문화재관람료'를 내고 지나가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좀 더 심한 사람들은 "중들이 염불보다 잿밥에 눈이 멀어서…"하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저 역시 절집 옆 도로를 차로 지나가는 것만으로 '문화재관람료'를 받는 절집 인심(?)을 대하면서 길가에 세워놓은 '아름다운 천은사'라는 팻말이 참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에 절집 인심이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지리산에 다녀와서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천은사뿐 아니라 여러 곳에서 문화재관람료 징수 때문에 마찰이 일어나고 있다고 하더군요. 올해 6월까지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사용하던 매표소를 그대로 이용하는 동안엔, 문화재관람은 하지 않고 국립공원에만 가겠다는 방문객들과 다툼을 벌일 게 분명해 보입니다.

6월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컨테이너 박스'만 하나 같다놓아도, 문화재관람을 하는 관람객들과 국립공원을 찾는 일반 방문객들을 구분해 '문화재관람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겨울이라서 매표소 이전 공사를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어설픈 핑계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부처님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컨테이너 박스' 하나면 해결될 것을

천은사 스님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천은사 직원들의 말처럼 일주문에서 시암재까지 이어지는 도로가 문화재보호구역이라면, 그건 누가 정한 건가요? 정말로 문화재보호구역에선 단순히 그 지역을 차로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관람료를 받아도 되는 건가요? 부처님도 그렇게 생각하실까요?

저도 약간 억지를 섞어 볼까요? 옛말에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는데, 산이 싫으면 절이 떠나야하는 것 아닐까요? 절이 있기 전부터 그곳에 이미 산이 있지 않았을까요? 아니, 산이 있어서 그곳에 절을 세운 것 아닐까요? 원래부터 거기에 있던 산을 보러 가는데, 왜 절을 보는 값을 내라고 할까요? 절에서는 산 말고 절만 보러 가는 사람에게 절 보는 값을 받아야 마땅하지 않나요?

문화재관리 비용문제, 사찰소유지의 국립공원 포함 문제 등 정부와 갈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만, 오히려 갈등을 잘 해결하기 위해서도 국립공원을 방문하는 국민들을 볼모로 잡는 일을 중단해야 할 것입니다. 문화재를 관람하는, 문화재를 찾는 사람들에게만 문화재관람료를 받는 합리적인 분리 징수 방안이 마련돼 산을 찾는 등산객들과 벌이는 불필요한 다툼이 하루 빨리 해소되기를 바랍니다.

태그:#국립공원입장료, #문화재관람료, #입장료 폐지, #노고단, #천은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마산YMCA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대안교육, 주민자치, 시민운동, 소비자운동, 자연의학, 공동체 운동에 관심 많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2월 22일상(2007), 뉴스게릴라상(2008)수상, 시민기자 명예의 숲 으뜸상(2009. 10), 시민기자 명예의 숲 오름상(2013..2) 수상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