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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을 나서는 어머니, 마음은 벌써 장터에 가있다.
ⓒ 강기희
아침 7시. 방문이 열린다. 어머니다. 슬그머니 이불을 잡아끈다. 작은 소리로 아들을 깨운다.

"장터에 태워다 주고 다시 자라. 응?"

못 들은척 애써 코 고는 소리를 낸다. 문이 닫힌다. 이미 깬 잠이다. 일어날까 하다가 그냥 누워있기로 한다. 10분 후 다시 방문이 열린다. 방금 전과 같은 방법으로 아들을 깨운다.

"아이고, 어머이. 아직 새벽이여. 새벽!"
"벌써 8시 다 됐다. 가자."

시간은 7시 15분이다. 이 시간을 어찌 8시로 볼 수 있단 말인가. 8시라 해도 이른 시간이다. 더욱이 오늘은 추울 거라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경험상 어머니의 성화를 견디는 건 무리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어머니의 마음은 벌써 장터에 가 있고

@BRI@어머니는 벌써 준비를 마쳤다. 보따리는 지난 밤에 다 싸놓았고, 신발까지 방안에 들여놓고 있었다. 유리창엔 성에꽃이 피었다. 춥다는 얘기다. 성에꽃은 장미꽃을 닮았다. 요 며칠 성에꽃이 계속 피었다.

장터에 마땅하게 앉을 자리도 없는 어머니였다. 자리가 없는 처지에 일찍 나가본들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일 밖에 없다. 차라리 느지막이 나가서 빈 자리를 차지하는 게 나을성 싶지만 어머니의 마음은 이미 장터에 가 있다.

옷을 챙겨입고 밖으로 나간다. 춥다. 보따리는 네 개다. 가벼운 보따리는 살빠진 어머니 같다. 자동차 앞 유리창에 얼음이 잔뜩 내려앉았다. 기구를 이용해 벅벅 긁어 작은 창 하나를 만들었다. 이제 장터로 출발한다.

길은 곳곳이 눈길이다. 아니 빙판이라 해야 옳겠다. 시야도 불편한데 길마저 미끄럽다. 속도를 최대한 줄인다. 잠이 덜 깬 차량이라 불안하다. 지난 번 눈길에 장터 나가다 사고난 기억이 그대로 남아있다.

불안한 아들과 달리 어머니는 표정이 밝아 보인다. 지난 연말 이후 감기로 인해 몇 번의 장날을 걸렀다. 아들은 어머니가 답답하긴 하겠지만 이번 장날에도 쉬었으면 했다. 오늘 추위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 장터로 가는 길, 빙판 길이다.
ⓒ 강기희
노인들은 몸을 한번 상하면 추스르기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런 아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머니는 즐거운 표정이다.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오늘은 어제 아침보다 덜 추운 거 같은데."

어머니가 혼잣말로 선수를 친다. 차 안에 있으니 바깥 날씨를 짐작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계곡을 빠져나가자 큰 강이 나타난다. 동강이다. 강은 꽁꽁 얼어있다. 물도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얼음 이불을 덮었다.

정선읍내에 도착할 즈음 해가 떠오른다. 햇살은 맑고 눈부시다. 앞 유리창에 낀 얼음이 조금씩 녹아든다. 햇살을 받은 얼음이 반짝인다. 장날이지만 거리는 조용하다. 출근하는 차량이 가끔씩 눈에 띄는 정도다.

장터 곳곳에 장작불이 피워져 있다. 일찍 도착한 장꾼들이 추위를 피하고자 만든 불이다. 빈 터가 많았지만 어머니가 앉을 자리는 아니다. 빈 자리에 보따리를 놓는다.

"어여 들어가라."

어머니가 아들의 등을 떠민다.

"어머이, 바람이 많이 부는데 그냥 들어갈까?"
"싫다. 난 여기 있을란다."

어머니의 고집을 꺾을 사람은 지구상에 아무도 없다. 이럴 땐 아들이 져주는 게 낫다. 어머니를 장터에 두고 집으로 돌아온다. 마음이 편치 못하다.

어머니 삶을 이해하는 데 걸린 시간, 두 달

▲ 장터에 나간 어머니, 감기로 인해 얼굴이 핼쓱해졌다.
ⓒ 강기희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 방 아궁이를 치운다. 아궁이엔 재가 가득하다. 나무를 땔 줄만 알았지 치울 줄은 모르는 어머니다. 그나마 혼자 손으로 나무를 때는 것만도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만다.

하루 한 번씩 때는 군불은 아들이 도와주지 않는다. 특별한 경우를 빼면 어머니 혼자 해결하게 둔다. 할 일을 빼앗는 것도 불효란 생각에서다. 세탁기가 없는지라 빨래 같은 건 아들이 짜준다.

어머니가 없는 틈을 타 방 청소도 한다. 어머니는 방에 뭔가를 죽 늘어놨다. 정리가 안되는 어머니다. 뭔가를 치우라고 하면 들어서 옆자리에 그대로 놓는다. 치우나 마나지만 어머니 딴에는 치웠다고 한다. 그런 일 정도는 아들도 그냥 넘어간다.

어머니와의 관계가 조금씩 익숙해지는 것이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삶을 이해한다는 것과 같다. 처음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이러저러한 일로 다투기도 했다. 모자간에도 삶의 기준이 다르다는 걸 알아차리는데 두어 달의 시간이 필요했다.

떨어져 생활한 세월이 너무 길어 그렇다. 어머니의 생활에 익숙해지니 아들이 게을러진다. 매일하던 청소도 며칠에 한 번씩 한다. 뭔 청소를 매일하냐 라는 말을 듣고 난 이후였다. 생각해보니 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집을 매일 청소할 이유도 없었다.

하루 벌이 7000원, 그 돈이면 삼겹살이 한 근

▲ 장터에 나온 할머니, 장사가 안 되는지 담배만 태운다.
ⓒ 강기희
오후 시간 장터로 간다. 햇살이 내리쬐지만 따스함을 전해주지 못한다. 장터는 날씨 탓인지 파장 분위기다. 어머니는 보따리를 싸놓고 아들을 기다린다. 추운지 얼굴이 벌겋다.

보따리를 차에 싣고 장터 구경을 한다. 고등어 한 손과 두부 한 모를 산다. 만들어 파는 만두도 5000원어치 산다. 반찬 없을 땐 만두가 제격이다.

"어머이, 오늘 얼마 벌었어?"
"한… 만원 벌은 거 같다."

어머니의 말에 힘이 빠져있다. 장사가 안됐다는 거다. 하긴 보따리에 있는 거 다 판다 해도 10만 원어치도 안 되는 밑천이다.

"추워서 그런지 장사가 통 안돼."

아들이 생각해도 안 될 것 같은 날씨다. 이런 날씨에 누가 장터 구경을 나올까 싶다.

"점심은?"
"팥죽 사먹었다."
"그럼 순수입은 7000원이네? 삼겹살 한근 벌었네."
"장사라는 게 되는 날도 있고 안 되는 날도 있지 뭐."

어머니는 그렇게 말은 하지만 마음이 편치는 않는 모양이다. 가지고 간 냉이를 남겨온 것 때문일 것이다.

"나 냉이국 좋아해. 그러니 몇날 며칠 냉이국 먹지 뭐."
"그래, 그러자꾸나."

어머니의 감기가 돋는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코를 자꾸만 훌쩍거린다. 다음 장날은 절대로 나가지 말라고 말한다. 어머니는 "글쎄, 날씨가 어떻게 될 지 모르니 두고보지 뭐" 한다.

어서 날씨가 풀렸으면

▲ 자반고등어, 어릴 적 생선이라고 하면 '자반고등어' 밖에 몰랐다.
ⓒ 강기희
오늘 어머니가 벌은 돈 7000원은 엄밀하게 따지면 순수입은 아니다. 농사를 지은데다 하나하나 손질한 정성을 생각하면 수입이라고 할 수도 없다.

더구나 장터에 머문 시간까지 더하면 집에서 등 지지면서 쉬는 게 훨씬 낫다. 이런 날은 왕복 40㎞를 오고간 아들의 수고로움은 덤이다.

하지만 그런 셈법은 아들의 셈법일 뿐이다. 어머니의 셈법은 아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 이상의 플러스 알파가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바깥 나들이다. 산촌 생활을 답답해 하는 어머니로서는 장터 구경을 하는 것만 해도 그 값을 하고 남는다.

아들은 어머니의 그런 마음을 알기에 장터 행을 마다하지 않는다. 다음 장날은 날씨가 풀려 어머니의 얼굴이 활짝 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덧붙이는 글 | 강원도 정선 5일장은 끝자리가 2일, 7일인 날 열립니다.


태그:#정선 5일장, #5일장, #장터,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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