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파란 하늘 바람을 따라 자유롭게 흘러가는 구름을 보면 마음속에서는 나도 저렇게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비록 지금은 비행가 있지만 자유롭게 새처럼 나는 꿈은 인간의 영원한 로망일지도 모릅니다.
ⓒ 최형국
새처럼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꿈은 라이트형제에 의해 1903년에 이뤄졌습니다. 자전거가게를 운영하던 36살의 윌버 라이트와 32살의 오빌 라이트 형제가 만든 플라이어호가 비록 12초 동안이지만 36m를 기계의 힘을 빌려 나는 순간이었습니다.

물론 1785년에 프랑스의 몽골피에 형제가 더운 공기를 채운 기구를 이용해 하늘을 난 것이 처음이지만 인간의 의지가 아닌 바람의 방향에 따라 갈 길이 정해진 기구였기에 자유롭진 못했습니다. 그런데 과연 조선시대에도 하늘을 날려고 하는 꿈을 가진 사람이 있었을까요? 만약 하늘을 나는 물체를 만들었다면 그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임진왜란의 시작, 그리고 그 처절한 몸부림

@BRI@1592년(선조 25년) 4월에 15만이란 엄청난 대군이 조선을 침공했습니다. 고니시 유키나가를 선봉으로 하는 1군은 부산을 함락, 가토 기요마사와 구로다 나가마사 등과 합세하여 반도를 세 갈래로 나누어 파죽지세로 침공하기에 이릅니다. 이를 방어하던 조선군은 그 엄청난 군세에 마음이 쪼그라들어 허겁지겁 도망치기에 바빴습니다.

물론 끝까지 목숨을 걸고 왜군들의 전투를 치른 장군들과 병사들도 있었지만 그들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당시 백성들의 고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으며 이때부터 7년에 걸친 전란은 온 국토와 백성들을 처절한 몸부림 속에 몰아넣었습니다.

비거(飛車)가 하늘을 날다

그해 10월, 경상도지역을 거의 장악한 왜군들은 풍부한 식량이 생산되는 전라도 지역을 공격하기 위해 그 길목인 진주로 약 2만여명의 왜군들이 공격을 감행합니다. 이때 진주목에는 김시민 장군을 비롯해 약 3800명의 군사들이 목숨을 걸고 진주성을 지키는 전투를 치릅니다. 바로 이때 '하늘을 나는 수레' 비거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비거에 대한 이야기는 그때 당시 조선의 사료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일본측 사료인 <왜사기>에 등장하는데, 전라도 김제의 정평구라는 사람이 비거를 발명하여 진주성 전투에서 사용하여 왜군들이 큰 곤욕을 치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비거의 주된 용도는 포위된 진주성과 외부와의 연락을 담당하였습니다.

특히 1700년대 후반 여암 신경준의 문집 <여암전서> 권18에는 "임진 연간에 영남의 읍성이 왜적에게 포위되었을 때, 어떤 사람이 성의 우두머리에게 비거의 법을 가르쳐 이것으로 30리 밖으로 날아가게 하였다" 라고 하여 인명 구조작전에도 동원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진주성은 관민이 함께 결사항전으로 전투에 임했지만 왜군의 파상적인 공격에 무너지게 됩니다.

▲ 비행기를 타고 하늘 높이 올라가 구름 위를 날면 땅 위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행복한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조선시대에도 하늘을 날려고 하는 꿈을 가진 사람이 있었을까요? 만약 하늘을 나는 물체를 만들었다면 그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 최형국
비거는 어떻게 생겼을까?

그렇다면 하늘을 자유롭게 날았던 비거의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단순히 열기구처럼 둥근 모습이었을까요? 아니면 요즘의 행글라이더처럼 바람을 타고 날수 있도록 새의 모양을 했을까요?

그 구체적 모습에 대한 이야기는 이후 한참의 시간이 흘러 1800년대 중엽에 실학자 이덕무의 손자인 이규경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에 그 비밀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오주연문장전산고>는 그의 할아버지 이덕무의 영향을 받은 책으로 전체 60권 60책의 백과사전처럼 다양한 내용의 지식을 싣고 있습니다. 그 중 배와 수레에 대한 편에 <비차변증설>이라하여 비차의 모습과 움직임에 대해 자세히 적고 있습니다.

"전주부 사람 김시양이 말하기를 노성 지방에 사는 윤달규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명재의 후손이다. 이 사람이 정밀하고 교묘한 기구를 만드는 재간이 있었고 비거를 창안하여 기록하여 두었다… 이러한 비거는 날개를 떨치고 먼지를 내면서 하늘에 올라가 뜰 안에서 산책하듯이 상하 사방을 여기저기 마음대로 거침없이 날아다니니 상쾌한 감은 비길 바 없다.

비거는 우선 수리개와 같이 만들고 거기에 날개를 붙이고 그 안에 틀을 설치하여 사람이 앉게 하였다. 물에서 목욕하는 사람이 헤엄치는 것처럼 또한 자벌레나비가 굽혔다 폈다 하는 것처럼 하여 바람을 내면서 날개가 저절로 떠올라가니 잠깐 동안에 천리를 날아다니는 기세를 발휘하여 십여 일의 시간을 단축하게 된다. 이것은 큰 붕새가 단숨에 삼천리를 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 기구에는 늘어진 줄이 종횡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그것을 신축하여 기구를 움직이며 가죽주머니를 두드려서 바람을 내면 두 날개가 움직이면서 거침없이 대기 위에 떠서 그 기세가 대단히 거세차게 된다. 그런즉 생각이 옳게 된 것이요 이치가 그 속에 있는 것이다…"
- <오주연문장전산고 인사편 기용류 주거편>


이 기록에 의하면 비차는 단순히 바람만을 이용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모양은 새와 같고 자벌레나비가 몸을 굽혔다 폈다 하듯이 몸으로 운동에너지를 만들어 그것을 통해 날개를 퍼덕거려 비행하는 방식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 모습이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위를 날던 비거의 모습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이 비거에 대한 자료는 찾을 수 없으며, 이미 몇 백년의 시간이 흐른 뒤 여러 가지 이야기를 종합하여 이규경이 기록한 것이기에 그 모습이 같을 것이라고는 확증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조선시대 사람들 또한 하늘에 대한 열망이 간절했을 것이라는 것은 확신할 수 있습니다.

비거(飛車) 이외에 비선(飛船)도 있었다

자, 지금까지 하늘을 자유롭게 날았던 비거에 대한 이야기는 잘 보셨나요? 그런데 조선말기 흥선대원군의 집권기에 비거가 아닌 비선(飛船)이라는 또 다른 비행물체(?)의 이름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비선은 날아다는 배일까요? 아쉽게도 비선은 서구 열강들의 강압에 긴장한 흥선대원군의 명에 의해 만들어진 어이없는 비운의 배였습니다.

당시 프랑스 선교사들을 처형한 데 대한 보복으로 프랑스 동양함대의 강화도 기습이 있자 흥선대원군은 서양의 신식무기에 대항하는 신무기를 개발하려 합니다. 그래서 전국에 방을 붙여 신무기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게 되고 그 중 발탁된 것이 바로 비선(飛船)입니다.

비선은 학과 두루미 날개를 수집해 배에 아교로 붙여 놓은 것으로, 포탄을 맞더라도 주춤하고 뒤로 물러가기만 할 뿐 물 속에 가라앉지는 않는다라고 하여 서양의 군함에 맞서도록 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완성된 비선은 상상 속에서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고사하고, 물에 띄우는 순간 아교가 녹아 침몰되었습니다.

정말 어이없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지만 그때 당시 얼마나 절박했으면 하는 생각에 쓴 웃음만이 나올 뿐입니다. 이렇게 서양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부족해서 이후 일제에 의해 나라를 잃는 슬픔이 생겼을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하늘을 나는 비거나 물 위를 새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비선이나 그 시작은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에서 출발하여 오늘날 비행기나 쾌속정처럼 발전하였기에 역사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상상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덧붙이는 글 | 최형국 기자는 중앙대학교 사학과 박사과정으로 전쟁사 및 무예사를 공부하며 홈페이지는 http://muye24ki.com 입니다.


태그:#비거, #비선, #비행기, #조선시대 비행기, #정평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무예의 역사와 몸철학을 연구하는 초보 인문학자입니다. 중앙대에서 역사학 전공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경기대 역사학과에서 Post-doctor 연구원 생활을 했습니다. 현재는 한국전통무예연구소(http://muye24ki.com)라는 작은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