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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투아니아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전통십자가. 그 공예기술은 유네스코에 의해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다. 스바스티카가 많이 새겨져있다.
ⓒ 서진석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전통은 근대에 들어와 만들어진 '발명품'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여러 상징과 영웅들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수 백년, 수 천년간 민족의 입을 통해서 전해져 내려온 전통과는 아무런 상관 없는, 정치적 의도에 의해서 통제되는 국민통합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해석하기에 따라서 상징이란 정말 쓰잘데기 없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국민 통합에 있어 아주 중요한 수단이라는 상반된 이해가 가능하다. 그만큼 상징이 한 사회에서 가지고 있는 영향력과 효과는 복잡 미묘하다. 요즘 발트 3국은 그런 상징 때문에 좀 시끄럽다.

현재 에스토니아 국회에서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나치가 사용하던 문양과 소련의 상징의 공공장소 사용을 법률로 금지시키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나치의 문양은 불교의 상징으로 익숙한 만(卍)자를 연상시키는 모습이고, 소련 상징은 붉은 바탕에 망치와 낫을 엇갈려 놓은 깃발을 말한다.

에스토니아 법무부 장관은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이 상징이 모든 장소에서 사용이 금지되는 것은 아니다. 공연이나 예술활동 같은 창조적 활동에서라면 제약 없이 사용이 가능하지만, 공공장소에서 사용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주거나 질서를 깨뜨릴 때는 처벌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BRI@독일과 러시아 사이에서 그렇게 많은 고생을 겪은 에스토니아에서 역사적 비극과 전쟁의 상징물을 금지하는 것이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스러워 보이는데, 그것이 어떻게 해서 문제가 된다는 말인가.

'나치문양' 바라보는 발트 3국의 다른 시선

히틀러의 나치가 2차대전 중 사용한 스바스티카 (Svastika)는 불교의 만자와는 엄연히 다르다. 스바스티카는 흔히 나치의 전유물로만 알고 있지만, 그것은 발트3국, 인디언, 힌두인, 불교신자들, 켈트인, 바이킹, 집시,앵글로색슨,아즈텍인, 페르시아인 등 여러 문화권에서 3000년이 넘게 사용되어 온 상징이다. 그 의미는 민족마다 다양하게 해석하고 있지만, 주로 태양과 범할 수 없는 지고의 권위 등을 의미하는 표시로 사용된다.

'스바스티카(Svastika)'라는 단어는 고대 산스크리트에서 나온 말로 선(善)을 의미하는 'SU'와 존재를 의미하는 'ASTI', 그리고 'KA'라는 접미사가 결합되어 생긴 단어다. 독일 나치들이 그들의 트레이드마크로 사용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 상징은 발트3국에서 '태양신'을 상징하는 지극히 긍정적이고 일반적인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 2차 대전 전까지 라트비아에서 사용되던 라트비아 최고 훈장.
1차대전 이후 잠시 독립을 획득했던 라트비아는 당시 공화국 시절 수여되었던 최고의 훈장에 스바스티카를 사용하고 있었고, 리투아니아와 에스토니아는 스바스티카로 목걸이, 장신구 등을 만들어 차고 다녔으며, 그들의 고대의 신을 섬기던 성스러운 자리엔 언제가 그 표시가 등장할 정도로 고귀한 힘과 성스러움을 상징하던 최고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선의 상징을 증오의 상징으로 둔갑시킨 히틀러

독일에서도 고대 아리안 민족으로부터 이어져 수 백년 간 스바스티카를 사용해왔으며, 19세기 중엽에는 독일민족주의자들에 의해 깃발, 학교, 관공서, 포장 등에 광범위하게 사용됐다.

1920년, 히틀러는 나치들의 정당 깃발에 '그들의 투쟁을 상징'하고 '포스터로서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될만한' 무언가를 찾기 시작하다가 그 해 8월 7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회의에서 붉은 바탕 가운데 흰 동그라미 안에 새겨진 스바스티카를 공식 엠블렘으로 공표하기에 이른다. 나치의 스바스티카는 특별히 '철십자'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 후 스바스티가가 새겨진 나치 깃발을 앞세운 히틀러의 군대는 온 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고, 이후 그 성스럽고 지고한 의미가 담겨있던 스바스티카는 본래의 의미와는 정반대로 '증오와 폭력'의 상징으로 변질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그냥 생일파티에서 아무 생각 없이 입었을 뿐인데

▲ 나치 깃발을 착용하고 나타난 해리 왕자를 보도한 <선>지.
이 상징과 관련된 문제는 이전에도 여러 번 불거진 적 있다. 2005년 1월 17일 영국 신문 <선(Sun)> 1면에 게재된 친구 생일잔치에 초대받은 웨일스의 해리 왕자 사진이 유럽에 큰 파장을 몰고 온 적이 있었다. 오른손에 술잔을 들고 있는 그의 왼팔 소매에 큼지막하게 독일 나치 표시가 걸려있던 것이다.

그 사진이 영국 매체에 크게 보도된 후 유럽 각국은 벼락을 맞은 듯 시끄러웠다. 독일을 비롯한 영국, 프랑스 등은 해리 왕자의 행동에 맹비판을 가했다. 언론의 뭇매를 맞은 해리 왕자는 며칠 뒤 자신의 옷차림에 대해서 공식적인 사과를 해야만 했다.

그 사건 이후 유럽연합 의회 내 유럽기독민주당연합회와 자유당연합회 등 우익정치인들은 이번 기회를 통해서 전 유럽에 나치상징의 사용이 금지될 수 있도록 법적인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이르렀다. 당시 그 사안은 전반적인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채 보류됐지만, 발트 3국은 그 사건을 보는 태도가 다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런 배경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그러나 이번엔 유럽연합의 권고가 아닌 에스토니아 자체적인 결정이라는 데에, 그때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이런 역사적인 중요성을 뒤로 하고 뒤늦게 그 상징을 금지시키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에스토니아인과 러시아인, 상징을 둘러싼 지루한 전쟁

그것은 바로 에스토니아 내에서 일고 있는 러시아 소수민족과의 소리 없는 분쟁 때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에스토니아 전체 인구 중 약 30%를 차지하는 러시아인들와 에스토니아인들은 에스토니아의 독립 이후에도 여전히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한 그릇에 섞인 물과 기름처럼 부유(浮遊)하기만 하고 있다.

올해 에스토니아에서 가장 큰 문제로 떠올랐던 청동 군인 동상이 그 사실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어쩌면 아무 가치도 없어 보이는 단순한 청동동상이지만, 그것이 가지고 있는 상징적 권위로 인해 두 민족간에 보이지 않는 반목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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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거나 질서를 훼손하는 차원에서 소련과 나치 상징의 공공장소 사용을 금지하는 법령이 시행되면 불필요한 분쟁을 줄여볼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숨어있다.

▲ 작년 3월 16일 라트비아에서 열린 반라트비아 시위에 참가한 러시아인이 속에 받쳐입은 티셔츠에 소련 문양이 보인다.
ⓒ 서진석
스바스티카가 에스토니아에서 가지고 있는 상징적 차원에 대한 해석을 둘째치더라도, 이 법에 대한 해석이 지나치게 모호하며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의견이 불거지고 있어 또 다른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게다가 러시아에서도 이 법안을 보는 태도가 곱지 않다.

러시아 외무부 장관 세르게이 라브로프는 "이 법안은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에서 러시아 소수민족과 관련한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는커녕 관계를 악화시킬 것"이라고 역설했고, 자신들의 상징을 나치의 그것과 같은 선상으로 놓는 것에 대해 심한 불쾌감을 피력했다.

에스토니아의 문화전문가들도, 그런 상징의 사용금지법안은 사람들의 표현방식에 많은 제약을 줄 것이므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현재 유럽에서 나치의 상징이 공식적으로 금지되어있는 나라는 많이 있지만, 소련 상징은 라트비아와 헝가리 두 곳에서만 금지되어있다. 현재 리투아니아에서도 그 뒤를 이을 준비를 하고 있어, 러시아와의 관계가 더욱더 껄끄러워질 기미가 보인다.

에릭 홉스봄이 말한 바대로라면, 상징이란 사회가 만든 '만들어진 전통'에 불과할지 모르나, 과거와 현재와의 관계에 핵심적인 단서를 던져주는 중요성도 가지고 있다. 그 상징의 적용을 통해서, 우리는 과거를 단순히 기억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과 어떻게 관계를 가져야할지에 대한 판단을 세우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2차대전, 독일, 소련, 그들이 남긴 여러 가지 흔적들 속에서 발트3국 사람들은 무엇을 주어담고 무엇을 버려야할지, 또 어떻게 적용해야할지 여전히 혼돈에 처해있다. 그래서 이 작은 땅에 이러한 소리 없는 분쟁은 끊일 줄을 모른다.

태그:#라트비나, #스바스티카, #에스토니아, #발트3국, #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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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석 기자는 십수년간 발트3국과 동유럽에 거주하며 소련 독립 이후 동유럽의 약소국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저술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는 공식적으로 라트비아 리가에 위치한 라트비아 국립대학교 방문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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