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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신문 신고포상금제를 알려드립니다 (아래) 2만 4000원짜리 구독권 한상진 동소래 지국장이 직접 제작한 홍보물. 한쪽 면엔 신문 신고포상금제를 홍보하고, 다른 쪽 면엔 2개월치 구독권을 실었다. 포상금제를 알렸으니, 불법 경품(2만8880원 이상)을 제공하는 건 애초 불가능한 일이 됐다.
ⓒ 안윤학


"신문 신고포상금제를 알려드립니다."

공정거래위원회나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의 목소리가 아니다. 한 신문 지국이 손수 제작해 배포하는 홍보물 내용이다. 하지만 포상금제 신고 대상은 다름 아닌 신문 지국이다. 불법 경품을 주거나 신문을 강제 투입하는 곳이다. 사실상 불법 경품이 사그라들지 않는 상황에서 제 무덤 파는 일이다. 왜 그럴까?

이 신문 지국의 홍보물은 '합법적인 경품'으로 쓰이기도 한다. 뒷면은 2개월(2만4000원)치 무료 구독권이다. 한쪽 면에 포상금제를 알렸으니, 상품권, MP3 등 고가의 경품을 제공하는 건 애초 불가능한 일이다. 공정거래법 및 신문판매고시에 따르면, 불법 경품은 연간 구독료(14만4000원)의 20%(2만8800원)를 초과하는 것이다. 신문판매고시 등이 허용하는 한도내에서 경품을 제공하는 것이다.

지난달 30일, '이색 판촉활동'을 벌이고 있는 한상진 지국장을 경기 시흥 도창동의 조선일보 동소래지국(한겨레신문·한국경제 지국 겸영) 사무실에서 만났다.

"스스로 무덤 파는 일? 서로 상생하는 길!"

▲ 한 지국장 "상품권을 주면 내게 돌을..."
ⓒ 안윤학
한 지국장은 지난해 4월 초, 포상금제 시행에 맞춰 관할 지역에 홍보물을 뿌렸다. 그렇다고 그가 이 분야의 불법 경품 관행을 모르는 '새내기'도 아니다. 오히려 그는 서울 불광 등지에서 20여년 간 신문 지국을 운영해온 베테랑이다.

"타 지국의 불법 판촉을 막기 위해서였다. 실제 타 지국에 경각심을 일으켜, 지역 내 과다한 경쟁을 줄였다. 서로 상생하자는 뜻이었다."

지난해 9월엔 중앙일보 연성지국(당시 동소래지국과 동일 구역 관할)의 불법 판촉 행위를 공정위에 직접 신고했다. 당시 그는 백화점 상품권과 과다한 무가지 기간을 미끼로 신규 독자를 끌어들이는 현장을 포착했다. 증거자료인 40여명의 명단도 확보했다. 공정위는 해당 지국에 경고조치를 내렸고, 이후 불법 판촉은 자취를 감췄다.

한 지국장은 또 "독자 의식을 변화시키고자" 했다. 그는 "불법 경품을 받은 독자 대다수는 1년을 넘기기 무섭게 구독을 중지했다"고 지적했다. 한번 경품에 맛들인 독자는 계약기간(1년)이 끝난 뒤, 또다른 경품을 제공하는 신문사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는 "독자들은 '지국이 돈을 많이 벌어, 한 부 값에 여러 부를 배달해준다'는 식으로 오해한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불법 경품을 받지 못하면 '바보된다'는 생각을 가진 듯 하다, 서비스를 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가끔 독자들이 먼저 전화를 걸어 경품을 요구할 때도 있다. 이에 지국의 어려운 현실을 이야기하면, 10명 중 7, 8명은 흥정을 시도하고 일부는 아예 전화를 딱 끊어버린단다.

그럼에도 그는 "독자를 설득하는 게 가능하다"고 역설했다. 보통은 "내가 보고자 하는 논조를 봐야지, 무료구독 몇 개월 더 받기 위해 신문을 보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식으로 설득했다고 한다.

한 지국장은 현재 신문판매연대 정책국장이다. 포상금제 홍보에 나서고, 관내를 철저히 감시하게 된 또다른 동기다. 신판연은 신문 지국장들을 중심으로, 2001년부터 신문 시장의 불공정거래행위를 근절시키기 위해 자정활동을 하고 있다.

▲ 한국경제 신문 홍보물에도 신문 신고포상금제를 알리는 내용이 우측 하단에 실렸다.
ⓒ 안윤학

경품은 지국장 주머니에서... "불법 경품 제공, 지국에 오히려 손해"

한 지국장은 "과다한 경품을 받은 독자가 1년(계약기간) 뒤 구독을 중지하면, 지국엔 장기적으로 손해다"는 점을 강조했다.

가령, 계약기간을 조건으로 적게는 5~6만원, 많게는 10만원 이상(경품+무료구독)을 들여 독자 1명을 확보한다 치자. 연간 구독료는 14만4000원인데, 초기 확장비(경품 구입 비용)에 지대(종이값)까지 빼면 큰 수익이 남지 않는다. 인건비 등을 빼면 이윤은 '0'에 가깝다.

한 지국장의 설명에 따르면, 본사는 일부 성적이 우수한 지국들에게만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여타 지국들은 자력으로 확장비를 마련해야 한다. 독자가 받는 상품권 대부분이 지국장 주머니를 털어 나온다는 뜻이다.

그는 "독자들이 '신문이 필요해서 본다'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신문사(본사)·지국은 눈 앞의 부수 확장에 목숨걸지 말고, 장기적인 관점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경품을 바라지 않는, 수준 높은 독자를 대상으로 안정된 운영을 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신문 시장에 경품 문화가 정착함에 따라 지국의 경제적 부담만 커진다는 얘기다. 그래서 한 지국장은 불법 경품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럼 그의 판촉 전략은 무엇일까.

구독료 일부를 양로원에... 이색 판촉으로 승부

동소래지국의 다짐과 '우리이웃' "판촉물로 구독자를 현혹하여 불필요한 구독을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구독료의 월 2000원씩을 양로원에 기부하겠습니다"
ⓒ 안윤학
"판촉물(덤핑물건)로 구독자를 현혹해 불필요한 구독을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과다한 판촉비용을 줄이겠습니다. 구독계약제를 실천하겠습니다. 한달을 구독하시던 두 달을 구독하시던 관계없습니다. 1년 의무 구독계약기간을 없애겠습니다."

또다른 홍보물에 등장하는 '조선일보 동소래지국의 다짐' 중 일부다. 이는 포상금제가 실시되기 3개월여 전부터 배포됐다. 남들은 독자 1명 더 차지하기 위해 상품권을 들고 동분서주하는데, 한 지국장은 "모든 게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이때, 오직 변하지 않는 신문 판매를 과감히 개선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독자 수가 줄지는 않았을까. 그는 "솔직히 어렵다"고 털어놨다.

"신문 시장은 매년 3~4%씩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다. 게다가 구독 부수가 줄어도, 지국이 본사에 내는 지대(종이값)는 그에 맞춰 조정되지 않고 있다. 예전에 '무조건 확장'만 요구하던 본사도 이젠 유동 부수(4~5%정도, 이사 등 이유로 자연스레 중지되는 부수)만 막아달라 주문한다."

한 지국장이 불법 판촉을 하지 않고 지국을 유지하는 방법엔 몇 가지 더 있다.

그는 지난해 3월부터 구독료를 자동이체하는 신규 독자에 한해, 독자 명의로 월 2000원씩 '엘림양로원(시흥 도창동)'에 기부해오고 있다. 직접 고안한 '우리이웃'이란 프로그램이다. 그는 "신문 구독이 곧 봉사활동"이라는 점을 들어, 학생을 둔 가정집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이 프로그램은 우수 사례로 선정돼 본사에 보고되기도 했다.

이주해온 주민을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이들의 파악을 위해 주초나 주말, 관내를 돌아다닌다. 부수 확장은 해야하는데, 불법 판촉을 하지 않고 타 신문 독자를 뺏어 오기란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한 지국장, "나도 한때는 '자전거' 갖고 돌아다녀..."

한 지국장 역시도 한때는 자전거를 돌렸다.

2001년부터 2004년까지, 2년 6개월 간은 중앙일보 신천지국(조선일보 남소래지국에 해당)을 운영했다. 당시엔 불법 판촉으로 구독 부수를 두배 이상 확장했다. 인수 부수 400부를 1000부까지 늘렸다. 엄청난 성과였다.

그러나 남은 건 본사에 갚지 못한 미수금(지대)과 대출금, 총 1500여만원의 빚이었다. 그는 "본사가 지국에 부당한 요구를 했다"며 소송을 했고, 현재 재판이 진행중이다.

그는 "수익을 얻는데 한계가 있었다, 본사 요구대로 무작정 부수 확장만하다보니 결국 인위적인 부수(경품만 좇는 독자)는 다 떨어져 나가더라"고 털어놨다.

현 지국을 맡은 건 2004년 5월 께다. 전임 지국장이 부수 확장을 위해 무리하게 '세트'(한 부 구독료로 두 종 이상 신문을 함께 주는 것)를 발송해, 적자가 상당했다. 관할 지역 타 신문 지국 사정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이대로 가다간 "모두 망하겠다" 싶었단다.

이후 구독료를 미납하는 등 소위 "피곤하게 하는" 독자와는 과감하게 계약을 해지했다. 그 외엔 세트를 계속 제공했다. 독자들과 전임 지국장과의 약속이었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구독료 더 받거나, 세트를 최대한 줄여 적자를 현저히 줄였다.

한 지국장은 불법 경품을 사용해도 지국엔 오히려 손해가 된다는 것을 경험했다. 그래서 관내 지국들이 불법 행위를 하지 못하게 묘안을 짜내기 시작했다. 그의 말처럼 "내가 (불법판촉) 하면 남도 하고, 남이 하면 나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적과의 동침? 동소래 지국은 조선일보·한겨레·한국경제 등 3개 신문 지국을 겸영하고 있다. 한 지국장은 "적과의 동침이지만, 독자의 입맛에 맞게 구독을 권유할 수 있어 타 지국보다 유리하다"고 말했다. 이것도 그의 '이색 판촉 전략' 중 하나일까.
ⓒ 안윤학

주민 "경품 안줘야 정상 아닌가"

한 지국장은 불법 판촉을 뿌리뽑기 위해 "무엇보다 지대가 현실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사가 무리하게 지대를 책정하는 이상, 지국은 '상품권'을 들고 다니는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어 포상금제에 대해 "본사도 책임이 있는데, 지국만 규제하려 들면 안된다"며 공정위를 겨냥했다.

그러나 "불법 판촉을 하지 않고도 지국을 운영할 수 있다"면서 "지국장들이 서로 합의하고 감시하면 '서로 죽이는 경쟁'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아울러 "구독 부수를 늘리기 위한 아이디어를 내는 등 선의의 경쟁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근지역 3사(조선·동아·중앙) 지국의 경우, 서로 감시만 하다가 결국 지국장이 교체되는 등 험한 꼴을 당했다"고 설명했다. 현재는 상품권 5만원에 6개월 무료구독은 기본으로 내놓는 등 그야말로 '쑥대밭'이 됐단다. 그는 "본사도 살고, 지국도 사는 방안을 함께 모색할 것"을 주문했다.

그의 '이색 판촉 전략'에 관내 주민들의 반응도 남달랐다.

동소래지국을 통해 2년여간 00일보를 구독하고 있는 장윤이(42·웰빙 숯불갈비)씨는 "여기선 '신문 보라'면서 길에 경품 내놓고, 전화기 들고 다니는 사람 못봤다"고 말했다. 오히려 "경품, 무료구독은 안줘야 정상아닌가, 신문은 필요에 의해 보는 거 아닌가"며 되묻기도 했다.

이아무개씨(50·시흥 도창동)도 "일터에서는 00일보, 집에서는 00일보(다른 신문)를 보는데 경품을 받은 바 없다"고 밝혔다. 또 "여타 지역에서처럼 자전거, 전화기 등 경품과 무료구독을 요구했는데 여기서는 '불법'이라는 이유로 거부당했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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