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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이 끝났습니다. 하지만 수능은 1차전일 뿐, 이제부터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됩니다. 바로 '논술'이라는 전쟁입니다. 대부분의 학부모. 시민단체는 학생의 입시 부담과 사교육비 증가 때문에 대학입시에 논술이 들어가는 것을 반대합니다. 물론 당사자인 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

하지만 대학 측에서 논술을 채택한 데에도 타당성은 있습니다. 내신은 한 학교 내의 상대 석차에 의한 등급이기 때문에 절대 평가를 할 수 없습니다. 일부 대학에서 학교별 성적차를 반영했다가 문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이것은 내신에 의한 평가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보여준 것이기도 합니다.

내신과 함께 평가 기준이 되어 온 수능 역시 변별력이 떨어지다 보니 학생 선발의 기능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과목별 본고사는 법률로 금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대학은 학생 선발 방법의 돌파구 -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응시생의 실력을 측정할 방법을 찾게 되었는데, 이것이 논술입니다.

수능시험일 다음날, 저는 오랜 친구 두 명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번에 수능을 치른 자기 아이의 논술을 지도해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스물 무렵에 만난 친구들이니, 제가 민속학에 빠져서 공부한 것을 정리하겠다고 논문들을 싸짊어지고 산속에 들어간 일이며, <마이크로소프트웨어>라는 컴퓨터 잡지의 편집장을 지냈던 것, 그리고 그동안 이런 저런 형태의 글을 계속 써 온 저의 행적을 알기에 부탁한 것이지요.

한 친구는 형편이 어려워서 과외공부를 시킬 형편이 못되던 차에 저를 떠올렸답니다. 다른 친구는 제가 사업에 실패했을 때 자청해서 도움을 줬습니다. 과외를 알아보니까 부르는 게 값인데다가 선생의 실력을 가늠할 수 없으니, 그보다는 오히려 제게 맡기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답니다. 이렇게 해서, 한 친구에게는 도움을 주는 의미로, 다른 한 친구에게는 도움에 대한 보답의 뜻으로 '공짜 선생'을 맡기로 했습니다. 그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봐 와서 정이 들었다는 것도 이유였습니다.

사실 저는, 입시에 밀려서 단기간에 논술을 가르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바람직하냐 아니냐를 따질 개재가 아닙니다. 어찌됐든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야 하니까요. 급한대로, 글 쓴 것을 다시 손봐서 논술 교재와 함께 갖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이들을 만나서 처음으로 한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아이들이 갖고 있던 논술 교재를 던져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망설이며 불안해 하더군요. 선생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공부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것 같아서 제가 한마디 했습니다.

"교재를 보니까 문제, 설명, 모범답안 모두 괜찮았어. 그런데 말이야, 한마디로 해서 너무 모범적이야. 저런 책으로 공부하면 두 가지 문제점이 있어. 첫 번째, 교재에 들어있는 것과 비슷한 문제가 나왔을 때 수험생의 답안들은 비슷할 수밖에 없어. 두 번째, 의외로 엉뚱한 문제가 나왔을 때는 대처하기가 힘들지. 논술시험에서는 모범 답안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얼마나 논리적으로 전개해 갈 수 있는가' 그것을 보려고 하는 거야."

아이들이 가져온 글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해주고 토론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고쳐 써보라고 했더니 한결 나아지더군요. 아이들도 상당히 만족해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기 위해 한마디 했습니다. "답의 반은 문제 속에 들어있어. 문제는 너희 안에 있는 나머지 반을 꺼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야."

저는 아이들을 만나기 전에 인터넷으로 많은 자료들을 찾아봤습니다. 각 대학에서 발표한 논술 출제 방침, 신문과 입시. 논술 사이트에 있는 글들, 심지어 글쓰기의 교재까지, 제가 찾고자 하는 것은 다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아이들의 글에 적용시키기에는 너무 시간이 촉박한 것 같습니다.

▲ 논술의 계절입니다 (강남구청 인터넷수능방송, 엠파스, 씨스쿨 화면)
결국, 문제를 내주고 아이들이 글을 써오면 그것을 놓고 고쳐가면서 그때 그때 모자라는 점을 짚어주기로 했습니다. 글의 구조를 분석해오는 과제도 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책과 글은 벽을 쌓고 살다가 갑자기 '논술'이란 것을 써대야 하는 아이들도 그렇겠지만, 삼십년 동안 글을 쓰면서 배운 것을 짧은 기간에 전수해 주자니 저도 고역이 말이 아니군요.

이 글을 읽는 분이 수험생이거나 수험생을 자녀로 둔 학부모라면 저보다 더 답답하시겠지요. 논술시험에 대한 자료는 많이들 나와 있으니까 여기서 되풀이할 필요가 없겠고, 저 나름대로 생각한 요령을 몇 가지 말씀드림으로써 답답함을 덜어드릴까 합니다.

'많이 쓰기' 보다는 '고쳐쓰기'

글쓰기는 생각하기와 표현하기의 훈련입니다. 흔히들 '글을 많이 써보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쓰면서 많이 생각해보라는 메시지가 들어있습니다. 저는, 많은 글을 쓰기 보다는 글 한 편을 여러 번 고쳐 쓰면서 모자라는 점을 보강하고 사고의 틀을 고쳐가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요점 뿌리기

쓸 거리(요점이 되는 말)들을 나열해놓고, 우선 순위와 개념의 상하위를 정합니다. 이렇게 하면 빠진 점을 발견할 수 있고, 글이 주제를 벗어나 딴 곳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글쓰기에 들어가기 전에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리면 보인다

논술은 개념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개념의 서술로 끝납니다. 이것을 단어(글자)로 정리하다 보면 나중에 그 단어를 읽을 때는 머릿속에서 다시 개념을 정리해야 합니다. 일종의 번역과정과 같은 것이지요. 그런데 개념을 눈에 보이는 그림으로 정리하면 그런 불필요한 번역과정이 필요 없습니다.

예를 들어, '평화'나 '자본'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이지만 비둘기나 지폐는 형태를 갖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간단하게 그림으로 그릴 수 있습니다. 예문을 읽을 때나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때에 이 방법을 사용하면 오류도 적을 뿐 아니라 시간도 많이 절약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요점 뿌리기'에도 이 방법을 사용하면 효과적입니다.

분석력에 중점을

저는 특히 분석력을 기르는 데 중점을 두는데, 이것은 글을 읽을 때 뿐 아니라 자기 생각을 정리할 때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많이 읽으라고 하는데, 이것은 읽기를 통해 분석력과 독해력이 길러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고3 수험생에게 많은 책을 읽으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힘 든 얘기지요. 학생 수준에서 소화할 수 있는 문학평론을 골라서 꼼꼼히 읽든지, 신문 사설을 놓고 구조를 분석해 보기를 권합니다.

긴 호흡과 간결한 끝맺음

사실 '호흡이 긴 글'은 글을 많이 써봐야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는 글의 재료를 많이 확보해놓고, 그 설명들의 열거하는 데 있어서 인과관계를 탄탄히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결론은 지금까지 전개해온 것을 함축적으로 정리하고, 맺는말은 논리에 치우치지 말고 읽는 이로 하여금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 표현을 찾도록 하십시오.

만연체보다 못한 간결체?

흔히들 의사 전달에는 만연체보다 간결체가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긴 문장을 여러 개의 단문으로 토막냈다고 해서 간결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간결체는 문장과 문장 사이의 '간격'을 읽는 사람이 메우도록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읽는 사람의 상상력이 발휘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자세하게 쓰려는 욕심을 버리고, 불필요한 문장이나 표현을 과감하게 삭제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글의 유형

소설과 시는 형태부터가 다르기 때문에 구분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사실과 주장은 혼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광고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종종 있구요. 글의 유형을 잘못 판단하면 엉뚱한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특히, 독서 경험이 많지 않은 학생이라면 주어진 예문의 유형을 명확히 정의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뭐 그정도야" 하실지 모르겠지만, 유형을 명확히 정의한다는 것은 의외로 쉽지가 않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문제를 하나 낼테니 풀어보시죠(답은 내일 댓글로 달겠습니다).

[문제] 갑순이가 전화로 갑돌이에게 말했다. "사랑해요". 갑돌이가 대답했다. "응, 알았어." 이 대답을 들은 갑순이는 "뭐 이런 남자가 다 있어!" 하면서 전화를 끊어버렸다. 사랑한다고 해서 알았다고 대답했는데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그리고 갑순이에게 전화를 해서는 뭐라고 변명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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