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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찬수 교수 사건 해결이 늦어지고 있는 데는 사학 재단의 버티기는 물론 교육부의 무능함도 한 몫을 하고 있다(사진 제공: 강남대 이찬수 교수 부당해직 사태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
"강남대학교 총장은 이찬수 전 교수의 재임용거부처분을 취소하라."

이는 '강남대 이찬수 교수 부당해직 사태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대책위)'의 목소리가 아니다. 행정당국인 교육부의 '결정'사항이다. 하지만 이 전 교수는 복직되기는커녕 연구실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는 처지다.

강남대는 지난 1월 "불상 앞에 절하는 등 기독교적 창학 이념에 어긋나는 행동과 강의를 했다"며 이찬수(45) 교수에 대한 재임용을 거부했다. 하지만 교육인적자원부 교원소청심사위원회는 4개월 뒤 "학교 측 평가기준이 주관적, 자의적이라 심히 불합리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학교측은 이에 불복해, 지난 7월 소청심사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이 장기화될 경우, 물적·심적 부담은 고스란히 이 전 교수의 몫이다. 다툼의 당사자는 강남대와 소청심사위이지만, 학교가 교육부 결정을 이행하지 않는 탓에 피해는 이 전 교수에게 돌아간다. 교육부의 '무책임한 행정'과 강남대의 '버티기'가 빚어낸 결과다.

무능력한 교육부, 결정'만' 내리고 사실상 '책임회피'

"결정을 이행하지 않는 학교측에 행·재정적 불이익을 주든가 공문서를 계속 보내 압력을 가해야 한다. 현재 교육부는 이같은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이 전 교수는 "'문서(결정문)' 한 장만 달랑 남기고 떠나버려 학교측에 아무런 영향을 못 미치는" 교육부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또 "교육부가 결정사항을 실현 시킬 만한 행정력·공권력을 행사하지 않는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사실 교육부가 이 전 교수 사태에만 무기력함을 보이는 건 아니다. 소청심사위에 따르면, 현재 강남대를 포함한 9개 대학법인이 26건(교수 1인=1건)의 결정에 불복, 행정·민사소송을 진행 중이다.

교육부 '행정상·재정상 제재규정'

교육부가 지난 2004년, "대학의 자율성 확대에 상응하는 책무성과 운영의 공공성 및 투명성을 확보하고 부정·비리를 예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훈령이다.

예를 들어 학교측이 교원임용 등 학사관리를 부당하게 처리한 경우, 해당 학교의 정원동결 및 감축, 학과 폐지 또는 모집정지 등 행정상제재나 특수목적 재정사업에의 참가 제한, 평가점수 감점, 감액지원 및 지원 중단 등 재정상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이에 국회 교육위원회 최순영(민주노동당) 의원은 10월 31일 국감 질의에서 "교육부가 '행·재정상 제재규정'을 마련해 놓고도 (소청심사 결정을) 이행하지 않는 대학에 대한 감독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면서 교육부의 '소극적인 자세'를 질타했다. 제재수단을 가지고도 결정사항을 무시하는 학교측에 아무런 추궁도 하지 않는다는 것.

교원들도 '무능한 교육부'에 대한 불만이 높다. 지난 9월 전국교수노동조합은 한 기자회견에서 "'교원지위향상을 위한 특별법'에는 분명 '소청심사 결정은 처분권자를 기속한다(10조 2항, 주: 효력 또는 구속력을 갖는다)'고 되어 있지만 교육부는 이에 대한 권한행사를 하지 않아 스스로 신뢰를 실추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교육부가 철저한 감독을 하지 않고 있다"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관련, 소청심사위의 한 관계자는 "(소청심사 결정을 이행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 공적 제재조치가 없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결정이행을 거부하는 학교측에 행·재정적 조치를 취하려 하나 실제 조치에 상당한 시일이 걸리는 등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밝혔다.

또 "일부 사학이 교육부 지시를 따르려고 하면 다른 사학재단에서 이를 말리는 분위기가 형성돼 제재에 어려움이 따른다"고도 전했다.

힘없는 교육부에 강남대는 '버티기'로 대응

▲ 재임용 거부처분을 취소하라는 교육부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강남대는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다.
ⓒ 안윤학
강남대는 "재임용 탈락을 취소하라"는 소청심사 결정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소송 결과만 기다리겠다는 입장이다.

대책위측은 "선이행 후소송"을 주장하면서 "즉각 복직"을 촉구하고 있다. 이 전 교수는 "소청심사 결정은 구속력이 있음에도, 이를 무시하는 학교측에 법적 책임이 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남대 소송을 맡고 있는 홍미정(소청심사위 송무) 사무관은 "소청심사 결정을 먼저 이행한 뒤 소송을 진행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사학이 법원 판결이 날 때까지 이행을 보류하자는 태도를 보인다"면서 "이는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결과로 명백한 위법행위"라고 주장했다.

특별법 10조 2항에는 "소청심사 결정은 처분권자를 기속한다"고 돼 있어 법률상 '소청심사 결정의 효력'을 명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사학들이 법원 판결에 따라 심사 이행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확정판결의 기속력'만 인정하는 꼴이 돼 특별법에 저촉된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위법'행위를 저지르면서까지 학교측이 버티기로 일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장경욱 변호사는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결국 '힘없는 교육부'가 원인이란 얘기다.

또 다수의 전문가들은 헌법재판소의 잇따른 판결에 주목했다. 헌재는 지난 2월 '교원'만이 소청심사 결정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 특별법 10조 3항에 대해 위헌판결을 내려, 사학법인의 소송도 가능토록 했다. 또 지난 4월엔 "과거 해직교수들에 대한 교원소청심사특별위의 재임용 탈락 취소 결정이 '복직'을 의미하진 않는다"면서 사학법인에 유리한 판결을 내렸다.

사학들의 버티기, 해결책은 없나

최 의원은 지난달 국감에서 학교측이 소청심사 결정을 먼저 이행한 뒤(선이행)에 행정소송을 진행하도록 하는(후소송) 법안을 마련할 것과 특별법이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법안을 개정할 것을 요구했다.

장경욱 변호사도 "학교측이 결정사항을 먼저 이행해 소송기간에도 해직 교수들이 교원 지위를 침해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그는 '노동위원회법'에 주목한다. "소청심사 결정에 대해 노동위법만큼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노동위원회의 경우엔, 고용인이 조정·판정에 따르지 않고 행정소송을 제기해도 구제명령(노동조합·근로자가 신청한 뒤 노동위가 결정)을 내리면, 고용인은 해당 노동자를 복직시키고 임금도 지급해야 한다. 이 전 교수가 소송이 끝날 때까지 교수직을 박탈당하고 임금을 지급받지 못하는 것과 차이가 있는 셈이다.

만약 고용인이 노동위의 구제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과태료를 물고, 중앙노동위 결정에 따르지 않으면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이 또한 강남대가 소송을 진행하는 동안 소청심사 결정을 따르지 않는다고 해 과태료를 물거나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것과 대조된다. 그는 "소청심사 결정을 따르지 않으면 과태료를 물리는 등 특별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재홍 영남대 교수는 "사립대의 교원 지위를 국·공립대 수준으로 향상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국·공립 교원은 고등교육법으로 지위를 보장받지만, 사립학교법엔 그만한 보장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이어 "사학법이 고등교육법 관련 조항을 따오던가, 고등교육법에서 사립학교 교원 지위를 보장해야 할 것"이라고 해결책을 내놨다.

전문가들은 이 전 교수에게 "당장은 노동부에 학교가 체납임금을 지불하라는 진정을 내거나, 법원에 재임용 절차를 이행하라는 취지의 가처분 신청을 내라"고 조언하고 있다. 실제 노동부는 지난 9월, 소청심사위의 '면직 취소 결정'에 불복하고 교수 3명을 복직시키지 않던 극동대학에 면직 기간 동안 체불된 임금을 지급하라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결정 불복 26건 중 올해만 13건


소청심사 결정을 따르지 않는 건 강남대 뿐만 아니다. 지난 6월 주성대는 문아무개 교수 등 3명을 '폐과'에 따라 면직한 것에 대해 "무효 결정"을 받았지만 행정소송으로 맞섰다. 극동정보대학도 전아무개 교수 등 4명에 대한 "면직처분 취소 결정"을 따르지 않고 있다.

현재 9개 대학법인이 26건의 소청심사 결정을 따르지 않고 소송을 진행 중인데 올 한해만 13건이 발생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월, "'교원'만이 소청심사 결정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내용의 교원지위향상을 위한 특별법 10조 3항에 위헌 판결을 내렸다. 학교측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길을 터줘, '버티기'에 힘을 실어줬다는 분석이다.

헌재 판결 뒤 일부 교원들은 "부당한 징계의 방패막이었던 소청심사가 사실상 실효성 없게 되는 것 아니냐"며 우려를 표출했다. / 자료 제공: 전국교수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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