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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LG전자에서 개발한 '책 읽어주는 휴대폰'. LG상남도서관을 통해 음성 도서를 다운 받아 들을 수 있다.
ⓒ LG전자
LG그룹이 시각장애인을 위한 사회공헌활동 차원에서 시작한 '책 읽어주는 휴대폰' 보급 사업이 뜻밖의 난관에 부딪혔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회장 김수경, 아래 연합회)는 지난 9월 21일 LG텔레콤과 시각장애인 전용 '책 읽어주는 휴대폰'(모델명 LG-LF1300S, 시가 44만원)을 4만원에 특별 보급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애초 공지와 달리 기존 LG텔레콤 가입자들의 기기변경이 대상에서 배제되자 돈을 내고도 혜택을 못 보게 된 시각장애인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LG텔레콤 측은 보조금정책 때문에 자사 가입자 지원이 어렵다는 입장이지만 시각장애인들은 심각한 '역차별'로 받아들이고 있다.

"정보 소외도 억울한데 복지혜택도 차별?"

지난 4월 LG상남도서관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책 읽어주는 도서관(voice.lg.or.kr)'을 열었다. 유무선 인터넷으로 도서관 서버에 접속, 내려받은 책 내용을 귀로 들을 수 있는 서비스로 LG전자, LG텔레콤 등 LG계열 6개사가 참여했다.

이어 LG전자는 지난 9월 시각장애인 전용 휴대폰도 선보였다. '책 읽어주는 도서관' 접속뿐 아니라 음성인식기능, 문자메시지 음성변환기능까지 내장해 정보소외자였던 시각장애인들의 큰 기대를 모았다.

문제는 전용 휴대폰을 시각장애인들에게 특별 보급하면서 발생했다. 연합회가 LG텔레콤의 지원을 받아 펼친 '시각장애인 정보접근향상 캠페인' 당시 보급 대상은 'LG텔레콤 신규가입 및 번호이동, 기기변경을 희망하는 연합회 시각장애인 회원'이었다. 공지가 나간 뒤 1천명 가까이 가입 신청을 했으나 지난 9월 29일 갑자기 접수를 중단했다.

연합회는 지난 10월 12일 재활통신망 '넓은마을'에 뒤늦게 올린 사과문에서 "LG텔레콤과 맺은 계약 내용이 계속 바뀌어 부득이하게 9월 29일 1차적으로 사업을 중단시켰다"면서 "이미 접수된 건 가운데 미입금자 및 기기변경한 시각장애인과 2, 3순위(기관종사자 및 가족)에게는 보급이 불가하다고 결정했다"고 밝혔다.

시각장애인 회원 중에서도 신규 가입이나 타사 번호이동 신청자 800명 정도로 대상을 한정하면서 기기변경을 신청한 기존 LG텔레콤 가입자 100여명만 혜택을 누리지 못하게 된 셈.

"LG텔레콤 가입자만 봉이냐?"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가 운영하고 있는 시각장애인들의 텔넷통신망인 '넓은마을(bbs.kbuwel.or.kr)' 등에는 연합회와 LG텔레콤의 조치에 항의하는 시각장애인들의 글이 연일 올라오고 있다.

'책 읽어주는 도서관' 구축사업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던 서울맹학교 이인학 교사는 13일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기존에 LG텔레콤을 이용하고 있는 시각장애인들은 이번 보급하고 있는 휴대폰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정보 소외 계층 중 또 다른 소외 집단을 만드는 작태"라고 비난했다.

아이디 'RENA'인 한 회원은 17일 "대기업이라면 시각장애인을 위한 휴대폰을 개발했다며 사회공헌도가 높다는 광고를 크게 할 때처럼 실수에 대한 무거움도 크게 느껴야 한다"면서 "소수이기에 신발에 발을 맞춰야 하는 시각장애인들에게 두 기관은 처음 보급계획을 이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SKT, KTF 가입자의 전환 가입은 허용하면서 정작 LGT 가입자의 기기변경만 대상에서 배제한 것은 타사 고객을 자사로 이전하려는 LGT측의 계산이 깔린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또 일부 시각장애인들은 LGT측이 탈퇴 후 재가입을 유도하고 있다고 항의하기도 했다. 실제 기기변경 신청 고객 가운데 30~40% 정도가 탈퇴 후 재가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회-LGT 서로 책임 떠넘기기

▲ 시각장애인 전용 휴대폰 보급이 절실하지만 수익성이 낮아 제조업체들이 개발·생산을 꺼리고 있다. 사진은 2004년 12월 SK텔레콤과 삼성전자가 개발한 '시각장애인 도우미폰'.
ⓒ SK텔레콤
연합회측은 LG측이 계속 말바꾸기를 했다고 주장한다. 애초 기기변경 등을 문제 삼지 않다가 막상 보급 시기에 이르러 기존 LG텔레콤 가입한 시각장애인들을 공급 대상에서 제외시켰다는 것.

연합회 김두현 대외협력실장은 "일반적인 보상기변 개념이 아닌 기금을 통한 특별 보급이었는데 진행 과정에서 LGT쪽에서 말을 바꿔 보급을 일단 중단한 것"이라면서도 "LG가 시각장애인을 위해 처음 시도한 사업인 만큼 연합회 지원은 계속 필요하다"며 재협상 여지를 남겼다.

시각장애인 전용폰 보급을 맡은 LG텔레콤 법인영업3팀 이상익 과장은 "장사 목적이 아니라 '책 읽어주는 도서관' 서비스 홍보 차원에서 출혈을 감수하면서까지 연합회에 기부한 것"이라며 "어느 이통사나 정책상 자사 가입자에겐 혜택을 주기 어려워 애초 기기변경자는 제외했는데 연합회 공지가 잘못 나간 것"이라고 밝혔다.

타사 가입자 유치를 위한 장삿속이 아니냐는 일부 지적에 대해 이 과장은 "장애인 요금할인 때문에 시각장애인 가입자 유치가 회사에 경제적으로 큰 이득이 되는 것은 아니"라면서 부인했다.

시각장애인 전용폰 보급 정부 지원 필요

현재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에 등록된 국내 시각장애인 수는 28만명. 음성안내 기능을 추가한 휴대폰 기종이 일부 나와 있지만 시각장애인들이 쓰기엔 여전히 불편하다.

시각장애인 전용 휴대폰 보급이 절실하지만 수익성이 낮아 휴대폰 제조업체들이 개발이나 생산을 꺼리고 있는 상황. LG전자 '책 읽어주는 휴대폰' 역시 3천대 정도 한정 생산해 일반 대리점에서 구하기 쉽지 않다.

때문에 시각장애인 전용 휴대폰 보급을 위해선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도 필요하다. 실제 정보통신부는 장애인용 정보통신 보조기구로 헤드마우스, 영상전화기 등 11개 품목 32개 제품을 선정, 장애인에게 제품가격의 80%를 지원하고 있다. / 김시연 기자
'책 읽어주는 도서관' 사업을 진행한 LG공익재단 심우섭 팀장은 "각 사가 개발비도 포기해가며 사회공헌차원에서 진행한 사업인데 보급 실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해 안타깝다"면서 자칫 이번 일로 도서관 사업에 차질을 빚지 않을까 우려했다.

서울맹학교 이인학 교사는 "이용자에게 부담을 떠넘겨 이용의 벽을 만들어선 안된다"면서 "애초 취지대로 장삿속이 아닌 시각장애인들의 도서관 이용을 돕는 복지서비스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단 LG텔레콤은 연합회와 공급 조건을 놓고 재협상을 벌인 뒤 자사 기기변경 희망 고객을 포함해 시각장애인을 위한 보급 사업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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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1급 시각장애인으로 이 땅에서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장애인의 삶과 그 삶에 맞서 분투하는 장애인, 그리고 장애인을 둘러싼 환경을 기사화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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