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이효연
지난 추석 명절에 친정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신 신선로입니다. 입을 즐겁게 해 준다는 의미로 '열구자탕 (悅口子湯)'이라고도 불리는 신선로는 제대로 만들자면 약 25가지의 재료가 들어가는 요리입니다.

그래서 평소 자주 먹지는 못했고 귀한 외국손님 초대가 있을 때나 명절에 어머니가 주로 상에 내 놓으시던 특별요리였지요. 보기에 화려하고 멋스런 요리인만큼 워낙 손이 많이 가는 터라 어머니 연세가 드시고부터는 한동안 집에서 맛 볼 수가 없었습니다.

한 번 만들자면 장보기부터 전부치는 것까지 보통 일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이번 명절에는 어머니께서 무슨 생각이 드셨는지 오래된 놋으로 만든 신선로 탕기도 직접 닦아 손질하고 소 간이며 천엽도 경동시장에 직접 가서 사 오셔서 푸짐한 신선로를 끓여 주시더군요. 저는 옆에서 순서를 받아 적고 사진 셔터 누르면서 배우기에 바빴고요.

한 눈에 봐도 푸짐하고 재료가 다양해 색스러운 신선로. 밤, 대추, 호두, 잣, 고기완자, 달걀, 당근, 미나리 등이 맨 위쪽에 올라 있습니다. 그 아래로 내려가면 생선전, 소 간전, 천엽(소의 위)전 , 미나리전, 쇠고기 완자, 양념쇠고기 등이 차곡차곡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푹 고아낸 양지 쇠고기 육수를 끓여 주전자에 넣어 부은 후 숯불을 가운데 넣고 부글부글 끓이면서 육수도 보충하면서 먹는 음식이지요.

오랜만에 어머니의 신선로를 맛보다

ⓒ 이효연
신선로를 만들자면 우선 여러 가지 재료의 전을 부쳐야 합니다(요리책을 보면 각각 만드는 방법이 조금씩 다른데 저는 그냥 저희 어머니께서 해 오셨던 방법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기본적으로 흰 살 생선전, 소 간(肝)전, 천엽전, 미나리전이 있어야 하고요. 천엽전은 반드시 들어가야 독특하고 구수한 국물 맛이 납니다.

흰 살 생선전과 소 간 전, 천엽전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방식대로 소금, 후추 간을 한 후 밀가루에 달걀물 씌워 부쳐내는 것이고요. 미나리(초대)전은 이쑤시개에 잎을 딴 미나리 줄기를 끼운 후 밀가루를 얇게 씌워 달걀물 입혀 부쳐내면 됩니다. 밀가루를 적게 묻혀서 부쳐야 얌전하게 부쳐지더군요. 다 부친 다음에는 한 입 크기 정도로 보기 좋게 모두 썰어 둡니다.

쇠고기 완자전은 순살코기로 쇠고기를 다져서(아니면 다짐육을 구입해서) 후추, 다진 파, 마늘, 참기름, 간장으로 양념해서 반죽한 후 은행알보다 조금 작은 정도의 크기로 아주 작게 완자를 빚습니다. 그런 후, 밀가루 옷을 살짝 입히고 달걀물을 씌워서 기름을 둘러 달군 팬에 넣고 약한 불에서 완자를 동글동글 굴려가면서 속까지 잘 익도록 부쳐냅니다.

ⓒ 이효연
미리 한 가지 준비해 둘 것은 충분한 양의 쇠고기 양지 육수 국물입니다. 보통 명절에 준비하는 사골이나 양지 국물이면 충분해요. 이번에는 양지머리를 넣어 뽀얗게 고아 만들어 둔 국물을 사용했습니다. 국물이 식은 후 기름을 걷어내고 주전자에 넣어 팔팔 끓여 뜨겁게 준비해둡니다.

ⓒ 이효연
신선로 그릇 맨 아래는 쇠고기 완자를 빚고 남은 양념 쇠고기로 바닥을 고여 줍니다. 두께는 0.8cm 정도면 좋고요. 바닥을 고인다는 기분으로 꾹꾹 눌러서 담아줍니다. 그리고 그 다음엔 부쳐놓은 전들을 차곡차곡 담으면 됩니다. 먼저 천엽전을 담고요.

ⓒ 이효연
천엽전 위에는 쇠 간 전, 그 다음에는 미나리 전을 올립니다.

ⓒ 이효연
그리고 생선전을 빙 둘러가며 보기 좋게 올려주지요.

ⓒ 이효연
이제는 보기 좋은 색감의 오색재료를 올려줄 차례입니다. 삶은 달걀을 4등분한 것, 당근 채, 미나리 채도 돌려 담습니다.

ⓒ 이효연
쇠고기 완자, 대추 씨 빼고 2등분 한 것, 호두(미지근한 물에 넣어 담근 후 이쑤시개로 껍질을 벗긴 것), 알, 잣, 깐 밤, 은행 등을 올려 주면됩니다.

담백하면서도 깊고 구수한 국물 맛이 일품인 신선로!

예전에는 저 탕기의 가운데 부분에 직접 불을 붙인 숯을 넣어 부글부글 끓이면서 먹었었는데 이제는 그것도 '귀찮다'시며 그냥 용기째 가스불에 올려 대충 끓인 다음 상에 내려 먹는 '간편 방식'을 택하시더군요.

어머니 말씀을 그대로 옮기자면 "나이가 드니 꾀가 나서 이젠 숯불이고 뭐고 힘들어 못 하겠다"고 하시네요. 그러면서도 가스불에 올린 신선로 탕기를 찍으려니 "제대로 숯불을 피워 담은 사진을 찍어야지 이런 엉터리 방법을 찍어 올리면 망신스러워서 어떡하냐"며 말리시는 바람에 한참 웃기도 했습니다.

명절에 냉동해 둔 전종류가 있다면 한 번 도전해보세요. 꼭 간과 천엽전이 없어도 육수를 붓고 냉동실에 넣어둔 견과류 좀 넣어서 끓여 먹는 간편 방식을 택해도 제법 맛이 날 겁니다. 먹음직하면서 푸짐한 신선로가 놓여진 상을 받는 기쁨도 컸지만 더 좋았던 것은 모처럼 엄마와 함께 부엌에서 요리를 만들며 웃고 얘기할 수 있었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 이효연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가지고 계셨던 엄마의 신선로 탕기입니다. 정말 오래 된 놋그릇이에요. 40년은 훨씬 더 된 그릇이지요. 이제는 너무 나이가 들어 손잡이 부분이 다 떨어질 정도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예전 같았으면 이렇게 낡은 엄마의 그릇들이 참 보기 싫었을 텐데 이젠 더 정겹고 보기 좋은 것 있죠? 엄마가 은근히 원하시는 전기 신선로 탕기 하나 사 드려야겠단 생각이 들더군요.

동네 그릇 가게를 나가 봐야 하는지 아님 인터넷을 뒤져봐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다음에는 멋진 전기 신선로 탕기를 하나 사서 거기에 제가 직접 부친 전들로 꾸민 신선로를 엄마께 대접하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효연의 '멋대로 요리 맛나는 요리' http://blog.empas.com/happymc
한동안 건강상의 이유로 연재가 뜸했습니다. 차가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니 정신이 번쩍 드는군요. 다시 열심히 일하고 공부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한 때는 방송에 홀릭했던 공중파 아나운서. 지금은 클래식 콘서트가 있는 와인 바 주인. 작은 실내악 콘서트, 와인 클래스, 소셜 다이닝 등 일 만드는 재미로 살고 있어요. 직접 만든 요리에 어울리는 와인을 고르고 피아노와 베이스 듀오 연주를 하며 고객과 공감과 소통의 시간을 가질 때의 행복이 정말 큽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