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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쌀 수천 석을 지닌 부자가 있었다. 그런데 이 부자는 가난한 사람이나 스님에게 아주 인색하게 구는 사람이었다. 하루는 불타산에 사는 도승이 그 부자 집에 가서 시주를 달라고 했으나 부자는 도승에게 쇠똥을 한 삽 주었다. 도승이 집을 나서자 며느리가 쌀을 들고 쫓아왔다. 며느리는 바랑에 쌀을 넣어주면서 시아버지의 악행을 용서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도승은 이제부터 당신 집에 큰 재앙이 내릴 것이니 당신은 어서 집에 가서 소중한 것 두 개를 가지고 높은 곳으로 도망치라고 말하였다.

며느리는 급히 집으로 가서 어린 아들과 개를 데리고 불타산으로 도망쳤다. 한참을 달렸을까. 갑자기 하늘에서 뇌성벽력이 울리더니 엄청나게 세찬 비가 부자의 집에 내리기 시작했다. 비는 모든 것을 삼킬 듯 무서운 기세로 지상에 내리 꽂혔다. 얼마 후 부자 집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끝도 모를 넓고 깊은 호수가 만들어졌다.

그때 도승은 며느리에게 아무리 뒤에서 무서운 소리가 들리더라도 결코 돌아봐서는 안 된다고 주의를 주었다. 그러나 며느리는 너무 궁금하여 그만 돌아보고 말았다. 그 순간 아이를 업은 며느리는 그 자리에서 화석으로 변하게 되었다. 그래서 불타산 자락에는 아이를 업은 며느리 바위가 호수를 쳐다보고 있다고 한다.

▲ 얌전한 화진포 호수
ⓒ 김대갑
위 전설은 황해도 장연읍에 있는 용소의 유래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이 전설은 어딘가 귀에 익숙한 전설이다. 가만 생각하니 기독교서에 실린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와 비슷하다. 타락한 소돔과 고모라를 신이 벌주기로 했고, 롯과 그 가족들만이 신의 선택을 받아 몰래 도망쳤다. 그런데 궁금증을 참지 못한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보다가 그만 소금 기둥으로 변했다는 이야기와 너무나도 흡사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전설은 강원도의 남쪽에 있는 거대한 석호들에도 많이 전해져 온다. 고성군의 화진포와 송지호, 속초의 영랑호와 청초호, 강릉의 경포대 등이 대표적인데 이 중에서도 동양 최대의 석호라는 화진포 호수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고 한다. 이제부터 며느리 바위의 가슴 아픈 전설이 전해 오는 화진포 호숫가를 천천히 거닐어보자.

▲ 화진포 호수 모형
ⓒ 김대갑
화진포 호수는 담수와 해수가 교차하는 천연 호수로써 총 면적은 약 72만평이며 호수 둘레는 16km에 달한다. 석호란 예전에 바다였던 곳이 배후의 화강암 산지에서 풍화된 물질이 쌓여 형성된 사취에 의해 점차 바다와 격리되면서 생긴 호수를 말한다. 그래서 이 석호는 일반 호수와 달리 염분 농도가 높으며 담수와 해수 생물이 공존하고 있는 특이한 생태계를 가지고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화진포 호수에는 숭어와 잉어, 붕어가 공존하고 있으며 호수 주변에는 갈대를 비롯한 다양한 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화진포 호수의 가장 큰 매력은 바다와 호수가 붙어 있는 그 자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쪽에는 일망무제의 호수가 있고, 또 한쪽에는 만경창파의 바다가 있으니 두 군데 풍광을 보는 것만으로도 호연의 기가 절로 몸속에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고요하면서도 선연한 호수의 기품은 눈으로 느껴지고 호방하면서도 웅대한 동해의 기상은 가슴으로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이 화진포 호수 주변에는 일제시대와 6·25, 4·19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인물들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일세를 풍미했던 이들이지만 숙명적인 세월의 흐름을 피할 수는 없었다. 다만 고색창연한 옛 자취를 지닌 건물들에 자신의 이름 석자를 가녀리게 남기고 있을 뿐이다.

▲ 하얀 색감으로 치장한 화진포 의 성
ⓒ 김대갑
화진포 호수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는 이승만 별장이 있고, 호수와 바다를 동시에 바라볼 수 있는 곳에는 이기붕 별장이 있다. 그리고 바다와 모래사장, 금구도를 시원하게 볼 수 있는 곳에는 일명 김일성 별장이라고 불리는 하얀 건물 한 채가 교교한 자태로 암벽 위에 있다. 왜 하필이면 김일성 별장이라고 불렸을까.

실제로 이 건물은 김일성 별장이었을까. 사실이라고 한다. 그러나 원래부터 이 건물이 김일성의 별장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화진포의 성'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이 건물의 역사는 일제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화진포의 성'은 일제가 원산에 있던 외국인 휴양촌을 화진포로 강제로 옮기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건축물이었다. 당시 선교사 중의 한 명이었던 셔우드 홀이 독일 태생의 건축가인 베버에게 설계와 시공을 맡겼고, 베버는 바다가 훤히 보이는 암벽 위에 유럽의 성을 닮은 건물을 세운 것이었다. 그리고 해방이 된 후에 이 건물은 북한 공산당 간부들의 하계 휴양지가 되었다.

이런 연유로 김일성 가족들도 화진포 일대에 자주 오게 되었고 1948년부터 6·25까지 화진포의 성은 김일성 가족의 하계 휴양지가 되었다고 한다. 김일성 별장이란 이름은 바로 여기에서 연유된 것이었다.

▲ 김일성 부부의 침실이 재현되다
ⓒ 김대갑
그런데 지금 건물은 원래 건물이 아니라고 한다. 원래 건물은 1964년에 철거되었으며 육군에서 장병들의 하계 휴양지로 새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 1999년에 역사안보전시관으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김일성 별장은 하얀 색 외벽에 2층으로 이루어진 원통형 건물이다. 1층과 2층에 걸쳐 김일성과 6·25에 관한 사진과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원형의 베란다에 가면 화진포 해수욕장의 절경이 한눈에 볼 수 있다. 2층의 한쪽에는 김일성 부부의 침실을 재현해 놓았는데 얼마 전에 개축해서인지 산뜻하면서도 정갈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김일성의 침실이라. 김일성의 사생활을 엿본다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가 사망한 지 15년도 되지 않았지만 그의 생활과 흔적은 이미 하나의 역사가 된 것이다.

▲ 김일성 별장에서 본 화진포 해수욕장
ⓒ 김대갑
그런데 김일성의 별장에 들어서서 김일성의 일대기를 적어놓은 안내판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많이 놀랄 것이다. 한마디로 격세지감을 절로 느낄 수 있다. 세월이 참 많이도 흘렀고 이 땅의 역사관에도 객관적인 시각이 도입되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1937년 6월 그가 100명의 병력을 이끌어 함경남도 보천보에서 일본군을 물리치는 대승을 거두었다' '1940년 3월 백두산록 홍치허에서 일본군 180명을 전멸시킴'

10년 전만 하더라도 이런 문장을 공식적인 건물에서 게시할 수 있었을까. 10년 전만 하더라도 이런 기사를 어느 언론사에서 신문에 실을 수 있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김일성의 항일 투쟁이 아무리 진실이라 하더라도 한반도 남쪽의 묵계는 분명 하나였다. '그는 가짜 김일성이다.'

그런데 북한 땅에서 몇 십km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김일성이 항일 투쟁을 전개하여 승리했다는 문구를 보게 되다니! 화진포의 성을 방문하는 보통의 사람들은 그 문구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반세기 동안 반공과 반북 교육에 물들어온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그러나 아직도 무엇이 정확한 역사의 진실인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구와 자료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다시 먼 세월이 흐르면 무엇이 정확한 역사인지 밝혀지겠지.

▲ 다시 화진포호를 쳐다보다
ⓒ 김대갑
김일성 별장을 나와서 입구 쪽으로 걸어가면 바로 화진포 호수가 나온다. 호수의 수면에는 방금 보았던 파도치는 바다의 모습과는 너무 대조적일 정도로 고요함이 흐르고 있다. 눈을 들어 광활한 호수를 바라보니 의문점 하나가 든다. 왜 그 도승은 물로써 그 사악한 부자를 응징했을까. 다른 방법도 얼마든지 있을 텐데. 혹시 물이 지닌 순결성 때문은 아닐까. 물은 모든 것을 깨끗이 정화시키는 매개체이다. 아마 그 부자로 인해 더럽혀졌던 세속의 인심을 물로써 깨끗이 정화시킨다는 의미가 아닐까.

안타깝다. 화진포는 안타깝다. 6·25 전후를 통해 북과 남의 땅이 되었던 슬픈 역사를 가진 화진포이기에 더욱 안타깝다. 언제쯤 통일이 되어 아오지까지 동해안 일주를 할 수 있을까. 그날이 올 것이다. 외세가 오염시킨 이 땅을 한민족의 정화수로 깨끗이 씻어낼 날이 그 언젠가는 반드시 올 것이다.

덧붙이는 글 | sbs에도 송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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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작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저자. 부산스토리텔링 희곡 당선.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