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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독이 쌓여 곤한 잠에 떨어진 밤. 주막집 울타리에 심어져 있는 향나무가 스산한 가을바람에 사각거리고 짝 잃은 귀뚜라미 애달프게 울어 에는 밤. 교교한 달빛이 스며드는 야심한 밤에 주안상을 받쳐 들고 댓돌 위에 신발 벗는 소리와 함께 장지문을 여는 여인이 있었다.

"게 누구냐?"
"주막집 아낙이옵니다."


달빛에 비치는 여인을 바라보니 틀림없는 주막집 여인이었다. 땅거미가 내리는 저녁 무렵 주막을 찾아들었을 때 수려한 인물에 여염집 여인 같은 단아한 자태가 이런 시골구석 주막에 있기는 아까운 인물이구나 하고 눈여겨봤던 바로 그 여인이었다.

야심한 밤에 찾아든 여인은 누구일까?

"이 야심한 밤에 무슨 일인고?"
"나으리의 인품이 하도 고고하여 약주 한 잔 올리려 하옵니다."


나직한 목소리로 다소곳이 머리를 조아리며 절을 올리는 자세가 범상치 않았다. 아무래도 여인의 자태에서 양반집 규수의 흔적이 묻어나고 있었지만, 오른쪽으로 여민 치마 말기의 품새로 보아 처녀는 아닌 듯싶었다.

비록 치마로 하체를 감쌌지만 들이쉰 숨을 아래로 내려 음기(陰氣)를 아래로 모은 뒤 깊이 빨아들이는 마음으로 더 깊은 아래로 흘려 내리는 훈련을 한 걸음걸이로 보아 여염집 아낙은 아닌 것이 분명해 보였다.

"허허허, 네 뜻이 그러하다면 술을 따르거라."

수염을 쓰다듬으며 너털웃음을 웃고 있지만 양녕의 얼굴은 호기심과 긴장이 교차하고 있었다. 다소곳이 절을 올린 아낙이 살포시 일어나 교방 탁자 넘어 구석에 자리를 지키고 있던 거문고를 가지러 뒤돌아서는 순간, 양녕은 아찔한 충격에 현기증을 느꼈다.

평안감사의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고구려의 옛 도읍지 평양의 명승고적을 두루두루 구경했지만 뭔가 허전함을 어이할 수 없었다. 평양 8경이라 일컬어지는 을밀대와 부벽루, 보통강 나루터와 거피문 뱃놀이를 즐겼지만 뭔가 채워지지 않은 느낌이었다.

고구려의 혼을 찾아서 대성산으로 간 양녕

평안감사의 만류를 뿌리친 양녕은 견마잡이 하나만 앞세우고 길을 나섰다. 대동문을 빠져나와 동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낭림산맥 한태령에서 발원한 대동강이 부전령을 끼고 돌아 묘향산맥을 비켜 세우며 서해 바다를 향하여 남강과 합류하는 넓은 분지를 지났다.

대성산 쪽으로 꺾어 들어가니 멀리 청운산을 병풍삼아 광활한 유역을 안고 있는 옛터가 나왔다. 안학궁터다. 안학궁은 고구려의 장수왕이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천도한 서기 427년에 건립된 궁성이다. 대성산 기슭 86000여 평에 건립된 안학궁은 우리나라 정궁 역사상 최대 규모다. 당시 중국 당나라 최대왕궁인 대명궁보다 규모가 컸고 건립시기도 200여년이나 앞선다.

룡악산 산마루에 해가 걸친다. 고구려의 옛 영화는 간데없고 주춧돌만 남아있는 궁성터에 노을이 깔린다. 말 그대로 황성 옛터다. 영웅호걸은 간데없고 적막감이 감돈다. 스러지는 황혼의 햇살을 받으며 먼 산을 바라보니 옛 스승의 말이 떠오른다.

"대륙을 호령했던 발해도 우리의 조상이며 북방벌판을 차지했던 부여도 우리의 겨레입니다. 지금 저들이 차지하고 있다고 해서 자기네 땅이라고 하지만 동궁마마께서 보위에 오르면 우리의 땅이었다고 명나라에 분명히 해두어야 합니다. 훗날 한족(漢族)이 엉뚱한 소리를 하게 된다면 그때 우리는 후손들에게 부끄러운 선조가 될 것입니다"

세자시절. 그렇게도 공부하기를 싫어했던 자신을 붙들어 앉히고 역사를 가르치던 시강원 스승 하륜의 목소리다. 시강원은 이 나라 최고의 학문과 덕망을 갖춘 학자들이 다음 왕위에 오를 세자에게 논어, 대학, 중용은 기본이고 천문, 지리, 역사를 가르치던 왕실 교육기관이고 그 교육이 제왕학이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한다고 그래도 농땡이 치면서 시강원 교육을 14년간이나 받은 사람이 양녕이다. 주춧돌을 어루만지던 양녕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할아버지 태조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지 않고 요동을 정벌했다면 어땠을까?’

역사에는 가정이 없고 직계 자손이 바로 윗대를 평가한다는 것이 불효하고 불경스럽기 짝이 없지만 할아버지 이성계는 반도(半島)를 담을 그릇이고 아버지 이방원은 대륙을 호령할 배포였다고 생각되었다.

바로 곁에서 느낀 느낌이 그랬다. 만약 아버지 이방원이 할아버지와 같은 5만 대군을 이끌 위치에 있던 장수라면 요동을 정벌하여 최소한 심양에 알박기라도 해둘 배짱이었다고 생각되었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거스릴 수 없다’는 할아버지의 반도 회귀성 소극적인 생각보다도 쇠하는 원나라와 흥하는 명나라의 틈바구니에서 승부수를 띄울 아버지 이방원이라고 생각되었다.

중국은 민족으로 분열했을 땐 약했고 중화로 통일했을 땐 강했다. 원나라와 명나라로 분열되어있을 그 시기가 우리에겐 대륙진출의 호기였다. 그 기회를 놓친 우리는 지금 어떤가? 부패한 고려를 멸망시키고 새 나라를 세웠지만 여전히 속국의 멍에를 벗지 못하고 세자를 책봉하려면 황제의 허락을 받아오고 조공을 바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온다.

대륙을 휘몰아치던 고구려의 영웅은 간데없고 주춧돌만 남아있는 궁성터에 저녁노을이 내려앉는다. 부서진 주춧돌에 앉아 고구려를 생각해본다. 광활한 요동 벌판을 말 달리며 대륙을 호령하던 선조를 생각하니 가슴이 뛴다. 그 울렁거림에 숨이 막힐 듯하다.

말발굽 소리도 들리는 듯 한 착각에 빠져 있을 때. 바로 그 때다. 부서지는 노을을 받으며 지나가는 여인이 있었으니 천상의 여인인가? 지하의 귀신인가? 머리가 어찔하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소복인 듯, 하얀 치마저고리에 쪽진 머리. 지나가 버려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뒷모습은 가히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의 모습이었다.

앉아있던 주춧돌에서 벌떡 일어난 양녕은 그 여인을 뒤쫓기 시작했다. 뒤따라오는 견마잡이가 대동문과 반대 방향이라고 투덜대지만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잰 걸음으로 앞서가던 여인은 점점 대성산 깊숙이 들어가는 것이었다. ‘귀신에 홀린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여인을 놓치지 않은 것 만해도 다행으로 생각했다 얼마쯤 가던 여인이 걸음을 멈췄다.

귀신인가?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인가?

"점잖으신 선비님께서 어인 일로 아낙의 뒤를 밟으시는지요?"

노려보는 눈썰미가 부드러웠지만 매서웠다.

"아, 예. 그게 아니라 이 근처 주막이 어디쯤인가 물어보려 했던 참입니다."
"……."


여인은 말이 없었지만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는 눈치였다. 속이 들여다보이는 양녕의 변명이 우스꽝스럽기도 했지만 감사가 쳐놓은 그물에 양녕이 걸려들고 그 물고기를 낚아채는 자신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엉겁결에 주막에 든 양녕은 "주막에서 하룻밤 묵어갈 테니 감사에게 그리 전하라"는 말과 함께 따라온 견마잡이를 평양성 감영으로 돌려보냈다. 양녕의 혈관 속에 흐르는 풍류와 한량기질이 발현된 것이다.

깊은 산속 주막에 양녕이 홀로 있다는 사실을 구중궁궐 한양에 있는 세종이 알았다면 평양이 발칵 뒤집히는 것은 물론 천지가 진동하는 난리가 났을 것이다. 휴대전화가 없는 그때가 좋았던 셈이다. 견마잡이가 자기를 평양성으로 내쫓았다고 한양에 전화했다고 생각해보자.

뒷모습으로 보아 안악궁터에서 혼을 빼앗긴 그 여인이 바로 이 여인이라니 믿어지지 않았다. 섬섬옥수(纖纖玉手) 여인의 오른손이 술대를 쥐고 허공을 가르더니만, 거문고가 팅∼ 통∼ 탱∼ 울어댄다. 거문고가 북방 악기라면 가야금은 남방 악기다.

소탈한 모습의 6줄 거문고가 남성적인 악기라면 12줄 가야금은 섬세한 여성적인 악기다. 거문고라는 말 자체가 고구려금에서 유래한 거뭇고의 음변에서 유래했듯이 거문고는 고구려에서 발달하였고 가야금은 신라에서 발전한 악기다.

고치에서 비단을 뽑아내듯이 섬세하고 부드러운 음향이 가야금이라면 밤나무로 뒷 받침대를 하고 오동나무로 울림통을 한 거문고는 음양(陰陽)이 교합할 때 들려오는 교성(嬌聲)처럼 잦아들다 솟구쳐 오르고, 솟구치다 잦아드는 음색(音色)이 황홀하고 열락(悅樂)적이다.

거문고 가락에 권주가가 흘러나오고

"받으시오/받으시오/이 술 한 잔 받으시오/고금이치 통달하신/하늘같은 나으리께/정을 담아 바치오니/잡으시오/잡으시오/ 이 술 한 잔 잡으시오."

붉은 입술에 흰 이와 윤기 흐르는 귀밑머리에 복숭앗빛 얼굴. 이러한 여인을 단순호치(丹脣皓齒)와 녹빈홍안(綠鬢紅顔)의 미인이라 했던가. 이러한 미인이 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목소리로 권주가와 함께 잔을 채운다.

부드러운 여인의 손에 들려 있던 호리병에서 흘러나온 송화주가 양녕의 입을 통하여 몸속에 흐르자 짜르르∼ 술기운이 전해져 온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이게 무슨 횡잰가? 야심한 밤에 술과 여자라.

회가 동하지만 신분이 뚜렷하지 않은 여인은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 군자의 체통이고 도리이거늘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한양을 떠나올 때 아우 세종과 굳은 약조를 한 것이 있잖은가. '색향 평양에 가드라도 여자는 가까이하지 않겠다'라고 다짐했던 말이 뇌리를 짓누른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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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