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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 청곡사 제석천상. 베다시대 가장 중요한 전쟁의 신인 인드라는 나중에 불법을 수호하는 제석천으로 다시 태어난다.
ⓒ 김성후
절을 답사하고 절을 제대로 본다는 말은 절 안에 담겨 있는 다양한 의미를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절은 2500년이 훨씬 지난 아주 오래 전 인도에서 태어나 깨달음을 얻고 부처라 불리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따라 생활하는 수행자들의 공간입니다. 절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당연히 석가모니의 가르침인 불교를 알아야 합니다. 만약 지금 한국의 불교와 절을 이해하려면 석가모니가 처음 가르친 내용에다 인도, 중국, 한국이라는 지역적인 요소에다 2500여 년이라는 시간이 더해진 것 또한 알아야 합니다.

불교를 알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석가모니의 가르침 속에는 그가 살았던 지역의 시대적인 상황이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석가모니가 살았던 시대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정치・경제를 포함한 모든 사회적 상황이 급변하던 때였습니다. 석가모니의 가르침도 급변하는 시대상을 반영하듯 아주 독창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그의 가르침은 당시 사람들이 사용하던 단어와 개념, 인식구조 속에 담겨있습니다. 이런 모습에 비추어 볼 때 석가모니가 창시한 불교는 독창적이지만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불교가 만들어진 당시의 인도는 카스트제도라는 아주 엄격하게 유지되는 신분제도가 있었습니다. 카스트제도에 따르면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바라문, 크샤트리아, 바이샤, 슈드라라는 4개의 계급 속에 포함됩니다. 그런데 석가모니가 태어나는 시대를 전후로 사회 전반에 걸쳐 새로운 변화의 물결에 따라 카스트제도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가장 큰 변화의 물결이란 바로 쇠를 단련하고 사용할 줄 아는 철기시대(鐵器時代)가 열렸다는 것입니다. 쇠로 만든 농기구로 땅을 경작하고 농사를 짓자 생산량이 엄청나게 증가합니다. 그러자 잉여생산물을 서로 교환하는 상업이 발달하고 생산물의 교환이 이루어지는 도시가 형성됩니다. 상업과 도시의 발달로 사회 질서가 새롭게 만들어지자 씨족과 농업을 바탕이 된 카스트제도가 흔들리는 것입니다. 새로운 부를 창조한 상인들은 자신의 재산을 기반으로 구시대의 계급에 따른 한계와 제약을 벗어나고자 노력합니다. 또한 이 시대에 과거의 사상을 부정하는 새로운 6명의 사상가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을 육사외도(六師外道) 또는 육사외문(六師外門)이라고 합니다.

이들 육사외도와 석가모니는 과거의 전통과 질서를 비판하고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사상과 종교를 만들었기 때문에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갑자기 만들어진 사상이나 종교는 없다고 한 것이며 이런 역사적인 흐름을 알아야 불교와 절을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베다시대와 신

우리가 보통 인도인이라고 부르는 아리아(Arya)인들은 지금부터 약 5,000년에서 4,000년 전에 인도 북서쪽의 산골짜기를 따라 인도로 들어왔다고 합니다. 인도에 정착하자 그들만의 노래이며 서정시인 베다(veda)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베다는 종교적인 신념을 가진 아리아인들이 인도로 들어올 때 가지고 온 것으로 이후에도 계속 발전·계승된 것입니다.

베다에는 인도에 정착한 아리아인들의 삶과 믿음에 대한 아주 풍부한 자료가 담겨 있어 이를 근거로 아리아인들의 삶과 사상을 알아볼 수가 있습니다. 베다에는 비유적인 표현이 많아 당시에 소박한 형태의 유일신관이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제사에 큰 비중을 두는 제사 지침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베다라는 것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사상을 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속에는 온갖 사상이 담겨 있습니다.

베다의 주요 특징은 사람의 지적인 노력으로 우주의 신비를 설명하기 위해 신이란 존재를 설정한 점입니다. 초창기 아리아인들은 단순하고 소박하게 자연이 가진 강한 힘이나 상상력 그리고 규칙적인 변화를 보고 자연은 정신적인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실재로 간주하고 그 속에 담긴 규칙이나 원리를 파악하려는 시도를 하게 됩니다. 즉 물질로만 이루어진 자연의 혼돈과 무질서를 인정하지 않고 그 배후에 감추어진 규칙을 파악하려고 한 것이죠. 자연이 일정한 원리와 통일된 규칙에 따라 움직인다고 믿는 근거는 항상 일정하게 해가 뜨고 해가 지는 밤낮의 변화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어김없이 찾아오는 계절의 변화였습니다. 이런 변화의 질서를 관장하는 신의 이름은 바루나(Varuna)였습니다. 이후 바루나는 사람의 도덕이나 질서까지 관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베다시대를 대표하는 신은 뭐니뭐니해도 인드라(Indra)입니다. 인드라는 하늘의 신이자 천둥과 번개로 어둠을 몰아내는 신으로 그리스의 제우스신과 그 성격이 아주 비슷합니다. 또한 인드라는 아리아인들의 편에 서서 적을 물리쳐주는 전쟁의 신이 됩니다. 또한 악룡 브리트라(Vrtra)를 살해하고, 전쟁에서 암소들과 절구공이를 되찾아왔으며, 적들의 재산을 쓸어버리는 신이었습니다.

브라흐마나 시대 : 제사 지상주의

신들의 시대였던 베다 초기와 달리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점차 복잡하고 형식을 중시하는 제사의식을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합니다. 이 시기를 브라흐마나 시대라고도 부르기도 하는데 초기 베다에서 보이던 영감(靈感)이나 감동은 사라지고 제사의 형식이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모든 것들은 제사의식의 지배 아래 놓이며 심지어 제사의식이 없다면 태양도 떠오르지 않는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초기의 제사는 신들에게 가족과 집안의 은혜와 안녕을 기원하는 간단한 기도의 형태였는데 시간이 갈수록 많은 형식과 내용이 추가되어 더욱 어렵고 복잡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제사의 주체와 목적도 변하였습니다. 초기에는 사람들이 신에게 기도를 하고 소원을 빌면 신은 그 내용을 판단하여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능동적인 주체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형식을 갖춘 제사를 통해 사람들이 신들에게 요구를 하면 신들은 무조건 그 요구를 받아들여야 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전락합니다.

이제 제사는 신들조차 거부할 수 없는 신비한 힘을 가진 성스러운 기술이자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었습니다. 제사의식에서 행해지는 작은 동작 하나하나와 낭송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중요하며, 제사는 지극히 상징적이고 난해한 절차들로 이루어집니다. 제사의 형식과 절차에 대한 특수한 교육을 받고 제사를 관장하는 사제계급인 바라문의 지위는 그만큼 높아지게 됩니다. 사제계급인 바라문이 카스트 중 가장 높은 지위를 얻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윤회(輪回, samsara)의 등장

형식과 절차를 갖춘 제사가 중심이 되면서 아리아인들은 태어나고 죽음이 반복되는 삶인 윤회(輪回, samsara)라는 관념을 만들었습니다. 윤회는 사람이 살고 있는 동안 자신이 행한 착한 행동과 나쁜 행동의 결과에 따라 다시 태어난다는 것을 뜻합니다.

아리아인들은 남에게 베풀며 착하게 살면 그 행동에 따른 좋은 결과를 얻게 되고, 반대로 나쁘게 살면 그에 해당하는 벌을 받게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수명이 그리 길지 않아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 행한 착한 일과 나쁜 일에 대한 상과 벌을 모두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과거 자신이 행동했던 결과에 따른 과보를 제대로 받으려면 다시 태어나는 윤회를 거듭해야 하는 것이라 믿게 된 것입니다.

사실 윤회를 불교의 고유한 사상으로 이해하는 분들도 계신데 불교가 생기기 오래 전부터 인도의 문화 속에서 생성되었던 개념으로 불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불교 이전의 인도의 사상과 종교를 살펴봐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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