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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시진 작가
ⓒ 홍지연
"기쁘기도 했지만 많이 놀랐어요. 대상을 받을 거란 생각은 전혀 못했는데…. 역시 완결이 중요하다는 걸 또 한 번 깨닫게 되네요.(웃음)"

마감에 쫓겨 한숨도 못 잔 탓인지 까칠한 얼굴을 한 그가 짧은 소감을 전했다. <폐쇄자> 이후 다소 뜸했던 활동. 근 3년여만에 신작 <그린빌에서 만나요>(이하 <그린빌…>)로 유시진은 '2006 부천만화상' 대상을 받았다.

<그린빌에서 만나요>는 '그린빌 아파트'에 살고 있는 평범하고 외로운 고등학생 도윤이 어느날 아래층에 이사온 신비한 인물 사이비, 사이언 남매를 만나면서 조금씩 변화해가는 이야기다. 타인과의 소통과 교감으로 조금씩 성장하는 소년의 성장 과정을 담백하고 솔직하게 그려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꼭꼭 들어앉은 불안한 존재감. 이 불안은 사춘기 소년의 전유물이 아니기에 <그린빌…>은 그렇게 보는 이의 마음을 쓰다듬는다. 작가는 이 작품 안에 "내부에서 오는 구원"을 담았다.

"연재중에도 이건 '청소년용 카운슬링 만화'라며 자조하기도 했어요.(웃음)"

고민이 컸던 탓인지 처음 1권 분량으로 계획됐던 이 작품은 4권으로 덩치가 커졌다.

안팎의 어수선한 상황 속에 짧지 않은 휴식을 가졌다. <나인>의 폐간으로 <신명기>를 중단하게 되고, 슬럼프 아닌 슬럼프에 연재 중이던 <쿨핫>에서도 손을 뗐었다. 그래도 짬짬이 학습만화 <바보 이반>, <마니> 애장본 등의 작업을 했다.

데뷔한 지도 15년 다 돼 가지만 그때만큼 힘들었던 적도 없었다. 연재 중이던 작품이 외부 사정에 의해 일방적으로 멈춰져야 했을 때의 무력감 그리고 때맞춰 찾아온 '죽음'과도 같았던 슬럼프.

"굉장히 당황했어요. 내 그림을 보는 것조차도 싫었죠. 권태기란 말로 덮기엔 너무도 강렬한 느낌이었어요. 그것은 '죽음'과도 같았습니다."

그때의 분명하고도 서늘했던 충격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몸과 마음이 아닌 작가 유시진이 늙어버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서글펐다. 캐릭터에 대한 애정만으로 모든 어려움이 사라지곤 했던 데뷔 초 열정의 시간이 때때로 그리워지기도 한다고.

"정말 그때는 왜 그렇게 재미있었는지…. 그때는 뭔가 열정이 있어 그 열정과 애정이 날 끌고 갔거든요. 내가 아무리 못 그려도 상관없다고 느낄 만큼. 슬프게도 지금은 그런 종류의 열정은 없죠."

▲ <그린빌에서 만나요>는 소통과 성장을 담담히 그려낸 수작이다.
ⓒ 서울문화사
근래 들어 시작한 두 이야기 <그린빌…>과 <온>은 일종의 보상작 같은 것이었는지도. 주인공의 생각 속으로만 끊임없이 빨려 들어갈 수 있었던 시간이다. 언뜻 들어선 '뜬구름 잡는 이야기' 같던 두 이야기를 다행히 팬들은 반갑게 맞아줬다.

"팬들께 감사하죠. 내가 말하는 것에 대해 잘 들어주고 있다는 느낌, 소통의 희열, 그게 아주 소수라도… 그것이면 족하니까요."

그리고 지금은 그때와는 조금은 다른 '자유'가, 열정 대신 숙고가 그에게 새로운 힘을 주고 있다.

"지금은 재생의 시기라고 하면 너무 거창할까요? <그린빌…>과 <온>의 내용이 그렇듯 제 스스로 재생하고 있는 시간입니다. 끝나고 나면 이제 다른 것을 할 수 있겠죠. 하여간 잘 돼야 할 텐데…."

그는 현재 <코믹뱅>에 잠시 중단됐던 <온>을 다시 연재중이다. 연말께 작품이 마무리되면 다시금 서사성 넘치는 특유의 작품이 그에게서 태어날 예정이다. 차기작은 가족 미스터리 사극이 될지, 탁월한 감각이 쏙쏙 밴 단편들이 먼저일지는 알 수 없다. 무엇이든 궁극에 그가 보이고 싶은 것은 자신 안에 꽉꽉 들어박힌 사랑을 보이는 것.

"울고 짜는 연애이야기 같은 게 아니라 읽는 이로 하여금 뭉클하게 느껴지는 '진짜 사랑'을 그려내고 싶어요. 제 속에서 우러나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담은 작품. 아직은 멀고 먼 얘기겠죠? 이제 겨우 솔직해졌을 뿐인걸요."

덧붙이는 글 |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CT News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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