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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뿌리 깊은 나무> 겉그림.
ⓒ 밀리언하우스
세종대왕이 나라를 다스리던 시절, 집현전 학사들이 시체로 발견되는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시대상황을 떠올려본다면 이보다 기괴한 사건도 없을 터인데, 뜻밖에도 진상을 파헤치게 된 건, 사건 발생시 숙직하던 채윤이라는 겸사복이다.

정상적으로 보면 채윤이 이런 큰 사건을 맡을 수는 없는데 그럼에도 맡게 된 이유는 높은 벼슬아치의 간계 때문이다. 잘못되면 방패막이가 되라는 술책인 셈이다. 올곧은 심성을 지닌 채윤은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하고 그것에 따라 <뿌리 깊은 나무>도 이야기의 막을 연다. 소설답지 않은 날카로운 메시지를 던지면서.

한동안 소위 '장르소설'이라 불리는 것들의 눈길이 '우리 것'으로 향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주목을 받은 적이 있었다. <다빈치 코드>이후 봇물 터지듯 몰려오던 외국 작품들에 비해 수적으로 절대열세였던 만큼 내용은 제쳐두고 희소성만으로도 눈길을 끌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지난 일이다. 지금은 이야기가 다르다. 외국 것에 결코 뒤지지 않는 '내공'을 보여준 작품들이 꾸준히 등장했기 때문이다.

왜, 이정명은 '세종대왕 시절'을 돌아봤을까?

그렇기에 이정명의 <뿌리 깊은 나무>가 '우리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주목한다는 건 억지스러운 말이다. 그런데 왜인가? 내용을 보기도 전에 눈길이 간다. 단순히 '우리 것'이기 때문이 아니다. 별다른 시대에 눈을 돌렸기 때문이다. <뿌리 깊은 나무>가 돌아본 시대는 세종대왕 시절이다. 그동안 정조 시대가 장르소설의 주요 무대가 됐던 것을 상기해본다면 특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눈길이 간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 시대인가 하는 궁금증 때문이다.

세종대왕 시절은 역사상 가장 평화로웠던 시대 중 하나로 뽑힌다. 이는 하나의 상식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분명 이정명도 이를 알고 있을 테다. 그렇다면 왜인가? 무엇을 꼬집어낼 요량으로 눈을 그곳으로 돌릴 것인가? <뿌리 깊은 나무>의 연쇄살인사건으로 돌아가 보자. 살해된 이들의 공통점은 집현전과 관련돼 있다는 것이다. 집현전이 무엇을 하는 곳인가? 학문을 연구하는 곳이다. 하지만 세종대왕 시절에는 그것보다는 '한글'과 관련된 것으로 더 유명하다.

그렇다면 여기서 추측이 가능해진다. 연쇄살인사건은 한글과 관련된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렇다. 이정명은 날카롭게 그 시대의 불안한 요소를 들춰냈다.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한글을 만들었다'는 사실 이면에 드리워진 불안감을 찾아낸 것이고 그것이 <뿌리 깊은 나무>의 원동력이 된다.

이정명이 주목한 불안감이란 무엇인가? 세종대왕이 아무리 태평성대를 이루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강력한 나라를 만들었다고 해도 조선은 중국의 신하와 같았다. 왕위에 오를 때도 '신고'를 해야겠고 중국이 부당한 요구를 해도 쉽게 거부할 수 없는 처지였다. 때에 따라서 형제관계나 부자관계라는 말로 치장됐지만 사실상 주종관계였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중국에 대한 반기가 아닐까?

<뿌리 깊은 나무>, '자주'와 '사대'의 충돌

<뿌리 깊은 나무>의 갈등은 비밀리에 한글을 만들려고 했던 세종대왕과 뜻을 함께하는 집현전 학자들이 중국에 이 사실을 고해바치는 사대주의자들과 벌이는 대결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자주'와 '사대'의 충돌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미래'와 '과거'의 충돌이라고 할 수 있으며 '실리'와 '명분'의 대결로도 볼 수 있다. 이는 상식으로는 쉽게 진단할 수 없던 것이다. 그래서인가. <뿌리 깊은 나무>는 신선하다. 단순히 배경만 색다른 것이 아니라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들 이면에 감춰졌던 사실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아가 <뿌리 깊은 나무>는 단순히 이것들을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고 우회적으로, 그러나 매섭게 오늘날을 비판하는 날카로움까지 갖추고 있다. 우리 것을 놓고 맹목적으로 외국 것을 좇는 것에 대한 경계라고 할까. 목숨을 걸고 한글을 만들려고 했던 세종대왕이 전하는 말, 특히 당부의 말들은 비록 소설의 그것이라 할지라도 의미심장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뿌리 깊은 나무>는 다소 민족주의적 감정을 자극하는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그 때문에 메시지를 외면하기에는 아쉬움이 크다. 한글을 만드는 것을 낱낱이 고해바치던 자들보다 더하게 외국 것을 좇는 풍토가 심각한 오늘이기에 '자주'를 꿈꾸고 '우리 것'의 중요성을 말하는 <뿌리 깊은 나무>의 메시지는 두고두고 생각해볼 것임에 틀림없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억지스럽지 않다. 술술 잘만 풀려 읽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또한 시대를 엿보게 해주는 묘사 또한 충실하고 빚어낸 구성도 훌륭하다. 그리고 그것에서 전하려는 메시지 또한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가슴을 아련하게 만들어준다. 장르소설로서는 보기 드물게 가벼움을 넘어선 무게감을 갖춘 셈이다. 장르소설이라는 이름을 넘어서 소설 즐기는 맛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만족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알라딘 개인블로그에도 게재했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 1

이정명 지음, 은행나무(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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