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 인문사회과학서적으로 가득한 <그날이 오면> 내부 모습.
ⓒ 오마이뉴스 김덕련
"어렵지만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려워도 가야 하는 길이기도 하고요."

예전 대학가엔 새로운 세상을 향한 꿈이 넘쳤고, 그러한 꿈을 키울 수 있던 인문사회과학서점이 있었다. 그러나 비판적 인문정신은 쇠락했고 자본의 논리가 대학가에서 주도권을 잡았다. 인문사회과학서점들도 하나둘씩 사라져갔다.

꿋꿋하게 버틴 곳도 있었다. '사실상' 전국 유일의 인문사회과학서점으로 남은 서울대 앞 <그날이 오면>(아래 <그날>, 대표 김동운)이 그러했다.

그러던 <그날>이 위기다. 매출이 10년 전의 40% 수준으로 떨어져 227만원의 월세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 지 오래다. 누적된 적자와, 꿈을 지키기 위해 져야만 했던 빚도 부담이다. 악령처럼 <그날> 주변을 맴돌았던 재정적 어려움은 이젠 <그날> 운영진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졌다.

'그날아저씨'로 불리는 김동운 대표는 얼마 전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해 <그날> 정상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지난 6월까지 관악구의원으로 활동한 부인 유정희씨도 <그날>로 돌아와 김씨와 함께하고 있다.

이들이 서점 정상화 방안을 주위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려는 이유는 <그날>이 자신들만의 것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비판적 인문사회과학서적을 보며 세상을 올곧게 바라보는 눈을 얻은 숱한 사람들과 함께 <그날>의 역사를 만들어왔다는 믿음이다.

위기 맞은 <그날>, 진보의 '진지'로 살아온 18년 역사

▲ <그날이 오면>에서 한 이용자가 독서에 몰두해 있다.
ⓒ 오마이뉴스 김덕련
<그날>이 문을 연 때는 1988년. <그날>은 진보와 비판의 공간을 연 '87년 6월항쟁'과 '7·8·9월 노동자대투쟁'의 산물이었다. 김씨 부부는 1990년 <그날>과 인연을 맺었다. 처음에는 부인 유씨가 대표를 맡았고 김씨는 1993년부터 본격적으로 서점 일에 뛰어들었다.

1990년대 중반, 인문사회과학서점은 이미 위기를 맞고 있었다. 1980년대 말 다섯 군데나 되던 서울대 근처 인문사회과학서점은 1995년 말께 <그날>만 남기고 모두 사라졌다. 다른 대학가에 있던 '동지' 서점들도 문을 닫거나, 존립을 위해 인문사회과학서적 위주이던 매출 구조를 바꿔야 했다.

그러나 <그날> 운영진은 꿈을 버리지 않았다. 김씨 부부는 어려운 시기를 맞아, 오히려 공세적으로 <그날>을 운영했다. 1995년 문을 닫은 인문사회과학서점 <전야>를 인수한 뒤 그 자리로 <그날>을 확장 이전했으며, 인문사회과학서적 중심 구조를 유지했다.

김씨 부부가 시도한 것은 서점 확장만이 아니었다. 이들은 학생들이 부담 없이 세미나도 하고 책도 읽을 수 있는 공간인 '북 카페' <미네르바>를 1999년 <그날> 2층에 열었다. 김씨 부부는 <미네르바>에서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와 홍세화 <한겨레> 시민편집인 등 진보적인 '저자와의 대화' 행사를 열기도 했다.

그보다 한 해 전(1998년)엔 자비로 무료 잡지 <그날에서 책읽기>를 창간했다. 1~2달 사이 간격으로 발간됐던 <그날에서 책읽기>(매호 70~120쪽)는 주로 인문사회과학서적 서평을 담고 있었으며, 책을 매개로 인간과 사회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기 위한 시도였다.

김씨를 중심으로 서울대 재학생 및 졸업생들이 함께 만든 이 잡지는 '알찬 내용이 담긴 새로운 시도'라는 평을 얻으며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성과는 새내기들이 읽을 만한 책을 분야별로 소개한 단행본 출간 작업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언제나 서점 그 '이상'이었던 <그날>은 진보 운동에서 의미 있는 '진지'였을 뿐 아니라, 유씨가 구의원이던 시절 주도했던 '도림천 살리기 운동' 등 지역운동을 뒷받침하는 든든한 버팀목 역할도 했다.

그러나 재정 문제는 이런 의욕적인 기획의 발목을 잡았다. <그날에서 책읽기>는 2년간 발간된 후 더 이상 나오지 못했고, <미네르바>도 2004년 문을 닫았다. 1997년 IMF 외환위기 후 <그날>의 매출도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인문사회과학서적을 자양분으로 삼는 학회와 동아리가 급격히 줄고, 자본력을 앞세운 인터넷서점 및 대형서점들의 책값 할인 경쟁으로 도서유통 구조가 왜곡되면서 <그날>이 설 공간은 점점 좁아졌다.

<그날> 살리기? NO! "새 길 열기"… 호응하는 '<그날>서포터'들

▲ '그날아저씨'로 불리는 김동운 <그날이 오면> 대표.
ⓒ 오마이뉴스 김덕련
절박한 상황이지만 김씨 부부는 "<그날> 살리기"라는 표현을 거부한다. 단순히 서점을 살리자는 차원이 아니라, 어려움 속에서도 품어온 꿈을 펼칠 "새로운 길"을 열 방법을 고민할 때라는 의미다. 또한 18년간 그래왔듯, 앞으로도 그 길은 <그날>을 함께 만들어온 사람들과 열어가겠다는 게 이들의 생각.

김씨는 29일 만남에서 "학생 때 <그날>과 함께 치열하게 운동하고 고민했던 사람들도 졸업 후엔 일상에 파묻혀 삶과 사회에 대한 긴장감이 느슨해지는 경우가 많다"며 "다시 <그날>을 매개로 긴장감을 높였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사람들에게 모임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새 길을 함께 열자'는 김씨 부부의 제안은 <그날>에서 꿈을 키운 이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그날> 서포터'(가칭)들과 김씨 부부는 지난 26일 <그날> 부근에서 모여 위기 극복 방안을 논의했다. 참석자들은 시급한 월세 문제를 해결할 '후원회'를 오는 9~10월께 구성하고 향후 2년 정도는 부채 해결 등 서점 정상화에 주력한다는 데 원칙적으로 의견을 모았다.

김씨 부부는 당면 문제를 해결한 뒤, 기금을 모아 법인을 설립하고 안정적인 재정 구조를 구축할 계획도 하고 있다. 또한 당장 실현하긴 어렵겠지만, '<그날에서 책읽기>'의 21세기 버전을 구현할 온라인 활동도 구상 중이다. 후원회원들이 금전적으로 후원하는 차원을 넘어, <그날>에 참여해 지적 자극을 받고 삶을 성찰하는 계기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서점 <그날>과 토론 공간이던 <미네르바>, 양질의 읽을거리였던 <그날에서 책읽기>가 삼발이처럼 조화를 이뤘던 경험에서 비롯된다. 여기에 '연구와 강연' 기능을 더한 문화 공간, 비판적 인문 정신이 살아 있는 공간을 김씨 부부는 오늘도 꿈꾸고 있다.

▲ 바깥에서 바라본 <그날이 오면>.
ⓒ 오마이뉴스 김덕련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