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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준만 교수 작업에 참여해 여러 책을 공동저술했던 김환표씨.
ⓒ 김환표
7월초 23년 만에 새 작품 <인간연습>을 발표한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씨를 인터뷰한 이후 '개점휴업'(?) 상태로 있던 '책과 사람' 코너에 20일 만에 손님이 들었다. 장마 끝에 보는 햇빛만큼 무척 반갑다.

'아주 낯선 쌀의 역사'란 부제를 단 <쌀밥전쟁>(인물과사상사 펴냄)이 그것이다. 표지에 검은색 일색으로 인쇄된 책제목 네 글자 중 유독 빨간색인 한 글자가 눈길을 붙잡는다.

'쌀!'

농부의 자식이라는 실존적 각성을 바탕으로 '쌀'이라는 열쇳말을 통해 한국인의 내면에 깊숙이 자리 잡은 쌀과 한국인의 관계를 탐구하고 싶어 <쌀밥전쟁>을 썼다고 말하는 이 책의 지은이 김환표(33)씨를 이메일과 전화로 만났다.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공부한 김환표씨는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방과)의 작업에 참여해 <시사인물사전> <권력과 리더십> 등을 공동 저술했으며, 한국인의 삶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주제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려고 한다. 이번 작업이 그 첫 단독 성과물이다.

혹시 요즘 쌀값을 아세요?

"가끔 시골집에 가면 어머님께 쌀값을 여쭤보긴 하지만, 정확하게 얼마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소비가 줄고 외국쌀이 들어오고 해서 가격이 많이 내려갔다는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제가 쌀을 사 먹지 않고 시골집에서 가져다 먹기 때문에 쌀값에 더 둔한 것 같습니다."

김환표씨도 나처럼 쌀값을 모르긴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쌀을 사먹는 당신은? 가계비에서 쌀값이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낮아서 신경 안 쓰신다고?

인터넷을 뒤졌다. 농수산부 자료에 따르면 6월15일 현재 80kg들이 한 가마(산지 가격) 가격이 전국 평균 14만1520원이라고 한다.

그렇다. 쌀이 귀하던 시절, 쌀값 정도는 누구나 알고 있는 기본 상식 중의 상식이었다. '소 한 마리에 쌀 몇 가마'하는 식으로 쌀값은 물가를 나타내는 척도였다.

그런 쌀이 지금은 어떤 대접을 받는가. 일용할 양식임에도 일용할 양식만큼 중요한 것이 못된다. '소비량 감소'라는 내우(內憂)와 '시장 개방'이라는 외환(外患)에 시달리며 한국 쌀은 지금 안팎곱사등 처지다.

특히 일반 국민들의 쌀에 대한 정서와 태도가 날로 무관심하거나 방관자의 입장으로 변하고 있다는 점은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준다.

"쌀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쌀을 여전히 민족의 혼이요, 생명줄로 간주하고 있지만 쌀 시장개방론자들을 비롯해 쌀 시장 개방 문제에 대해 무관심한 도시인 다수는 더 이상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들에게 쌀은 핸드폰이나 차와 같이 하나의 공산품에 지나지 않습니다."

쌀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 <쌀밥전쟁> 표지 이미지.
ⓒ 인물과사상사
예로부터 한국인에게 있어 쌀은 단지 음식이 아니라 정치요, 민생안정을 재는 바로미터였다. 그것이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한(恨)의 대상이 되었다. 뼈 빠지게 농사를 지어 놓고도 일제의 수탈로 기아 상태를 면할 수 없어 초근(草根)과 목피(木皮)는 물론이고 음식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으로 허기를 달래야 했기에, 한국인들에게 쌀밥 한 공기는 꿈에도 그리던 소원이었다.

그러나 해방도 쌀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해방 정국에서 '쌀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비장감 풍기는 절규가 터져 나올 정도였고, 한국전쟁 그리고 보릿고개와의 힘겨운 사투는 계속됐다.

쌀이 부족하다 보니, 1970년대 말까지 정부의 주된 관심은 증산과 함께 언제나 절미(節米: 쌀 덜먹기), 혼분식, 무미일(無米日: 1주일에 한 번씩 각종 음식에서 쌀을 쓰지 않는 날) 등 각종 정책을 통해 쌀 소비를 억제하는 것에 있었는데, 이런 정책이 도리어 눈처럼 흰 쌀밥 한 그릇에 대한 갈망을 키웠다.

쌀에 맺힌 한국인들의 한은 군사작전식으로 전개한 증산운동에 힘입어 쌀의 자급자족에 성공한 1977년에 가서야 풀렸다.

"드디어 쌀 자급자족에 성공하자 '보릿고개'나 '혼분식' '무미일' '절미' 같은, 다시 떠올리기 싫은 끔찍한 단어들은 모두 기억의 창고 속에 보관해 놓고, 흰쌀밥을 배부르게 먹으면서 한풀이를 했죠."

쌀은 남북한 체제 경쟁의 상징

"과거에는 쌀이 남북한 간의 체제 경쟁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치열하게 벌어졌던 남북한의 잘살기 경쟁에서 승리했음을 말해주는 증거는 다름 아닌 쌀밥을 얼마나 자주, 많이 먹느냐는 것이었죠."

1984년 9월 남한에 수재가 발생했을 당시 북한에서 구호용으로 보내온 쌀은 이를 드라마틱하게 보여 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고 김환표씨는 말했다.

당시 <노동신문>은 구호활동을 '분단 40년 역사 이래 최고의 위업'이라고 대서특필하며 북한 체제의 우월성을 강조하고자 했지만 남한에 도착한 쌀은 쌀이라고 하기엔 질이 상당히 떨어지는 것이었다. 북한이야 '헐벗고 굶주리는 남조선 수재민에게 원조'한 것이었지만 남한 사람들에게 이 쌀은 구호품이라기보다는 기념품에 가까웠다.

그러나 현재 남한은 쌀이 남아돌아 문제고 북한은 심각한 식량난에 허덕이고 있다. 그나마 최근에는 미사일 시험 발사 문제로 인도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던 남한의 대북 쌀 지원도 중단된 상태다.

그는 쌀 지원은 인도적 차원에서 계속되길 바랐다. 아울러 그는 머지않은 미래에 쌀이 남북 간에 형성된 이질감 사이에 다리를 놓아 줄 가장 중요한 연결 고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영화 속 이야기지만, 영화 <쉬리>에서 북한의 8군단 소좌 박무영(최민식 분)이 한석규와의 마지막 전투에서 '썩은 치즈에 콜라와 햄버거를 먹고 자란 너희들이 동포들의 아픔이나 통일을 알 리 없다'고 일갈했는데, 대단히 통찰력 있는 대사라고 생각합니다."

쌀은 사회적 연대의 중요한 열쇳말!

▲ 쌀과 한국인과의 관계를 탐구하고 싶어 <쌀밥전쟁>을 썼다고 말하는 김환표씨.
ⓒ 김환표
현재 쌀은 우리나라 전체 농업 생산액의 30%, 농업소득의 40%, 농작물 재배면적의 57%를 차지하고 있으며, 전체 농가의 75%가 쌀농사를 짓는다. 이 통계가 시사하듯, 쌀은 여전히 한국 농촌과 농민의 생명줄이다.

쌀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인들에게도 중요하다. 세계 인구의 절반이 주식으로 삼는 매우 중요한 식량인데다 특히 2000년대 들어 세계 곡물 생산량은 감소한 반면 소비량 증가로 재고량이 감소하면서 식량이 안보문제로 급부상하고 있고 있기 때문이다.

쌀농사를 짓는 농촌의 상황이 절박하지 않은 시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 농촌이 처한 현실은 말 그대로 전대미문의 위기 상황이라고 김환표씨는 말한다.

'패스트푸드'에 길들여진 청소년들과 오늘날 가정의 식탁을 책임지고 있는 젊은 주부들에게 '쌀과 한국인'의 관계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고 한국 쌀의 소중함을 곱씹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고 싶어 이 책을 썼다는 김환표씨는 쌀값이 부담되는 저소득층이라고 하더라도 국산 쌀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외국쌀을 가정의 식탁에 올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말로 한국 쌀의 절박함을 호소했다.

한때 쌀밥은 단순히 탄수화물 덩어리에 불과하며 미용과 다이어트에 해롭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지만 몇몇 연구결과에 따르면 오히려 그 반대라는 사실이 밝혀졌다는 말을 수차례 반복하던 김환표씨는 이런 말을 남기며 인터뷰를 갈무리 했다.

"쌀은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세계화에 맞서는 한국사회의 사회적 연대의 훌륭한 키워드라고 생각합니다. 쌀이 한국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고려해 봤을 때, 쌀을 중심으로 한 사회적 연대는 꼭 필요한 일일뿐만 아니라 가장 효과적인 저항 수단이기도 한 셈이지요."

쌀밥 전쟁 - 아주 낯선 쌀의 역사

김환표 지음, 인물과사상사(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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