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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암사
올해는 삼국유사의 저자인 일연 스님이 태어난 지 800주년 되는 해이다. 이 특별한 의미와 함께 최근 삼국유사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오래 전에 읽었지만 제대로 읽지 못했던 아쉬움과 함께 일연스님이 삼국유사에 기록한 행간을 조금이라도 제대로 읽어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이십 여 년 전, 있는 그대로의 삼국유사를 그대로 번역한 그 책은 딱딱하고 유치했다. 교과서에서 배운 역사 이야기들이거나 '전래동화'로 만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다.

특별한 설명도 없었다. 그래서 설렁설렁 넘겨가며 솔깃한 부분만 입에 맞게 읽었다. 그러니 삼국유사의 가치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나만 이랬을까?

일연스님의 탄생 800년을 기념하여 여러 형태의 삼국유사들이 나오고 있다. 내가 선택한 것은 세간에 삼국유사 박사로 유명한 고운기 교수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이 책을 통하여 이십 여 년 전에 읽으려고 했었지만 제대로 읽지 못했던 아쉬움을 맘껏 해소할 수 있었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는 어떤 책일까?

평범한 사람들 이야기, 삼국유사는 민중을 위한 책

제 40대 애장왕 때였다. 승려 정수는 황룡사에서 지내고 있었다. 겨울 철 어느 날 눈이 많이 왔다. 저물 무렵 '삼랑사'에서 돌아오다 '천암사'를 지나는데, 문밖에 한 여자 거지가 언 채 누워서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 스님이 보고 불쌍하게 여겨 끌어안고 오랫동안 있었더니 숨을 쉬었다. 이에 옷을 벗어 덮어 주고, 벌거벗은 채 절로 달려갔다. 거적 대기로 몸을 덮고 밤을 지샜다. - 삼국유사 감통편(正秀師救氷女·정수사구빙녀)

정수스님이 '얼어 죽을 뻔한 여자를 구했다'는 이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감동스럽다. 그래서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조신의 꿈이 서린 낙산사, 의상의 불사의암, 오어사의 원효 등과 함께 일부러 찾아 읽기도 한다.

보잘 것 없는 거지 여자가 얼어 죽어가고 있다. 스님은 여인을 온몸으로 꼭 끌어안고 자신의 체온으로 얼어붙은 생명을 녹여 살린다. 그 여인이 어떤 여인이든, 청정 수행자로서 여인을 품었음은 이미 파계다.

그렇지만 정수로서는 아무런 망설임도 경계도 없다. 자신의 성불은 나중 일이다. 우선은 여인을 살리고 볼일이다. 이런 정수에게 고귀하고 천한 신분의 구분도 음행의 대상인 여인도 없다. 눈앞에서 생명 하나 꺼져가고 있을 뿐.

그렇건만, 얄팍하고 속 얕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엄연한 파계요. 한편으론 어리석다. 파계도 모자라 달랑 입고 있던 옷 한 벌 벗어 주고 맨몸뚱이로 정신없이 내달리는 정수스님… 그런데 눈앞에 죽어가는 사람을 외면하고 이루는 성불이 무슨 의미이랴. 무엇을 위하여 도를 구할 것이며 누구를 위하여 성불하랴. 무엇이 진정한 믿음인가!

▲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에는 삼국유사 유적지를 따라 나선 양진씨의 사진 400여점을 만날 수 있다. 삼국유사 특별전(2006년 2월23일~3월24일, 역사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책 속 사진을 찍었다.
ⓒ 김현자
나는 좋아하는 사람 떠올리듯 정수스님을, 그리고 이 부분을 자주 떠올린다. 불자인 내가 바라는 참다운 보살행, 자비실천의 생생한 현장이기 때문이다. 추위에 얼어 죽어가는 가난한 여인에게 부처님의 좋은 말들이 무슨 소용이랴. 헐벗은 사람에게 금빛 찬란한 불상보다는 정수스님이 선뜻 벗어준 옷 한 벌이 부처일 것이다.

종교는 이처럼 훌륭한 교리보다는 몸소 뛰어드는 행동과 실천이 먼저요, 종교인은 무릇 정수스님 같아야 할 것이다. 자신만의 성불을 위하여 조용한 숲에서 참선에 드는 것보다 민중 속에서 민중의 고통을 화두 삼아야 할 것이다.

위정자들은 민중의 고통과 행복이 그들의 화두가 되어야 하고 국가의 정책은 정수스님이 선뜻 벗어준 옷 한 벌처럼 되어야 할 것이다. 사람과 사람간의 나눔 역시 또한 이래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삼국유사를 21세기에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일연은 삼국유사를 왜, 누구를 위하여 기록하였을까?

민초 속에 직접 뛰어 들어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민초들 사이에 감동이 되고 전설이 되어버린 곳을 찾아 눈으로 확인하고 적어나간 일연의 행간들. 이런 일연의 발길 따라 삼국유사의 진정한 주인은 우리들, 민중이라고 단정해버리는 것은 지나친 무리일까?

삼국유사 본뜻 살린 해설도 읽을거리

"애장왕 때라면 9세기가 막 시작할 무렵이다. 저물어 가는 나라의 분위기가 여기저기 감지되고, 정치적으로는 더욱 혼란스러워지는 때였다. 그런 사회를 지탱해주는 것은 저 잘난 사람들이 아니었다. 여분의 옷 한 벌 없이 살아가는 한 승려가, 돌아가 덮을 이부자리 하나 없는 처지에 입고 있던 옷을 몽땅 벗어주고 알몸으로 달려가거니와, 그 순간이 바로 신라사회의 고갱이였다고 말하는 것은 어떨까? -책 속에서

삼국유사 '감통'편에는 이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한 감동이 불교를 매개로 진하게 펼쳐지고 있다. 주인공들은 평범한 사람들.

가진 것 없지만 이들은 삼국유사 뒤편에서 따뜻하고 조용히 미소 짓고 있다. 하마터면 하찮게 흘려버릴 이 평범한 사람들 이야기에 저자 고운기는 특별한 감동들을 덧붙이고 있다.

저자는 삼국유사에서 반드시 알아야 하는 민족의 정체성은 정체성대로, 가슴으로 반드시 느껴야하는 민중들의 평범하지만 소박한 감동은 감동대로 맘껏 느낄 수 있도록 자세한 해설을 실었다. 그리고 시인다운 감성으로 일연의 행간을 감동 있게 짚어내 준다.

글마다 역사적인 해박한 지식이나 배경을 관련지어 들려주고 있어서 역사를 하나의 산이 아닌 거대한 산맥으로 짚어나가면서 만날 수 있다.

▲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스님의 탄생 800주년인 올해는 이를 기념하는 책도 여러권 출판되었고 관련 행사들도 많다. 사진은 역사 박물관에서 열렸던 삼국유사 특별전.
ⓒ 김현자
예전부터 삼국유사를 읽고는 싶었지만 너무 딱딱하거나 유치하여 나처럼 아쉬움이 있는 사람들에게 고운기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를 주저 없이 권해보고 싶다.

이 책은 책상머리에서 연구되고 씌어 진 여타의 책들과 분명 다르다. 저자 고운기는 삼국유사의 현장을 20년 동안 찾아다니며 일연의 흔적을 찾고 일연이 삼국유사를 통하여 말하고 싶었던 것을 읽어내려고 애쓴다. 삼국유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는 책이 바로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인 것이다.

800여 페이지에 이르는 분량이지만, 일연이 삼국유사에 담고자 하였던 것을 따라나선 두 사람의 발길 따라 가다보면 그다지 지루하지 않다. 덕분에 맛있게 읽었던 삼국유사. 학자들 사이에서나 연구되고 해석되던 삼국유사가 진정한 주인인 우리 민중들에게 제대로 걸어 와서 자리를 잡은 느낌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저자 고운기(1961년 전남 보성)씨는 한양대 국문학과와 연세대 대학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밀물 드는 가을 저녁 무렵'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1999년부터 일본 게이오 대학 문학부 방문 연구원으로 한국과 일본의 고시가를 비교 연구하였고, 2006년 현재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시집으로 <밀물 드는 가을 저녁 무렵>, <섬강 그늘>, <나는 이 거리의 문법을 모른다>가 있으며, 그동안 지은 삼국유사 관련 연구서로 <일연>(1997), <삼국유사>(2001), <일연과 삼국유사의 시대>(2001),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2002)가 있다.

옮긴 책으로는 시모무라 고진의 <논어>, <한국, 1930년대의 눈동자>, <그늘에 대하여> 등이 있다.

연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한 저자 양진(1966년 대전)씨는 대학 재학시절부터 사진 동아리 '연영회'에서 활동하며 사람과 자연을 테마로 한 다큐멘터리 사진을 주로 찍어 왔다.

1991년부터 고운기와 함께 <삼국유사>의 현장을 답사하면서 사진 작업을 했고, 2006년 현재 우리의 자연과 문화를 담아내는 일을 하고 있다. / 김현자

덧붙이는 글 |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글:고운기, 사진:양진/현암사 2006년 1월 30(개정판)/3만 5000(DVD포함가격입니다)

이 책은 2002년 4월 30일에 나왔던 책을 다시 정리, 일연스님 탄생 800주년을 기념하며 2006년에 개정하여 나온 책입니다. 일명 고운기 양진 3부작이라 말하는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일연을 묻다><길 위의 삼국유사>중에서 <길 위의 삼국유사>를 다음기사로 잇겠습니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고운기 지음, 양진 사진, 현암사(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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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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