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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현충원에나붙은 김창룡 묘이장 반대와 친북세력 타도를 요구하는 현수막
ⓒ 오마이뉴스 심규상

대한민국 예비역 장성들의 모임인 성우회(회장 김상태-예비역 공군 대장)라는 단체가 있다. '자유수호, 국가보위와 조국의 평화통일에 관련된 문제를 연구하고 이러한 가치들에 중대위협이 되는 조짐이 있을 때에는 결연히 정론으로 비판, 계몽하여 자유 민주주의 체제수호를 위한 국민적 결의를 선도'하겠다는 것이 자신들이 밝히고 있는 창립 목적이다.

그런데 요즘 하늘보다 더 높으신 위엄을 자랑하는 '별'들이 체통도 포기하고 김창룡 묘를 지키겠다며 파수꾼을 자처하고 나섰다. 그들이 보기에는 김창룡의 묘를 이장한다면 '자유수호, 국가보위와 조국의 평화통일'에 중대한 위협이 되는 모양이다.

지난 6월 6일 현충일.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등 지역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은 매년 그렇듯이 대전국립묘지 앞에서 대표적인 친일군인 김창룡(1920-1956) 묘 이장을 요구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예년과 달라진 것은 집회 한 달 전 성우회와 대한참전단체연합회가 집회 신고를 미리 내고 시민단체들이 매년 벌이던 집회 장소를 선점해 맞불 시위를 벌인 것이다.

나 같은 예비역 육군 병장 출신은 군 복무시절 먼발치에서조차 '별' 구경하기도 힘들었는데 이런 현장에서 그 분들을 보다니 '영광'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 막상 그들이 나눠주던 유인물 내용을 보니 평소 '별'들에 대한 최소한의 존경은 물론 기본에도 미치지 못하는 역사인식 수준을 확인하면서 그들 아래서 군 복무를 했던 지난날이 왜 그리 불합리하고 힘들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러면 그들이 전국에서 올라 온 참배객들을 상대로 나눠준 <순국정신 이어받아 친북세력 타도하자!>는 제목의 유인물 내용을 살펴보자(정확히 말하면 민족문제연구소 회원들을 의식하며 만든 것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현충일에 생각하는 호국영령들의 위대한 생애'라는 부제의 이 유인물에서는 "요즘 사람들은 김창룡이 어떤 인물인지 잘 알지 못할 것"이라고 전제하면서 "대한민국의 전복을 미연에 막아낸 김창룡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대한민국이 가능했을까. 지금 '김창룡 묘'를 대전 국립묘지에서 파내야 한다고 선동하는 무리가 있으니 참으로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기세라면 그들은 언제고 훈장이 번쩍이는 제복 차림으로 그들 눈에는 '친북세력'에 불과한 연구소를 쳐들어올지 모르는 일이다.

그들이 하늘처럼 모시는 미국만 하더라도 반전∙평화운동의 최고 동력이 참전군인들과 참전단체들인 데 비해 대한민국의 장성들과 참전군인들은 언제나 피에 굶주린 모습을 하고 있으니, 광주에서 열리고 있는 6∙15민족통일대축전은 그들의 눈에는 제2의 6·25로 보일 것이 분명하다.

일제가 설립한 만주 건국대 출신인 강영훈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은 물론 남북화해의 물꼬를 트겠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에도 어깃장을 놓는데 급급한 대한민국 성우회. 일제가 세운 꼭두각시정부인 만주 건국대학 출신으로 해방 후 육사 교장을 지내고 민정당 국회의원과 노태우 정권 당시 국무총리를 지냈고 역시 성우회원인 강영훈의 '최남선 애국자' 발언.

그리고 모처럼 반공이념을 극복하면서 해방 정국의 이면을 다루며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드라마 <서울 1945>의 종영을 주장하는 자칭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애국단체모임' 등. 이들은 하나같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말하면서도 헌법 전문에 명시된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에 대해선 모르쇠이며 오직 반공만이 최고의 가치인양 부르짖고 있을 뿐이다.

여당의 참패로 끝난 5∙31 지방선거 이후 그들의 준동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한층 더할 것이 뻔하다. 심지어 모 맥주회사 광고에 박지성 선수 유니폼에 한반도기를 삭제하라는 요구에 결국 맥주회사가 손을 들고 말았다니 더 말해 무엇할까. 6∙15 6돌인 오늘 성우회 누리집에는 6월 22일 전쟁기념관 광장에서 <김대중 방북 저지대회>를 알리는 공지사항이 떠 있다.

'6.15 공동선언으로 국가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훼손시킨바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달 27일 방북을 앞두고 있'는데 성우회로서는 '국론분열과 정치적 악용소지가 큰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을 도저히 묵과할 수 없어 '방북 저지대회'를 갖기로 했다고 한다. 가급적 전투복을 입고 모이자는 그들의 6월은 대전으로 서울로 김창룡 묘 지키랴 김 전 대통령 방북 저지하랴 마냥 바쁘기만 하다.

우리 역사가 항상 전진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보수가 아닌 수구세력들이 또 다시 활개 칠 시대가 온다면 그 때는 드라마 <서울 1945>보다 훨씬 더 아픈 시련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기에 그들이 두렵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민족문제연구소 누리집(www.minjok.or.kr)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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