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창피했다. 그 날은 내 인생에서 기필코 가장 창피한 날로 기억될 것이다.

▲ "보이시오? 나는 환자란 말이요, 절대 안정과 풍부한 '영양'이 필요하오."
ⓒ 박봄이
건강하던 복댕이의 발병, 내려앉은 심장

몇 번 기사로도 쓴 적이 있지만 우리집엔 유기견 출신의 복댕이와 삼식이가 있다. 두 녀석 다 편치 않은 과거가 있는 탓에 그로인해 생긴 몇 가지 버릇이나 지병같은 것이 있다. 삼식이 경우에는 병원 실험견 출신이라 병원만 가면 사시나무 떨듯이 떨고 거의 4년 가까이 케이지안에서만 있어서 몸이 전체적으로 약하다.

복댕이는 반대로 거리에서만 떠돌던 유기견이라 발바닥이 심하게 갈라져서 못 봐줄 정도이다. 하지만 복댕이의 경우 건강상태는 매우 양호하여 그동안 병원 신세 한번 진 적이 없는 우량견인 셈이다. 그런 이유로 복댕이는 어느 정도 집안의 맏이로써 삼식이보다 든든하게 여기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건강하던 복댕이가 다리를 절기 시작했다. 뒷다리에 힘을 주지 못하고 절뚝거리는 것이 심상치 않았다. 순간 철렁 내려앉는 가슴. 복댕이가 나에겐 친구이자, 동생이자, 아들이자 뭐 아무튼 좀 많이 먹고 많이 싸고 말 안 듣고 둔한 감은 있지만 그래도 나에겐 짖지 못하는 삼식이를 대신해서 집을 지켜주는 충실한 경비견이기도 하기에 그런 복댕이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골골대자 그 놀람은 생각 외로 컸다.

▲ "내가 좀 아프오, 약은 되었고 육포나 하나 주지 않겠소?"
ⓒ 박봄이
거리를 떠돌았던 과거에도 한번도 아파본 적이 없는 복댕이가, 단지 케이지에서 3개월 갇혀 있느라 홧병으로 혈변을 본 것이 병의 다였던 복댕이가 골골거리며 움직이지도 않고 누워만 있는 모습이라니. 처음에는 꾀병인줄 알았다. 그래서 힘없이 누워있는 복댕이를 발로 툭툭 건들고는.

"이봐, 이봐. 선수끼리 왜 이래. 밥 먹고 간식 먹고 다 먹었잖아. 지금 먹을 거 더 달라고 시위하는 거지? 이 친구, 못쓰겠네."

보통 때 같으면 나의 이런 반응에 자신을 놀리는 것을 간파하고 그 부담스러운 엉덩이를 바둥바둥 흔들며 마당으로 나가버렸을 녀석이지만 그 날은 한숨 한번 '푸욱' 쉬고는 고개를 돌려버리는 것이 아닌가.

사랑한다면 하루 세 번, 창피하다, 창피하다, '참말로' 창피하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싶어 마침 집에 놀러와 있던 친구 녀석 둘과 함께 근처 동물병원을 찾았다. 이사한지 얼마 되지 않아 처음 안면을 트게 된 곳. 의사선생님도 인자하시고 병원 내부도 깔끔하니 앞으로 이 곳을 단골로 삼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가가 어디가 아파서 왔나요?"
"이 새끼가요, 원래 안 이런 새끼인데 다리를 절어요. 다리가 빠진 게 아닐까요? 워낙 호들갑이라서."
"그래요? 한번 봅시다. 으쌰… 엌… 하하… 아가가 튼튼하네요."

이해했다. 슈나우저 중에서도 좀 더 골격이 우수하고 살집이 우람하여 밤에 얼핏 보면 한마리 새끼 백호같기도 하고, 또 얼핏 뒷모습을 볼라치면 벨벳을 뒤집어쓴 바다표범같기도 한 우리 복댕. 내 눈에야 익숙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겐 한 품에 안아올리기 심히 부담스러운 몸매임을.

▲ 친구의 복댕이로 운동하기, 무려 8kg짜리 아령의 몫을 해낸다.
ⓒ 박봄이
의사선생님은 꼼꼼히 복댕이의 뒷다리를 이리만지고 저리만지고 당겨보고 접어보셨다.

"흐음…."
"선생님, 복댕이 어떻게 된건가요? 장판 돌아다니다가 탈골이 되기도 한다던데 혹시 탈골인가요? 아니면 인대가 늘어났거나. 선생님, 치료 오래해야 하나요?"

나와 친구들은 걱정이 되어 질문공세를 퍼부었고 묵묵히 듣고 계시던 의사 선생님. 머뭇머뭇 입을 여신다.

"개 무좀입니다."
"뭐…뭐요? 개…개 무좀요?"

의사선생님 왈, 복댕이의 체중이 늘어나면서 발바닥에도 살이 찌고 그러다보니 발바닥의 골이 깊어져 물이 들어간 후 통풍이 잘 되지 않아 무좀에 걸린 것이라고. 또한 현재 복댕이의 비만정도는 고도비만 직전의 상태라고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는 듯 말씀하셨다.

"아니, 먹이는 거라곤 사료밖에 없는데 비만이라니요."
"게을러서지요."
"에?"

그랬다. 내가 무슨 개들에게 소고기나 비싼 통조림을 먹이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주는 것이라곤 사료와 가끔 애견용 간식이 전부. (물론 지들끼리 사냥을 나서서 무언가를 잡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도 살이 찐 것은 운동부족 때문.

운동을 자주 시켜주고 매일매일 약을 먹이고 무좀약을 발라주라고 하셨다. 마지막으로 주사 한대 놓으려니 녀석, 끄응 소리 한번 안한다.

"맷집도 좋네요."

▲ 삼식이와 임시보호했던 이브, 그리고 우량견 복댕이의 신나는 휴지 파티.
ⓒ 박봄이
개발바닥에 무좀약이나 발라주는 신세라니

그 날부터 하루 한번 복댕이의 발바닥에 무좀약을 발라주고 두 번씩 약을 먹이는 간병인의 신세가 된 나. 다행히 입으로 들어가는 거라면 뭐든지 대 환영인 복댕이의 식성 탓에 가루약도 낼름낼름 잘 '잡숴주셔서' 참 징글맞게 고마웠다.

그러나 마치 어르신이라도 된 냥, 내 무릎에 다리를 척 걸쳐놓고 신선놀음을 하는 모습이라니, 내가 어쩌다 개발바닥에 개무좀약이나 발라주는 신세가 되었나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약바른 발을 쪽쪽 빨아먹는 모습이라니.

며칠이 지난 지금, 이제는 시간 맞춰 약바르는 것을 둔한 머리에 입력을 했는지 약봉지를 꺼내놓으면 알아서 자리잡고 누워 발을 내민다. 마치 나를 보며 '어이, 어서 발라 봐, 거 시원하더군'하는 것 같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얄미움이 솟구쳐 복댕이의 튼실한 엉덩이를 찰싹 한대 때리고는 중얼거리게 된다.

"이걸 으따 써, 이 챙피한 놈아!!"

물론, 복댕이는 어디 파리가 앉았나 하는 표정으로 힐끔 돌아볼 뿐이다.

따스한 햇살, 한가로운 오후, 뒤집어진 개 한마리와 개 발바닥을 부여잡고 정성껏 개 무좀약을 바르고 있는 한 여인. 상상이나 가시는지.

▲ 보너스 샷, PC본체와 책상다리 사이에 끼인 삼식. "나 좀 꺼내주오" 너희는 다 왜 그러느냐, 정말!
ⓒ 박봄이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