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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어산은 분명 경상남도의 명산임에 틀림이 없다. 산의 남쪽으로는 광활한 김해평야가 연녹색 피부를 자랑한 채 길게 드리워져 있다. 그리고 북동쪽으로는 천삼백리 낙동강이 푸른 이무기의 자태를 지닌 채 굽이굽이 흐르고 있다.

산의 정상에 서면 무척산, 토곡산, 금정산의 고당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까우며, 기암절벽 사이로 연결된 구름다리가 간당거리며 사람들을 유혹한다. 어디 그뿐이랴. 병풍처럼 둘러쳐진 절벽에는 기암괴석들이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고, 능선에서 살랑거리고 있는 억새들의 군무가 눈부시게 희다. 억새들의 군무에 뒤질세라 널따란 철쭉 광장에는 붉은색의 향연이 작은 바위틈 사이로 펼쳐진다.

▲ 은하사 올라가는 길
ⓒ 김대갑
신의 물고기가 노니는 산이라고 해서 신어산인가? 아니면 신의 산이라서 신어산인가? 이렇게 아름다운 산에 고찰 하나 없다면 참으로 이상할 터. 아니나 다를까. 신어산에는 가장 오래된 사찰 중의 하나인 은하사가 천년의 침묵을 안은 채 고즈넉이 앉아 있다. 자수정이 서로 부딪히면서 나는 음색을 닮은 풍경소리가 처마 밑으로 흐르는 고찰, 은하사. 그 은하사의 범종각에서 울려 펴지는 종소리는 또 왜 그리도 은은한지.

이렇게 고요하고 아름다운 사찰에 어느 날 깡패일당이 쳐들어와서는 절을 접수해버리는 해괴망측한 사건이 벌어진다. 놈들은 부처님이 계신 대웅전을 놀이터로 만들어버리고, 대웅전 앞마당에서 축구시합을 하며 희희낙락한다. 결국 보다 못한 젊은 스님들은 깡패들과 일대 결전을 벌인다. 종각 앞마당에서 족구시합도 하고, 고스톱도 치고, 급기야는 무술 대결도 벌인다. 영화 <달마야 놀자>는 유쾌하면서도 흥겨웠다. 그래서 흥행에도 성공했고 속편도 등장했다. 한국 영화의 고질적인 병폐인 라스트 신의 허무함은 옥의 티였지만.

▲ 자연 기둥을 이용한 범종각. 위용을 자랑한다.
ⓒ 김대갑
은하사는 경상남도 지정 유형문화재 238호이다. 신라와 고려를 거쳐 수많은 고승대덕과 당대 석학들이 수행 정진하였던 유서 깊은 절이기도 하다. 현재 경내에는 목조 건물 5동과 콘크리트 건물 1동, 그리고 시대를 알 수 없는 5층 석탑이 하나 있다. 사실 절 규모로 보자면 은하사는 그리 큰 절은 아니다. 그러나 은하사의 대웅전에는 절 규모와 상관없이 누천년을 흘러온 소중한 전설 하나가 묻어 있다. 참으로 기이한 것은 그 전설의 주인공이 수로왕비인 허황옥과 깊은 관계를 지닌 인물이라는 것이다.

은하사 대웅전의 동편 벽 뒤에 걸린 판문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가락국의 시조 수로왕과 혼인하러 온 허황옥과 그의 오빠(다른 자료에는 동생이라고 나오기도 함) 장유화상이 인도에서 함께 옴.’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수로왕과 수로왕비의 로맨스가 실린 삼국유사 자체가 명확한 역사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는데, 뚱딴지 같이 그녀의 오빠라니? 또 그 오빠가 은하사를 창건했다 하여 그의 영정이 은하사에 곱게 모셔져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 달마야 놀자의 주 무대, 은하사 전경
ⓒ 김대갑
많은 역사학자들은 허황옥과 그 오빠인 장유화상의 존재에 대하여 명확한 답변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허황옥이 인도 아유타국에서 왔다는 기록 자체가 신빙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야사학자나 일부 사학자들은 허황옥과 장유화상이 인도에서 가락국에 불교를 전래한 인물이라고 믿고 있으며, 그에 관계된 증거는 여러 가지라고 주장한다.

은하사의 경우만 하더라도, 대웅전 수미단에 새겨진 쌍어문양이 고대 인도와 가락의 불교 교류를 보여주는 흔적이라는 것이다. 이 쌍어문양은 수로왕릉 정문에 걸린 것과 모양이 비슷한데, 현재 인도 아요디아 주 정부의 문장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허황옥이 왔다는 아유타국이 인도의 아요디아 지방이라는 명확한 증거는 별로 없다고 한다.

▲ 서림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합각 지붕 건물
ⓒ 김대갑
그러나 역사적 사실과는 관계없이 현재 김해지방에는 장유화상과 관계된 수많은 전설과 유적지가 전해져 오고 있다. 그 대표적인 유적지가 바로 은하사이며, 불모산 장유계곡의 장유암에 가면 그의 사리를 모셔놓은 사리탑도 하나 있다. 또한 하동군에 가면 칠불암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장유화상을 따라 출가하여 일곱 부처가 되었다는 전설이 서린 곳이다. 그뿐만 아니라 시내 중심가에 있는 임호산에는 장유화상이 창건한 절이 하나 있었다고 전해져 온다. 재미있는 것은 이 산이 유민산 혹은 안민산이라고도 불렸다는 사실이다.

▲ 시대를 알 수 없는 5층 석탑
ⓒ 김대갑
유민산이 된 이유는 유민공주와 깊은 관계가 있다. 유민공주는 앞서 소개한 여의낭자와 황세장군의 전설에 나오는 비운의 가락국 공주이다. 남편인 황세장군이 여의낭자를 그리워하다가 죽음에 이르자, 유민공주는 임호산에 들어가 불제자로서 일생을 마쳤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민산이 되었다고 한다.

한편 안민산이 된 이유는, 장유화상이 호랑이의 아가리를 닮은 임호산의 정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절을 세웠는데, 그 이후에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게 되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현재 김해에는 장유면이라는 행정지명이 존재하고 있다. 결국 역사적 사실과 관계없이 금관가야의 고도인 김해에는 허황옥의 오빠라는 장유화상의 흔적이 곳곳에 스며 있는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은하사의 원래 이름은 서림사였으며 장유화상이 건립한 두 개의 절중에 하나였다고 한다. 장유화상이 신어산에 절을 창건할 때 동림사와 서림사를 창건하였는데, 두 절은 임진왜란 때까지 존재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왜군에 의해 두 절이 불타고 말았고, 서림사만 중건되어 은하사라는 이름으로 현재까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 절의 연륜을 보여주는 불상 위 닫집
ⓒ 김대갑
어떤 이는 은하사의 존재야 말로 장유화상이 최초로 불교를 전파한 증거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학자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고고학적인 자료가 없고, 삼국유사의 기록 자체가 후대의 불교적 윤색이라는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명백한 사실은 앞으로 가야 불교에 관한 연구를 진행할 때 장유화상과 은하사는 결코 빼놓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분명 어떤 형태로든 은하사는 한국 불교사에 깊숙이 개입할 것이다. 혹시 아는가? 한반도의 불교 역사가, 아니 삼국시대의 역사가 은하사로 인해 다시 쓰게 될는지.

은하사 대웅전 옆, 묵은 된장이 익어가는 널따란 장독대에서 연달래 꽃잎이 흩날리고 있었다. 풍경소리는 여전히 자수정처럼 투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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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