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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쉼터 식구들은 밤낮 뭔가를 준비한다고 한참 들떠 있었습니다. 그들이 들뜬 이유는 오는 28일 잠실 올림픽공원에서 열리는 '이주노동자축제'에 참가하기 위해서입니다. 쉼터 식구들은 전통 의상을 준비하고, 전통 음식을 직접 만들고, 공연을 위한 전통 춤 등을 연습하느라 바빴습니다.

▲ 전통 의상을 입은 인니 친구들.
ⓒ 고기복
저 역시 행사 준비로 바빠졌습니다. 행사의 일환으로 인도네시아 최고 인기가수인 니니 까를리나(Nini Carlina)와 에밀리아(Emilia)를 지난 27일 토요일 오후에 우리 쉼터로 초청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그 일로 어제 새벽에 입국한 그들을 만나 숙소를 잡고 공연 준비에 필요한 여러 절차를 상의하다 보니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야 잠시 짬을 내어 쉼터에 들를 수 있었습니다.

▲ 공연을 앞둔 가수들이 주한인니대사관 공사를 만난 자리에서.
ⓒ 고기복
그런데 쉼터에 들어서는 순간 '콱'하고 눈을 맵게 하며 눈물을 짜게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무슨 일인가 해서 주위를 살펴 보니, 먼저 금요일 밤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시간까지도 쉼터에 북적대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람들은 이틀 앞으로 다가온 이주노동자축제에서 선보일 음식 장만을 위해 양파, 파, 마늘, 생강 등을 으깨고 다져 인도네시아 양념인 삼발(Samabl) 등을 만들고 있었던 겁니다. 그 양념 삼발을 만들기 위해 준비한 재료 때문에 눈이 자극된 것이었습니다.

▲ 사떼 아얌과 사떼 깜빙에 쓸 인도네시아 전통 양념인 삼발.
ⓒ 고기복
양념을 장만 중인 수미야띠(Sumiyati)에게 토요일 근무를 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28일 행사를 위해 5월 5일 어린이날 특근을 했고, 28일 당일 회사에서 야외소풍을 가는데 허락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자신이 진작에 음식 준비를 돕기로 약속했던 터라, 책임을 지고 이틀을 희생하는 겁니다. 수미야띠를 도와 건장한 남자들이 분주하게 손을 놀리는데 잠은 언제 잘 거냐고 물어도 다들 싱글거리기만 할 뿐, 잠잘 기색이 없어 보여 쉼터를 나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27일 아침이 되었습니다. 어제의 분주함은 사라진 대신 본격적인 음식 장만을 위한 준비가 거의 되었음을 가늠할 수 있는 장면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국에서는 구하기 힘들 텐데, 어디서 어떻게 구했는지 묻고 싶은 생각이 드는 야자수 잎으로 찹쌀을 싸서 만드는 '끄뚜빹(Ketupat)', 쌀을 바나나 잎으로 싸서 익을 때까지 쪄 만드는 '론똥(Lontong)', 닭고기 살을 각종 향신료로 양념하여 숯불에 굽는 '사떼 아얌(Sate Ayam)'과 양고기 살을 가지고 만드는 '사떼 깜빙(Sate Kambing)' 등을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나 있었습니다.

▲ 바나나 잎으로 싼 론똥
ⓒ 고기복
▲ 끄뚜빹을 만들기 위한 재료인 야자수 잎이 보인다
ⓒ 고기복
상할 가능성이 있는 음식들은 냉장 보관을 하고, 전통 음식에 대한 안내를 하기 위한 메뉴판까지 (언제 주문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현수막으로 만들어 놓고 있었습니다.

▲ 인도네시아 음식을 설명하는 현수막.
ⓒ 고기복
쉼터 식구들은 행사를 위해 모든 일들을 스스로 척척 알아서 준비하고, 어떤 면에서는 피곤할 정도로 나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그 모습에는 아마도 자신들의 문화를 우리 사회에 스스로 알릴 수 있는 기회이니만큼, 나름대로 한 번 잘 해보자는 각오들이 있는 것 같고, 이참에 신명나게 놀아보자는 생각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어찌 됐든 이번 행사를 통해 우리 쉼터 공동체 식구들만 아니라 이 땅에 와 있는 모든 이주노동자들과 우리 국민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가까이 다가가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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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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