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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사학이 사는 길>을 낸 정지환 기자.
ⓒ 조성일
불과 보름 전이었다. 여야가 '너 죽고 나 살기'식으로 이전투구를 벌이는 와중에 뜻밖의 선물이 국민에게 배달됐다. 민주노동당의 절묘한 작전으로 교과서에만 있었던 '주민소환제법'이 통과된 것이다. 여기에 기여한 일등공신(?)이 있다.

바로 '사립학교법(이하 사학법) 재개정 논란'이다. 참여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였던 ▲국가보안법 폐지 ▲과거사 진상 규명법 ▲언론관계법 개정 ▲사립학교법 개정 등 이른바 4대 개혁 입법 중 하나다. 그나마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던 사학법은 한나라당의 재개정 요구로 여야 협상이 진행되면서 그 본질이 퇴색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잠시 소강상태인 사학법을 둘러싼 여야의 줄다리기는 5·31 지방선거가 끝나면 다시 불을 뿜을 것으로 보인다. 논란의 핵심은 '개방형 이사제'다.

개방형 이사제 도입의 기본 취지는 학교 운영의 투명성 확보다. 그런 점에서 '민주시민대학 성공모델 상지대학교 이야기'라고 부제를 단 <한국 사학이 사는 길>(시민의 신문 펴냄)을 낸 정지환(40) 여의도통신 대표기자는 "상지대학교를 보라"고 말한다.

상지대, '부패 대명사'에서 '발전 모델'로

"최근 정치권의 최대 과제로 떠오른 사립학교법의 향방과 운명을 말할 때 상지대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바로미터이자 리트머스 시험지입니다. 사실 상지대는 부패·분규 대학의 대명사였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젠 새롭게 변신을 모색하는 많은 대학들이 상지대를 대안적인 발전모델로 삼고자 합니다."

이러한 상지대의 놀라운 변신의 계기는 "역설적이게도 토지투기, 부정입학, 족벌경영 등 온갖 소문으로만 떠돌던 김문기 전 이사장의 비리행위가 언론 보도와 검찰 수사에 의해 사실로 드러나면서"라고 정지환 기자는 말했다.

"명색이 한 대학의 이사장이라는 사람이 '007가방'에 뭉치돈을 넣어 가지고 다니며, 교수들을 회유, 협박하던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블랙 코미디가 사법적 판결을 받으면서 반전의 기회가 온 것이죠."

1993년부터 시작된 상지대의 변화는 2004년 1월 1일부터 임시이사 체제에서 벗어나 대학교육 사상 처음으로 '정이사 체제'(이사장 변형윤, 총장 김성훈)로의 전환을 이루어냈다. 그리고 학생이 부족해 추가모집을 해야 했던 것에서 벗어나 올해 입시 경쟁률이 5.44대 1을 기록하는 등 괄목할만한 성과도 냈다.

더욱이 총장부터 보직 교수까지 판공비 등을 공개하는 '투명 경영'의 결과, 지금까지 76억원의 잉여자금이 생겼다. 이 돈은 3층짜리 건물을 새로 짓는데 들어갈 예정이다.

시민사회와 운명을 함께 하는 대학

▲ 환골탈태한 상지대학에서 사학의 희망을 본다고 말하는 정지환 기자.
ⓒ 조성일
정지환 기자가 상지대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이를 <시민의 신문>에 8차례 연재했던 것은 상지대가 '민주시민대학으로의 발전 모델'이라는 점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개인적인 관심사도 있었다고 했다.

경기도 여주 출신인 정 기자는 원주가 행정구역상으로 '도'는 다르지만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거리여서 친구들 여럿이 상지대로 진학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사장의 전횡으로 인해 친구들이 정상적인 대학생활을 못하고 고통받는 것이 결코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당시 상지대는 소위 '사학비리 종합 선물세트'였습니다. 이사장 일가의 학교 부지 개인명의 소유 사건을 비롯해 학군단 증축 비리 사건, 근속 교수 대량 해임 사건, 전조영 교수 사상범 매도 사건, 교직원 봉급 포기 각서 사건, 교수 이중 임용과 부당증원·증과 사건 등 열 손가락으로 다 꼽기도 힘듭니다."

그렇지만 이런 부패 사슬들이 모두 끊긴 후 상지대에는 놀라운 변화가 시작됐다. 시민, 지역사회와 함께 발전한다는 취지 아래 '시민대학운영위원회'와 '상지학원발전기금재단'을 만들어 대학의 힘을 시민사회로, 시민사회의 힘을 대학으로, 서로 교류·소통·공유했다. 이를 통해 시민사회가 있어야만 상지대가 존재하고 발전할 수 있는 '공동운명체' 모델로 변모 중이다.

그렇다면 상지대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었는가. 정 기자의 답은 '아니오'다. 그는 "김문기 전 이사장 측의 반환 요구가 여전하다"고 우려했다.

지난 2월에는 서울고등법원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 내려졌다. '상지대 정이사 선임 무효 확인 소송 사건'에 대해 고등법원은 "임기가 만료된 이사는 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없다"는 대법원 판례를 깨고, 임기가 만료된 이사에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판결을 내렸던 것.

"상지대 측에서 즉각 상소를 해서 다시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려봐야 합니다만, 대법원이 현명하게 고법의 판결을 시정하리라 기대합니다."

정 기자는 김문기 전 이사장을 옹호하는 세력으로 '전국 NGO 연대'에 속해 있는 일부 단체들을 거론했다.

끝나지 않은 전쟁

▲ <한국 사학이 사는 길> 표지 이미지.
ⓒ 조성일
"주유소나 약국, 의원, 심지어 식당이 시민단체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상지대 교수협의회가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김문기 운동본부'라고 밝힌 단체가 439개나 됩니다. 이들 단체 중 시민단체의 형식을 취한 단체가 50개가 채 안 되는 것으로 압니다."

작년에는 김문기 전 이사장의 은근한 압력(?)도 받았다. 지난해 11월 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상지학원·상지대학교 투자·설립에 관한 진실규명 백서' 발간 기념식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려던 정 기자에게 김문기 전 이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변호사 몇 명에게 법률적 검토를 지시했어요. 서두르지 말고 꼼꼼하게 하라고 했지. 그렇게만 알고 있어요."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아직까지 김 전 이사장 측에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단다.

정 기자는 "상지대의 환골탈태한 모습을 두려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력도 있다"고 했다. 사학개혁을 거부하는 집단이 바로 그들이라는 것.

"개방형 이사제를 도입하면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얘기하는데, FTA나 글로벌 스탠더드 얘기하면서 개방을 주장하던 조중동이 사학법에 대해서만 유독 그 흐름과 반대적인 주장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현재 많은 대학들이 등록금 인상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음에도 상지대에서는 등록금 인상으로 인한 학내 분규가 전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정 기자는 "이런 것만 보더라도 '투명성'이 가져다주는 효과는 매우 크다"며 애정 어린 충고로 인터뷰를 갈무리했다.

"13년 동안 전쟁상태로 오던 긴장이 이완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제 어느 정도 정상 궤도에 진입했다고 안주와 타성에 젖을 수 있는데, 이를 경계해야 합니다."

한국 사학이 사는 길 - 민주시민대학 성공모델 상지대학교 이야기

정지환 지음, 시민의신문사(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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