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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남소연

"한반도의 '흔들리던 분단체제'가 해체되고 있다."

분단체제론자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69·계간 <창작과비평> 편집인)가 최근 펴낸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창작과비평사)에서 내놓은 이 낙관적(?) 주장은,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한반도는 지금 통일 중'이라는 얘기다. 과연 그럴까?

최근 '냉전시대로 돌아가는 것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만큼 한반도를 둘러싼 작금의 정황들은 심히 경색되고 있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의 6월 방북, 노무현 대통령의 몽골 발언 등과 맞물리면서 백 교수의 주장은 백 교수 자신의 희망적 선언을 넘어 현실성을 얻어가는 느낌이다.

또한 백 교수는 <흔들리는 분단체제>(창작과비평사) 이후 8년 만에 내놓은 사회비평집인 이 책에서 최장집 고려대 교수를 실명으로 비판했다. 최 교수 비판은 보수언론이 이를 진보진영의 '노선투쟁'으로까지 확대해석하는 등 논외의 관심을 끌고 있다.

'6·15공동선언 실천 남측위원회'(www.i615.org) 상임대표로, 6월 14일부터 17일까지 3박4일간 광주에서 열리는 '6·15공동선언 발표 6돌 기념 민족통일대축전' 준비로 바쁜 백낙청 교수를 10일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만났다.

"6·15로 '우리식 통일' 시동 걸렸다"

▲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겉그림.
ⓒ 창비
"6·15공동선언 이후의 세월 동안, 애초의 부푼 기대가 갖가지 난관으로 좌절을 겪는 가운데서도 남북관계가 꾸준히 진전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는 진즉에 흔들리던 분단체제가 드디어 허물어지기 시작했으며 '6·15시대'가 곧 분단체제의 해체기에 해당한다는 믿음을 굳히게 되었다."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의 '책머리에' 글에서 밝혔듯, 백낙청 교수가 자신의 입론인 '흔들리는 분단체제'를 '분단체제 해체 중'으로 한 발 더 진전시킬 수 있었던 배경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물인 6·15공동선언이다.

백 교수는 "현재의 분단체제보다 나은 체제에서 살게 되는 과정이 통일작업의 핵심"이라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6·15공동선언을 독일식 흡수통일도, 베트남식 무력통일도 아닌 "우리식 통일에 시동을 건 중차대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백 교수는 6·15공동선언문 두 번째 조항인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에서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 지향해나가기로 하였다"의 애매모호한 표현이 오히려 실현가능성을 담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실적으로 남북이 서로 자신의 입장을 관철하면서 딱 맞는 합의를 도출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 교수는 통일에 대한 개념을 바꾸자고 말한다.

"단일국가형 국민국가로서의 '완전한 통일'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합니다. 무엇이 통일이며 언제 통일할 거냐를 두고 다툴 것이 아니라, 남북 간의 교류와 실질적 통합을 다각적으로 진행하다 어느 날 문득 '어, 통일이 꽤 됐네, 우리 만나서 통일됐다고 선포해버리세'라고 합의하는 것, 그게 우리식 1단계 통일입니다. 그 다음 2단계, 3단계 통일이야 그때 가서 정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한·미 FTA, 최대한 시간 끄는 게 상책"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비록 개인자격으로 가는 방북이지만 이 일로 남북관계에 뭔가 돌파구가 마련돼야 하고, 또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다고 기대합니다. 방북은 당연히 철도 이용 방식으로 이뤄지되,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구체적 언질이 있었으면 합니다."

교착상태에 빠진 6자회담이나 갈수록 꼬여만 가는 북·미관계를 감안하더라도 남쪽의 능동적 역할이 필요하던 때 이뤄지는 방북인 만큼, 백 교수는 겉으로 크게 내색하진 않지만 속으로는 곧 있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에 꽤 기대를 걸고 있는 눈치다.

백 교수는 미국의 대북강경론을 크게 우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의 강경 입장이 한반도 통일을 힘들게, 그리고 더디게 할 수는 있어도 궁극적으로 결정적인 걸림돌이 되지는 못한다는 것.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으로 보다 큰 위기감이 조성됐지만 그때보다 지금 통일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선 것을 보더라도 남북관계는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백 교수는 최근 우리 정부가 서두르고 있는 한·미 FTA 협상을 심각하게 우려했다. 지금처럼 서둘러 타결했을 때 그 결과는 너무도 당연히 끔찍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 교수는 최대한 시간을 끄는 것이 상책이라고 본다. 우리 정부가 먼저 협상하자고 제안했기에 이제 와서 '없던 일로 하자'고 할 수 없는 현실적 불가피성을 감안해, 협상을 최대한 끌어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것. 그러면서 엎을 것인지, 그렇지 않고 추진할 경우 어떻게 우리에게 유리하게 할 것인지를 따져 필요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분단체제와 관련해서도 한·미 FTA 협상을 졸속·급속 추진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백 교수는 목소리를 높였다.

"아무리 협상을 잘해도 자기네 위주의 안보 측면에 큰 비중을 둔 미국의 전략적 구상을 뒤엎고 동북아균형자 역할이나 남북의 화해협력 진전에 걸맞은 '안보강화'를 얻어낼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분단체제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최장집 교수 실명 비판, 투쟁 아닌 논쟁"

ⓒ 오마이뉴스 남소연
백낙청 교수는 '분단체제의 해체기'인 지금을 '6·15시대'로 규정하고, '남북의 점진적 통합과정과 연계된 총체적 개혁의 시대'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래서 개혁운동의 자기개혁까지 포함한 '개혁'을 위해 NL(민족해방파, 자주파)과 PD(민중민주파, 평등파), BD(부르주아 민주주의, 온건개혁세력)의 3자 결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2자 결합도 어려운데 3자 결합이 가능할까. 이에 대해 백 교수는 "NL과 PD의 오랜 갈등은 분단체제 변혁이라는 대의를 위해 온건개혁세력과도 손잡는 3자연대 속에서만 조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중산층 민주주의와 민중적 민주주의의 절충은 남북의 점진적 통합에 적극 참여하는 진정한 '민족대단결'의 일부가 될 때에만 비로소 진정한 '중도'에 이를 수 있다"는 판단이다.

그러면서 이 중도주의는 "기존의 잣대에 따라 '좌'와 '우' 사이의 중간지점을 찾는 타산이 아니라 분단체제 극복을 겨냥한 합작"이라는 점에서 '변혁적'이라는 수식어를 달 수 있으며, 이 '변혁적 중도주의'는 오늘날 대한민국에 필요한 참된 진보노선이라고 강조했다.

백 교수는 최근 자신이 최장집 교수를 비판한 것을 두고 '진보진영의 노선투쟁'으로 확대해석하며 갈등을 부추긴 보수언론의 보도행태를 보더라도 진보진영의 3자결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최 교수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후마니타스)에서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가 질적으로 나빠졌다"고 현 정권을 평가한 것에 대해, 백 교수는 최 교수의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가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최장집 교수나 나는 각기 독립적인 지식인 활동을 하는 것이지 특정 정파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기자간담회 때도 논쟁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음에도 '투쟁'으로 보는 의도된 세력이 있는 것 같아 안타깝지만, 내 비판은 최 교수의 주장이 분단체제의 존재라는 또 다른 핵심 문제를 외면했다는 지적이었고 학계에서는 언제나 있을 수 있는 '논쟁'입니다. 최 교수가 곧 새 책을 낸다고 하는데 어떤 반론이 나올지 궁금해집니다."

책 제목대로 분단체제가 해체되길

최장집 교수에 대한 실명 비판이 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감안, 집권 후반기를 맞은 참여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물었다.

"노무현 정부가 참여정부를 탄생시킨 사람들을 실망시켰다는 세간의 비판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의 여러 가지 실책을 모두 노 정권 탓으로 돌릴 수 있는가 하는 점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어쩔 수 없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어쨌든 노 정부도 분명히 역사를 진전시켰다고 봅니다."

이러한 평가의 근거로 백낙청 교수는 지난 4월 노 대통령이 제주 4·3사건에 대해 사과한 일, 인혁당 사건에 대한 재심 결정 등을 제시했다. 이는 단순히 유족의 원한을 푸는 차원을 넘어 우리 사회의 삶의 질을 한 단계 높인 사건이라는 것.

백 교수는 민족주의 담론과 관련, 이젠 개념을 상대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민족주의에 대한 전면적인 지지도, 전면적인 부정도 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백 교수는 사안별로 민족주의가 역사적으로 순기능을 하느냐, 역기능을 하느냐를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8년 전 <흔들리는 분단체제>의 제목을 달 때 있었던 일화를 소개했다. 당시 '안 흔들리면 어쩔 것이냐'는 주위의 귀띔도 있었지만 약간의 모험심을 발휘했다는 것. 그러다가 1987년께부터 흔들리기 시작한 분단체제가 '6·15시대'를 맞으면서 결국 얼마간 앞서간 형국이 되었듯 이번 <한반도의 통일, 현재진행형>도 제목 덕 좀 봤으면 한다고 했다.

6·15선언 다섯 돌과 광복 60돌이 겹쳤던 2005년이 남북관계에서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고 말하는 백낙청 교수에게 올해 늦봄통일상 수상자로 결정된 소감을 물었다.

백 교수는 "아직 그런 상을 받을 때가 안됐는데도 상을 줘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겸사와 함께 "6·15공동선언 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 임기를 대과(大過) 없이 잘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백낙청 지음, 창비(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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