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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겨레는 다른 나라 사람이 어려워하는 젓가락질에 능숙하다. 그리고 밥을 먹을 때는 이 젓가락과 함께 숟가락을 쓴다. 그런데 숟가락과 젓가락은 지방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불린다. 숟가락을 평안도와 함경도에서는 살피, 살푸, 실피, 경상도에서는 수꾸락, 소까락, 수깔, 술까락, 수끼락, 술 따위로 쓰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 숟가락의 어원은 어디에 있을까? 최근 경북대 백두현 교수는 경상도 사투리의 말맛을 다룬 <국수는 밀가루로 만들고 국시는 밀가리로 맹근다>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이 책에서 그는 숟가락의 어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함께 가리키는 '수저'는 한자어 '시저(匙箸)'에서 온 말이다. '시(匙)'가 '숟가락'에서 처럼 '숟'으로 쓰인 것을 보면 차용 당시 '시(匙)'의 중국 한자음은 '숟(sut)'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가능성은 '밥 한 술 두 술'이라 할 때의 '술'에서 확인된다. 중국 한자음이 우리나라에 수입될 때 받침의 'ㄷ'은 'ㄹ'로 변하였던바 '한 술 두 술'의 '술'도 'ㄷ>ㄹ' 변화를 겪은 것이다."

나는 이 글을 보면서 숟가락의 어원을 굳이 한자말로 보는 것에 의문이 생겼다. 그래서 어원연구를 오랫동안 해온 한말글연구회 정재도 회장에게 이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그러자 정재도 회장은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시저(匙箸)라는 말은 <중문대사전>이나 <대한화사전>에도 없는데 총독부 <조선어사전>에 '匙箸:匙와 箸(轉 수져)'라고 했다. 이것을 우리 사전장이들의 버릇으로 '수저'의 원말을 꾸미기 위하여 匙箸를 도입한 것 같다. '匙'가 '숟가락'이라는 뜻이기는 하나 '술'로 된다는 것은 억지스럽고, '젓가락'을 중국에서는 흔히 '콰이즈(筷子)'라 하고, 우리나라에서는 <내훈>의 箸보다 筯(저)를 <박통사>, <금강경>, <노걸대>, <훈몽자회>들에 널리 썼다. 箸는 일본에서 쓴다.

'匙箸'가 바로 우리말 '수저'라고 하는 것은 위험하다. 匙箸라는 말을 만들기 전에 우리는 이미 '수저'를 '숟가락과 젓가락, 수저의 높임말'로 썼을 것이기 때문이다. 匙箸가 없다고 우리가 '수저'도 없는 그런 무지몽매한 겨레가 아니다."


이런 반박이 나오자 백두현 교수는 다시 이에 대한 논박을 벌인다.

"수저(匙箸), 숟갈, 젓가락 등의 낱말을 본격적으로 이야기하려면 중국 고대 한자음의 입성 운미 문제가 나온다. '숟가락'의 '숟'이 '술'로도 되는 것은 입성운미 t가 한국한자음(동음)에서 l로 바뀌는 데 기인한다. '수저'의 '수'는 중국 한음에서 입성 운미 t가 탈락하고 난 송대 한자음 이후에 우리말에 유입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수저'가 우리나라에 있었음은 고대 발굴 유물로 입증된다.

이 낱말의 발음이 '수저'인 것은 한자어와 충분히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이론(異論)은 거의 없을 듯하다. 다만 '匙箸'의 첫 음이 어떻게 '수' 혹은 '숟'으로 차용되었는가 하는 문제는 더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또 정지와 정지깐에 대한 논쟁도 벌인다. 책에서 백두현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했다.

"집에서 음식을 만드는 곳을 경상도 말에서는 '정지'라 부른다. '정지'는 '정듀'에서 온 말이고, '졍듀'는 한자어 '정듀(鼎廚)'의 음을 적은 것인데 '졍(鼎)'은 '솥', '듀(廚)'는 '부엌(아궁이)'을 뜻한다. 아궁이와 솥이 있는 공간이 바로 '졍듀'인 것이다. '졍듀'가 나오는 가장 오래된 문헌은 16세기의 '신중유합'이고, 1939년 대구에서 간행된 '영남삼강록'에는 '경쥬, 정주, 정지' 따위가 나온다."

이러자 역시 정재도 회장은 어원을 한자에 둔 것은 잘못이라며 반박한다.

"전라도와 경상도에서 '부엌'을 '정제, 정주, 정지'라고 한다. 총독부 <조선어사전>에 '정주ㅅ間', 이윤재 <표준조선말사전>에 '정주, 정줏간, 정지', 문세영 <조선어사전>에 '정주, 정줏간, 정지, 정짓간'이라고 하여 모두 '정주'를 우리말로 다루고 있다. 그런데 한글학회 <큰사전>부터 '정제, 鼎廚, 鼎廚間, 정지'라 하여 '정주'에다가 鼎廚를 붙였다. '정주'라는 사투리에 취음으로 한자를 붙인 것이고, 그런 한자말이 있는 것이 아니다.

廚를 16세기 <훈몽자회>에 '보 쥬'라고 했는데, 15세기 <유합>에 '정듀 쥬'라고 한 것은 그 지은이 서거정이 경상도(대구) 사람이라 경상도 사투리로 새긴 것이다."


그러자 다시 백두현 교수는 이를 받아 그렇지 않음을 주장한다.

"'유합'의 '정듀'는 '졍쥬'의 ㄷ구개음화 과도교정이다. 물론 이 시기에 이미 우리말화 했을 가능성이 높다. 석보상절 같은 책에도 한자어가 이미 우리말화 된 '뎍'(行蹟) 같은 표기가 우리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것을 보면, '정듀'는 이미 오래 전에 우리말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기원이 한자어 '鼎廚'에서 온 것임은 부정하기 어렵다. 최근의 국어사전에 한자어 '정주'가 없다고 한자어에서 온 것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은 속단일 수 있다."

두 학자는 이 두 말 외에도 '사달'과 '事端', '빵깨이'와 '반갱(飯羹)', '억수로'에서 억수와 億數, 시안과 세한(歲寒), '철부지'와 '절부지(節不知)', '포실'과 飽實, 등신과 等身 등을 놓고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논쟁을 벌였다. 정재도 회장은 이런 논쟁의 과정에서, 다음과 같이 어원을 한자말로 보는 세태에 대한 엄중히 꾸짖는다.

"북한 <조선말대사전>에 '부실하다'를 한자 없이 우리말로 다루어 "①다부지지 못하다 ②정신이나 행동이 모자라다 ③실속이 없다 ④충분하지 못하다 ⑤넉넉지 못하다 ⑥미덥지 못하다"처럼 풀어 놓았는데 남한 사전들은 이 우리말 '부실하다'에 말밑으로 不實을 붙여 놓았다. 그러나 '부실하다'와 不實은 다른 말이다. '부실하다'는 '튼실하다'의 상대말이고, '불실(不實)'은 ''결실(結實)'의 상대말로 '불실과(不實果)'에나 쓰인다.

'야속하다'와 野俗, '어굴하다'와 抑鬱, '영낙없다'와 零落은 뜻이 다르고, '온돌(溫突˙溫堗)', '왈짜(曰字)', '울화(鬱火)'들의 한자는 아무 것도 아니다. 우리 사전들에는 우리말에다가 당치도 않은 한자를 붙여 놓은 것이 많다. 우리말이 없었다는 생각에서 그런 잘못을 저지르는데 우리는 한자 없이도 우리말을 쓰는 겨레이다. 우리말이 한자 때문에 없어진 것이 많은데 남아있는 우리말을 한자말로 둔갑시키고 있다."


이에 대해 백두현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맞받는다.

"조선시대의 지식인들이 우리말의 어원을 한자어에서 찾으려 한 시도(동한역어, 아언각비, 지봉유설 등)가 있었고, 이에 대한 비판적 고찰도 이미 국어어휘사 연구자들이 지적하였다. 국어에 존재하는 고유어를 한자어에 견강부회시켜 설명한 것들 중 잘못된 오류가 적지 않다는 점도 널리 알려져 있는 바와 같다. 그런 점에서 책 속에 있는 어원 풀이 내용이 한자어와 결부된 점이 비판받을 소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상도 사투리에는 타 지역에 없는 특이 어휘들이 있고 이 중에는 한자어에서 비롯된 것이 적지 않다. 이것은 유학이 가장 성했던 경상도 특유의 학문 문화적 전통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시안(歲寒)', '계추와 동추', '시껍(食怯)했다' '쌔기(速히)' 따위는 한자에서 변한 경상도말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이런 논박이 학문의 바람직한 자세일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 국어 연구는 한 단계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 정말 이 수저와 정지는 한자에서 온 것일까 아닐까? 독자 여러분도 한번 생각해 보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골아이고향☜ 에도 송고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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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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