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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드디어 오래 전부터 꿈꾸어 왔던 전원생활이 앞으로 한 달 후부터는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2월부터 전원주택을 짓기 시작한 것입니다.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인간이기에 흙 속에서 살기를 갈망하고 있었는데, 기회가 생겨 과감하게 시도했습니다.

집 짓는 과정을 시리즈 기사로 쓰려고 마음먹었을 때, 내 집 마련에 입을 것과 먹을 것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분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에 망설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전원주택의 꿈을 안고 사는 독자들에게 참고가 되기를 바라며 집 짓는 과정을 순서대로 쓰려고 합니다. 또 이 글을 읽고 조언을 해주실 분들은 댓글이나 전화를 주시면 누구든지 언제나 감사한 마음으로 환영합니다.


▲ 집터의 뒤쪽 언덕에서 본 전경. 왼쪽으로 펼쳐진 봉우리가 깃대봉, 오른쪽 높은 봉우리가 국사봉이다.
ⓒ 윤형권

왜 전원주택을 꿈꾸는가

집에서 자동차로 불과 5분만 달리면 논과 밭이 나타나지만 지금 살고 있는 주택 주변은 온통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포장돼 한 뼘의 땅도 구경할 수 없는 곳이다. 이런 삭막한 곳에서 탈출하려고 지난 10년간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터였다.

탈출!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라는 감옥으로부터의 탈출을 말한다. 대개 은퇴 후 노후를 보내려고 전원주택을 장만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가능하면 인생의 많은 시간을 생명력이 있는 흙과 새와 벌레가 있는 대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초등학교 6학년인 둘째 아이는 아들인데 감수성이 뛰어났다. 새와 벌레 등을 유난히 좋아한다. 등산을 하다가도 벌레를 하나 발견하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관찰하기 일쑤다. 둘째 아이는 아파트 구조인 집에서 이구아나, 도마뱀, 잉꼬 등을 기르고 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차일피일 미룰 일이 아니다 싶어 일을 저지른 것이다.

'탈출은 무모함과 과감함을 요구한다'는 지론을 스스로 위안 삼아 집을 짓기 시작했다.

좋은 터 장만하기

약 3년 전부터 집 지을 터를 고르기 위해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지난해 봄부터는 바짝 서둘렀다. 행정중심복합도시가 들어서는 연기공주와 인접해 있어 땅값이 점점 오르는 기세였기 때문이다. 집 지을 좋은 터를 고르는 데는 인문지리와 자연지리를 종합한 풍수지리를 참고했다. '남향집을 얻으려면 3대가 적선해야 한다'는 말이 있지만 남향이 아니라도 편안한 자리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내 나름대로 정한 좋은 터의 조건은 첫째로 배산임수(산을 뒤로 하고 물이 앞에 있는 터)다. 또 주산과 청룡백호가 갖추어졌으면 더 없이 좋은 터로 여겼다.

둘째로는 깊은 산 속이나 벌판이 아닌 마을에 가까운 곳을 택하기로 했다. 호젓한 전원생활을 하겠다고 동네에서 먼 곳에 집을 지었다가 외롭다고 포기하는 경우를 종종 보았기 때문이다.

셋째로는 동네주민들의 인심을 따졌다. 풍수적으로 길지라도 동네사람들의 인심이 사나우면 결코 살아가는 데 편안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지리학에 정통한 18세기 실학자인 이중환은 "집터는 지리, 생리, 인심이 좋아야 하고 그 다음에 산수가 좋아야 한다"고 말해 좋은 집터의 조건으로 동네사람들의 인심을 꼽았다.

이런 잣대를 갖고 좋은 집터를 찾아 나섰다. 부동산업자들에게 집 지을만한 곳을 찾아달라고 여러 곳에 의뢰해 놓기도 했다. 차를 몰고 지나다가 괜찮은 집터다 싶으면 차에서 내려 찬찬히 살펴본 후 땅주인을 찾아 염치불구하고 매도 의사를 묻기도 했다. 또 동네 이장을 찾아가 집터로 쓸만한 곳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한번은 논산시 연산면 송정리 개태사 맞은편에 있는 양지서당 뒤편에 700여 평의 밭이 좋다고 해 달려가 보았다. 이 땅의 장점은 산 속이면서도 민가와 가깝고 밭 앞으로 오염이 되지 않은 맑은 물이 사계절 끊이지 않고 흐르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 땅은 매물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이 땅은 송정리 이장이 주인이었는데, 동네 주민 중에 이장님과 친분이 두터운 분을 찾아가 밭을 팔 생각이 없는지 타진을 해보도록 부탁을 했다. 결과는 허사였다. 팔 생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땅 주인을 동네사람의 집으로 두 차례나 초대해 코가 비뚤어지게 술을 마시며 간청을 했다. 하지만 땅을 팔 생각이 없음이 확고부동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결국은 그 땅을 포기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지금 주택을 짓고 있는 땅을 만났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도 인연이라지만 땅과 사람이 만나는 것도 인연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지난해 5월경, 여기저기 땅을 의뢰해 놓은 곳 중의 한 곳인 연산 사거리에 있는 D부동산에서 소개했는데, 2300평이나 되는 밭이었다. 밭 가운데 대지가 200여 평이 있었다. 이 땅은 해발 30여 미터쯤 돼 보이는 낮은 구릉을 뒤로 하고 앞은 동남향으로 트였으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르는 냇물이 사계절 끊이지 않고 굽이굽이 흘렀다.

구릉은 작은 야산을 형성하고 있는데 동남쪽으로 병풍처럼 둘러쳐진 황룡산에서 뻗어 내려온 맥이다. 대지의 뒤 언덕인 이 구릉은 부모격인 황룡산을 바라보고 있는 형국을 띠고 있다. 황룡산은 대둔산에서 시작한 작은 산맥이었으니 풍수적으로 해석하면 이른바 회룡고조(回龍古祖)혈이라고도 볼 수 있다.

아무튼 이곳이 마음에 들어서 분할하여 나는 500여 평만 쓰기로 하고 나머지는 다른 분들이 계약을 했다. 이곳은 백제와 신라가 최후의 전투를 벌인 황산벌이다. 대지의 남쪽으로 보이는 국사봉과 그 왼편으로 깃대봉이 있고 그 사이에 한민대학이 자리를 잡고 있다. 지금의 한민대학 자리는 1400여 년 전 신라군이 진을 쳤고, 대지의 뒤편 서북쪽으로 10km 떨어진 연산면 관동리에 계백의 5천 결사대가 진을 치고 사투를 벌인 곳이다.

낙점... 설계 시작

대개는 집터로 전쟁터를 피한다고 하지만 이 땅은 이미 140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풍수지리학자인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도 이곳을 밝은 터로 평한 바 있어 샀다. 또 2~3년 전만 해도 평당 10여만원도 안 됐는데 논산-대전 간 국도에서 가깝고 행정중심복합도시 예정지와도 그리 멀지 않은 탓에 투기 붐이 일어나 나날이 땅값이 오르는 곳이었다.

땅을 구하느라 심신이 지치기도 했지만 이만하면 되겠다 싶어 대지를 포함하여 밭 550여 평을 평당 20만원에 계약했다. 이렇게 해서 몇 년간에 걸친 대지구입이 이루어졌다.

그런 뒤 지난해 10월에 등기를 내자마자 곧바로 대지 550평에 건평 35평의 집을 짓기로 하고 설계를 시작했다.

(*기사 계속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집짓기는 현재(5월 1일) 골조를 다 세우고 지붕공사를 하는 중입니다. 다음에 이어질 기사를 보시고 조언을 해주실 분은 dogkebee@empal.com 으로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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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깎는다는 것은 마음을 다듬는 것"이라는 화두에 천칙하여 새로운 일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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