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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는 '딴따라'의 의미는 "'연예인'을 얕잡아 이르는 말"이라는 국어사전의 풀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영화팬들에게 '아주 근사한' 마지막 장면으로 기억되는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감독 임순례)에서 심수봉의 '사랑밖에 난 몰라'를 구성지게 불렀던 영화배우 오지혜(38)를 만나면 '딴따라'는 좀 고상한(?)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각설하고 정리하면,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는 쟁이'가 오지혜가 말하는 딴따라의 의미가 아닐까 싶다.

시사주간지 <한겨레21>에서 '오지혜가 만난 딴따라'를 연재하면서 인터뷰 좀 하자고 말을 넣는 오지혜에게 "내가 감히 어떻게 딴따라야? 난 그냥 양아치야"라고 했다는 연극 <늘근 도둑 이야기>의 어설픈 늙은 도둑 명계남의 말은 '오지혜스러운' 해석의 논리적 근거로 충분하다.

오지혜는 가난하게 산 것도 억울한데 놀기만 했다는 누명(?)까지 써야하는 베짱이가 무척 안 됐다고 항변한다.

개미들은 힘들게 일하면서 베짱이의 연주를 들으며 위로를 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는지, 과연 베짱이는 자기 혼자 즐거우려고 연주를 했는지, 오지혜는 반문한다. 대신 놀아주고 돈을 버는 것이 베짱이의 직업이 아니냐고도 했다.

딴따라와 딴따라가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로 만나 딴따라로 사는 게 무엇인지 속내를 털어놓은 책 <딴따라라서 좋다>(한겨레출판 펴냄)를 낸 오지혜를, 지난 18일 서울 강남 도산공원 앞 한 찻집에서 인터뷰했다.

오지혜식 딴따라론

▲ 우연한 기회에 시사주간지 인터뷰어가 된 오지혜.
ⓒ 조성일
"제 이름 '오지혜'가 인쇄된 책 표지를 보니까 처음 배우 데뷔할 때처럼 심장이 콩닥콩닥 뛰면서 쑥스럽고 기분 좋고 그랬습니다."

책 낸 사람 인터뷰하면서 으레 던지게 되는 첫 질문에 대해 으레 나올 수 있는 대답으로 맞대응을 하면서도 자신의 '나와바리'(영역)가 '글쟁이'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고 덧붙이는 센스로 오지혜는 '진부스러움'을 피해간다.

많은 글쟁이들이 책을 내고 나서 흔히 하는 겸사, '종이 낭비한 것 같다'는 표현이 오버가 아닌가 싶었는데, 막상 자신이 책을 내고 보니 그 겸사가 백 번 천 번 이해가 가며 소심해지더라고도 했다.

책에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자신의 책은 화장실에서 잡지까지 다 읽고 난 다음에 읽을거리가 없을 때 읽는 책이라지만 '딴따라를 통해 본 오지혜의 딴따라론'이라고 해도 될 듯 싶다.

그래서 '오지혜가 만난 이 시대의 쟁이들'이란 이 책의 부제를 '오지혜의 딴따라 인물 에세이' 쯤으로 바꾸는 것이 오히려 책의 성격을 더 정확하게 드러내지 않나 싶다.

이 책은 분명 '순수의 연기, 옹골진 배우'라는 제목을 단 배우 문소리와의 인터뷰를 시작으로 명계남, 김창완, 윤도현, 최광일, 그리고 '문화혁명을 노래하는 잔 다르크' 이은미까지 37명의 딴따라와 인터뷰한 기록이다.

그러나 오지혜의 인터뷰글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여느 인터뷰글과 분명히 다르다. 과도하다 싶을 만큼 리드 부분이 긴 게 특징인데, 이 긴 리드에서 자신의 딴따라론을 한껏 드러내 놓는다.

딴따라 팔자엔 없던 시사주간지 인터뷰어

오지혜가 소위 '나와바리'를 인터뷰어로까지 넓히게 된 계기는 2002년 가정경제의 어려움(?)으로 같이 구독하던 영화잡지는 끊고 <한겨레21>만 본다는 뉴스(?)가 이 시사주간지 기자의 귀에 들어가 '이 주의 독자' 코너에 끌려나오면서다.

그 일이 있은 지 반년 쯤 지난 후 오지혜는 한 영화잡지 기자의 제의로 영화배우 문소리와 대담을 하였는데, 이걸 본 이 시사주간지의 기자가 시쳇말로 '필이 꽂혀' 오지혜에게 연재를 제의한다. 컨셉트는 '딴따라가 만난 딴따라'. 이렇게 딴따라 오지혜는 2003년 1월부터 2년여 동안 시사주간지의 인터뷰어가 된다.

"배우나 가수, 개그맨들의 인터뷰 기사는 대한민국 언론에 차고 넘칩니다. 하지만 보통 기자들로 구성되는 인터뷰어들이 일회성 만남으로는 죽었다 깨도 흉내낼 수 없는 게 하나 있습니다. 그건 '역사'입니다."

<한겨레21> 고경태 편집장이 오지혜를 치켜세우는 말이다. 좀 심하다 싶을 만큼 헌사를 늘어놓는 것이 자신이 발굴한 자신의 잡지 필자이기 때문이라고 하면 할 말 없겠지만 책을 읽어보면 그같은 평가가 기우였음을 알 수 있으리라.

이 책에는 밝은 배우의 슬픈 이야기, 슬픈 가수의 환한 이야기, 잘난 감독의 후진 이야기 등 우리가 알고 싶어 하면서도 정작 제대로 알지 못하는 딴따라들의 자기고백이 들어있다.

오지혜는 이들과 만나면서 입장의 동일함을 느끼는 것이 가장 행복했었다고 했다. 물론 연극연출가 이윤택이 쓴 책 제목 <우리들에게는 또 다른 정부가 있다>는 것처럼 다들 '다른 정부', '다른 세상'을 꿈꾸고 있기에 완벽한 공감을 구하진 않았다고 했다.

"제가 이 책에서 만난 쟁이들은 어쩌면 저와 개인적으로 매우 가까운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이야기가 아니라 저만이 알고 있는 '딴따라의 역사'를 담아보려고 했었습니다."

"친한 사람하고만 한다고? 그럼 뒷담화나 까란 말인가"

▲ <딴따라라서 좋다>를 낸 배우 오지혜가 '윤여정'편을 펼쳐보고 있다.
ⓒ 조성일
오지혜가 연재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비판은 왜 친한 사람만 인터뷰 하느냐, 너무 칭찬 일색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지혜의 입장은 분명하다. 자신은 평론가가 아니라는 점과 자신과 별로 친하지 않은, 오지혜식 표현을 빌리면, 글이 마렵지 않은 사람을 왜 인터뷰하느냐고 했다. 그런 인터뷰는 그런 인터뷰를 할 다른 인터뷰어가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시간이 돈인 사람들을 사정사정해서 불러놓고 뒷담화나 까야 하겠습니까. 비평과 분석은 비평가나 기자들이 할 일이고, 그들과 멀리 있지 않는 저는 그저 동료, 선배, 후배를 만나 파이팅을 외쳐줄 뿐이었습니다."

칭찬 일변도라는 비판에 대해 이렇게 항변하는 오지혜는 친한 사람만 인터뷰한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자신의 인터뷰는 친한 사람만이 볼 수 있는 아우라를 쓴 것인데, 이게 아니라면 차라리 틀린 글이 아니라 싫어하는 글이라고 말해달라고 할 정도로 똑 부러진 입장을 갖고 있다.

문소리를 인터뷰하면서 "언제나 인터뷰이(inter-view-ee)입장에만 있다가 처음으로 인터뷰어(inter-view-er)로서 갖는 자리"랍시고 챙겨간 취재수첩을 테이블 위로 꺼냈다 넣었다 몇 번이고 반복하면서 정작 무엇을 받아 적어야 할지 몰라 난감했지만 남아있는 또렷한 기억 하나는 홍보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똑같은 얘길 하고 다닐 그녀가 측은하게 여겨져서 시시껄렁한 호구조사는 생략했던 점이다. 과부 마음을 아는 홀아비를 자임했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오지혜의 인터뷰는 절반 이상이 수다였고 정색하고, 말 주고받음으로 이루어진 인터뷰는 극히 적었다. 오죽하면 탤런트 윤여정이 인터뷰를 끝내고 일어서는 오지혜에게 인터뷰는 언제 할 거냐고 했을까.

오지혜스러움은 바로 'O형' 기질

지난 대선에서 될 사람 밀어주자는 심정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찍었고 그 후 공개적으로 민주노동당에 입당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던 오지혜에게 최근 여성 총리, 여성 정치인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돌아오는 자생 페미니스트 오지혜의 대답은 아직도 '여성'자를 붙이는 우리 사회의 의식이 한심스럽다며 그냥 '한명숙 총리'라고 부르면 어디가 덧나느냐고 한다.

오지혜는 솔직하다. 그래서인지 영화 <이대로, 죽을 순 없다>의 감독인 남편 이영은은 오프라 원프리쇼 같은 프로는 죽었다 깨도 못 맡는다고 한단다. 늘 좋아하는 사람만 만날 수는 없기에 싫은 사람도 겉으론 좋은 척 하며 만나야함에도 오지혜는 그게 안 되기 때문이란다.

아이 엄마인 오지혜는 길가다 잘못된 일이 있으면 꼭 참견을 할 만큼 오지랖도 넓다. 얼마 전에도 동네 어귀에서 엉켜 싸우는 술 취한 두 사람을 뜯어 말렸었다. 다행히 그 사람들이 시비를 걸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등골이 오싹해지더란다. 그날따라 딸 아이 손을 잡고 집으로 가는 어두운 골목길이 유난히 으스스하더란다.

배우 오지혜는 땅거미가 지는 저녁이면 다시 배우로 돌아오기 위해 잠시 엄마, 며느리 자리로 돌아간다. 늘 아이를 돌봐주시는 시어머니가 감기에 걸리셔서 저녁에 영화 <사생결단> 시사회를 보려면 잠깐이라도 아이를 봐야하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찻집을 나서면서 문득 잔뜩 찌푸린 날씨에도 활짝 웃는 오지혜는 어떤 배우일까, 오지혜스러움은 어떤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리타분할 정도로 원칙을 지키려 하고, 잔소리 많고, 흥분 잘하고, 잘 놀고, 활달하고, 전형적인 O형이죠."

딴따라라서 좋다 - 오지혜가 만난 이 시대의 '쟁이'들

오지혜 지음, 한겨레출판(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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