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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6일 오전 9시 인천 산곡동을 찾았다. 그간 인천 동부공원관리소 측과 개주인 이아무개씨 사이의 분쟁으로 좁은 우리 속에 갇힌 개들에게 집이 생기게 되었다는 소식. 관리소측은 예산집행의 어려움 때문에 더는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입장이었고 이씨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견사를 지을 수 없는 처지에 있기 때문이었다. 도움의 손길을 준 것은 인천수의사협회. 인천수의사협회 허주형 회장은 협회의 수의사들로부터 성금을 모아 지붕이 있는 개집 50개를 마련해 6일 현장을 찾았다.

▲ 적응훈련을 위해 미리 빼 놓은 개. 목의 쇠줄은 우리에서 빼낼 때 사용하기 위한 것. 4월 6일 현재.
ⓒ 전경옥
이씨는 미리 연락을 받고 우리 속에 갇힌 개들을 몇 마리 빼 밖으로 내보내 묶어 둔 상태였다. 한꺼번에 개들을 내보낼 경우 무리가 간다는 주장. 이미 좁은 우리 안에서 벗어나 좀 더 큰 견사 안에 보호되어 있는 개가 눈에 띄었다. 목에 걸린 쇠줄은 좁은 우리에서 개들을 밖으로 빼기 위해 채워 둔 것이라고 한다. 개들은 한 마리당 3~4일의 적응훈련을 거쳐 밖으로 나오게 된다. 현재 좁은 우리 안에 있는 개들이 밖으로 완전히 나오게 되기까지는 총 15일이 걸리게 된다.

이미 개집이 마련되어 있는 상황에서 좀 더 빨리 밖으로 내보내 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허주형 회장은 이런 어려운 상황을 '분리불안'이라고 설명한다. 좁은 공간에 갇혀 있다가 갑자기 벗어났을 경우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 며칠간 시간을 두고 적응훈련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우리의 앞쪽에 있는 개들. 그간 조금씩 빼내 한 마리씩 들어가 있는 곳이 많았다. 4월 6일 현재.
ⓒ 전경옥

▲ 첫번째 우리에 있는 개. 목에 쇠줄이 보인다. 적응훈련을 준비 중. 4월 6일 현재.
ⓒ 전경옥
애초 동부공원관리소 측에서 만들었던 우리는 길게 두 줄로 연결되어 있다. 앞줄 첫 번째 우리의 개를 보니 이미 적응훈련을 위해 목에 쇠줄이 감겨 있었다. 문을 열자 개가 요동을 치며 튀어 올랐다. 주인인 이씨가 목줄을 힘껏 잡아챘는데도 여간해서 개의 움직임이 가라앉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간의 스트레스가 엄청났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 잠시 후 개가 소란을 멈춘다. 하루에 몇 차례 받아야 한다는 적응 훈련. 15일이 너무나 길다.

▲ 처음 밖으로 나온 개. 한참을 요동치다 가라앉아 있는 상태. 4월 6일 현재.
ⓒ 전경옥
뒤쪽 우리를 보니 목에 쇠줄이 없다. 우선적으로 앞쪽의 개들을 풀어주고 뒤쪽의 개들은 나중에 순번을 받을 것이다. 미안한 마음에 뒤쪽 개들에게 쉽사리 다가가지 못한다. 좀더 기간을 앞당길 수는 없을까. 다급하고 초조한 마음이 절실할 뿐이다.

▲ 뒤편 우리에 있는 개. 아직 목에 쇠줄이 없다. 4월 6일 현재.
ⓒ 전경옥
이미 이씨가 조금씩 개들을 빼내 왔지만 첫 번째 줄 맨 끝 우리에는 아직 두 마리씩 개들이 들어가 있는 곳도 있었다. 사람들이 왔다갔다 소란스러운 소리가 나자 불안한 기색을 보이며 철망을 물어뜯고 옆의 개들과 싸우기 시작한다. 이 분쟁과 싸움이 언제나 그칠 수 있을지.

▲ 싸우고 있는 개들. 4월 6일 현재.
ⓒ 전경옥
개집을 조립하는 사이 다른 개들이 있는 장소로 올라갔다. 옆에는 공원 조성을 위해 공사가 한참 진행 중이었고 소음이 심각한 상황이었다. 요란한 소리에 일부 개들은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저 멀리 산위 나무에 묶여 있는 개들도 여전히 보였다. 그 개들에게는 언제나 집이 생길까. 지난 봄비가 개들에게는 반갑지 않았을 것이다.

▲ 태어난지 15일 된 새끼들. 4월 6일 현재.
ⓒ 전경옥
그 와중에서도 생명은 태어나고 있었다. 태어난 지 15일 된 새끼들. 이 새끼들은 아무 일 없이 건강할 수 있을까. 매년 이어지는 행정기관과의 불화와 철거 집행. 어떤 상황도 이 아이들을 보호해 줄 수 없을 듯하다.

허주형 회장은 장수동 사건에 이어 산곡동 사건의 개들을 책임지고 치료해 왔다. 허 회장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개농장 사건의 원인에 행정기관의 잘못된 인식이 자리잡고 있음을 지적했다. 법적 집행은 어쩔 수 없는 일이나 살아있는 생명을 옮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동물 전문가의 자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허 회장은 인천시에 앞으로 있을 행정집행 시 수의사협회의 자문을 구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고 한다. 문제는 인천시 만이 아니다. 전국 어디에서도 이런 일은 발생할 수 있다. 물건이 아닌 이상 소중한 생명을 다루는 데에는 최소한의 배려가 필요하지 않을까.

▲ 공터에 모아놓은 개집. 총 50개. 4월 6일 현재.
ⓒ 전경옥
12시경. 개들의 적응훈련이 끝나면 하나씩 고정시켜 놓을 개집이 다 모였다. 총 50개. 개들의 적응훈련과 치료를 도와주시겠다는 수의사도 있다. 개집을 트럭에서 내리고 있는 와중에 지나가던 주민이 묻는다.

"이러다 완전히 여기에 정착하는 거 아니예요? "

짖는 개소리와 여름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냄새. 주민들로서는 곤혹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먼저 귀중한 생명이 어찌 될지 물어주는 고맙고 정다운 말투가 그립다. 또 다시 쫓겨나면 개들은 어디로 가라는 것인지…. 장수동 사건에서는 동물단체가 범법자가 되었고 산곡동에서는 수의사들이 사비를 털고 자원봉사를 자청했다. 예산 마련을 위한 항목을 법적으로 찾아내기가 어렵다는 공원관리소 측 주장. 대한민국의 법은 너무도 무심하다. 살아있는 생명을 구하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법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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