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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화문 집회현장에 도착한 장수동 개들.
ⓒ 윤관식
▲ 집회에 모인 사람들.
ⓒ 윤관식
26일 낮 12시 서울 광화문. 동물사랑실천협회 주관으로 열린 시위 현장을 찾았다. 동물보호연합 이원복 대표의 개회사로 시작한 집회. 많은 취재진과 동물단체 회원들이 모인 가운데 한송님 동물사랑협회 활동가의 연설이 이어졌다.

한송님씨는 "농림부가 발표한 동물보호법 개정안은 일부 애견가가 지녀야 할 에티켓 정도를 규정했을 뿐 장수동과 산곡동에서 연이어 일어난 동물 학대를 막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하며 실질적인 동물보호법 개정을 촉구하는 것이 본 시위의 목적임을 밝혔다.

이어 한송님씨는 장수동 사건 경위를 설명하며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그간 노씨(개농장 주인)를 수차례 만나며 나머지 개를 양도해 달라고 부탁했으나 오히려 보호소로 데려간 개마저 돌려달라는 기가 막힌 답변만 들었을 뿐이다,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판단에 오늘(26일) 새벽 동물사랑협회 회원들이 장수동에 가서 개들을 데려왔다"는 것.

한송님씨의 이야기에 모인 사람들은 숨죽이며 박소연 대표가 오기를 기다렸다. 12시 30분이 조금 넘은 시각. 멀리 개들을 실은 트럭이 보이기 시작했다. 트럭이 길 옆에 정차하자마자 몰려드는 취재진들. 수없이 터지는 카메라 소리에 놀라 개들이 이쪽을 물끄러미 응시한다. 그리고 모인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이제 살았구나!

개들을 포천으로 안전하게 데리고 갈 남자회원들이 떠나고 박소연 대표의 연설이 시작되었다. 박 대표는 "더 기다렸다가는 개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새벽에 장수동에 도착해서 보니 이미 10마리는 팔려가고 없는 상태였다"고 말했다.

또 "수년간 동물보호 운동을 하면서 동물 학대를 자행한 학대범에게 동물단체 회원들이 구걸하고 매달려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이런 실효성 없는 동물보호법이 존재하는 한 장수동 사건은 끊임없이 반복될 것이다, 학대받는 여성과 아이에게 쉼터가 필요하듯이 학대받는 동물들에게도 피난권이 필요하다, 우리를 범법자로 만들고야마는 동물보호법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결연한 의지를 밝혔다.

"개고기 합법화 절대 인정할 수 없다"

▲ 집회에 참석한 유명인들
ⓒ 전경옥
▲ 동물보호법 개정 촉구 성명서를 발표하는 박소연 대표.
ⓒ 전경옥
박 대표는 개 식용에 대한 언급도 피하지 않았다. "실상 개 사육과 도살의 과정 자체가 학대이다, 짖는다고 어릴 적부터 고막을 터뜨리고 평생을 흙 한 번 밟을 수 없는 좁은 견사에 가둬두고 키우다가 짐짝처럼 트럭에 실어 도살장으로 끌어가고 있다, 개는 오랜 기간 인간과 함께 지내며 인간의 행동양식을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개고기 합법화는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

박 대표의 연설이 끝나고 집회에 나온 고영욱ㆍ리아 등 일부 가수, 연기자들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리아씨는 "장수동 사건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 동물 학대란 결국 그 동물을 대하는 인간성의 말살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나만 사랑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많은 동물을 생각해야 할 시점인 것 같다"고 말했다.

연이어 안무가, 연극인, 서양화가로 구성된 예술가들의 퍼포먼스를 본 후 회원들은 경복궁 앞 열린시민마당으로 향했다. 점심을 먹은 후 한송님 동물사랑실천협회 활동가에게 동물학대에 대한 사례를 들을 수 있었다.

"몇 년 전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처음 벌금을 물었던 사건이 있었어요. 춘천에서 있었던 사건이지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부부가 개를 끊임없이 학대했는데 주민의 신고로 법정에 섰지만 자신의 학대 사실을 순순히 시인했기 때문에 10만원의 벌금을 물었어요. 그러나 주인은 개는 자기 소유니까 당장 잡아먹겠다고 위협하더군요. 어쩔 수 없이 동물단체가 찾아가 30만원을 주고 사올 수밖에 없었어요."

우리나라 최초로 동물 학대 벌금을 문 사례. 주인은 결국 20만원의 이익(?)을 본 셈이다.

동물보호연합 이원복 대표, 동물사랑실천협회 박소연 대표와 집회에 모인 사람들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어김없이 장수동 개들을 데려온 이후 법적 대응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박소연 대표는 "수많은 법률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했다. 원칙적으로 우리가 한 행동은 절도죄에 해당한다. 하지만 위법성이 없으며 개인적 이득을 취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또 이를 통해 시민단체가 얻을 수 있는 효과가 더 크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민사상으로 노씨가 보상을 요구한다면 이제껏 노씨가 개를 팔아온 시가만큼 보상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인간이 지켜야 할 가장 높은 계율은 생명을 구하는 것이며 생명은 누구의 소유도 될 수 없다는 것이 박 대표의 입장이다.

가장 민감한 부분이라는 개고기 문제에 대해서 박 대표는 이제껏 동물단체가 해왔던 활동에 오류가 있었음을 시인했다.

박 대표는 "그동안 동물단체의 상황이 열악했다, 개 식용 문제가 나올 때마다 내부적 역량이 없어서 외국에 우리의 상황을 알리는 수준에서 활동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것 때문에 민족주의적 반감을 불러 일으켰던 점이 있다, 지금도 개 식용 반대에 대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높다, 현 시점에서 개고기 문제를 들고 나온다면 합법화로 분위기가 흐를 염려가 있다, 하지만 꾸준히 우리는 개고기 식용금지 활동을 전개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회원간의 열띤 토론과 질의응답이 이어지는 사이 경찰에서 천막집회가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어떻게 할지 망설이는 사이 시간은 오후 5시 20분. 촛불 집회를 하기엔 이른 시간이고 추운 날씨에 토론을 진행하기가 어려워 종로 방면 한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생명 살리자는 목소리에 왜그리들 냉혹한지..."

▲ 종로 YMCA 앞 촛불집회.
ⓒ 전경옥
저녁 7시경 다시 촛불집회 장소인 종로YMCA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집회를 보며 한 마디씩 한다. "아~ 그 사건." 크기는 큰 사건이었나 보다. 추운 날씨는 밝은 촛불에 아랑곳없이 살을 에며 찾아온다. 입구를 막지 말라는 옆 점포 주인의 불만 어린 목소리도 들린다.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더욱 간격을 좁혀야 한다. 늦게 도착해 급히 촛불을 손에 쥐시는 나이 지긋하신 아저씨께 물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소문 듣고 왔지…. 동물 사랑해야 해."


'개 지옥' 탈출한 견공들
동물사랑실천협회 보금자리에

ⓒ윤관식

집회가 끝날 때 쯤 동물보호연합 윤관식 회원에게 반가운 전화를 받았다. 개들을 포천으로 옮기기 위해 집회 도중 포천으로 떠났던 윤관식 회원. "개들이 도착해서 처음에는 낯설었는지 구석에 모여 가만히 있더니 지금 잘 놀고 있다"는 것.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을 떠나 처음으로 흙을 밟은 개들. 이제 악몽은 끝났다. / 전경옥
8시가 넘어 천막농성을 위해 열린시민마당으로 향했다. 아까보다 더욱 완강해진 경찰의 입장. 현행법상 천막농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 옆에 여러 단체가 모여 철야 농성을 하는 천막이 보였다. 집회의 권리에 형평성이 있어야 한다고 몇몇 회원들이 강력하게 항의하지만 경찰의 입장은 바뀌지 않는다.

급기야 천막을 내리지 못하도록 차를 에워싼다. 대한민국의 법은 누구에게나 평등하지 않은 듯하다. 생명을 살리자는 외침에 왜 그다지도 냉혹한 것일까.

밤 9시 40분. 집회를 해산하며 걸어 나오는 뒤편으로 경복궁이 어렴풋이 보인다. 사람들은 동물의 권리가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말한다. 그리고 개고기를 먹는 것이 전통이라고 말한다. 저 멀리 보이는 경복궁. 그 곳은 한때 절대 권력의 상징이었고 전통이었다. 하지만 그 곳엔 지금 아무도 살지 않는다. 전통이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한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변하지 않아야 하는 가치가 있다. 생명존중. 살아있는 모든 생명이 어떤 가치보다 우선시되는 사회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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