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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광 서울중앙지검 형사부 검사
ⓒ 오마이뉴스 남소연

"깡패의 세계를 모르니까, 조폭 영화를 보면 '그런가 보다' 하고 믿는다. 깡패는 돈도 없고, 의리도 없고, 로맨스도 없다."

언제부턴가 한국 영화의 단골손님으로 등장한 조직폭력배, 그러나 김영광(41·서울중앙지검 형사부) 조직폭력 전담 검사가 들려준 조폭의 세계는 스크린 속과 너무 달랐다.

"조폭은 양아치라고 불리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김 검사는 22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최근 한국영화에 불어닥친 조폭 열풍와 관련 "국민들이 안 겪어봐서 모르기 때문"이라며 "조폭은 별개의 세계이기 때문에 거짓말을 해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의리가 있는 조폭은 없다"며 "의리가 있다는 주장의 배경에는 항상 이권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조폭이 기업화되는 추세와 관련 "(과거) 유명한 조폭이었다고 해서 지금 합법적인 사업을 하는데 무조건 인권침해적 감시를 하는 것도 문제고, 깡패는 법보다 주먹이 가깝기 때문에 언제 본색이 드러날지 모른다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조직폭력배와 양아치는 뭐가 다를까. 김 검사는 "우리는 같다고 보지만 조폭은 양아치라고 불리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며 "조폭은 사람을 죽지 않게 할 만큼 칼을 쓰는 방법도 가르치지만, 양아치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고 덧붙였다.

김 검사는 지난 2월 검찰 인사 전까지 5년간 대구지검과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직폭력범죄 전담부에서 근무했다. 그와의 인터뷰는 23일 오전 서울중앙지검 검사실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이다.

"양아치나 조폭이나 다 나쁘지만, 양아치가 더 위험하다"

- 한국 조직폭력배는 시대별로 어떤 특징을 보여왔는가.
"'조폭 역사' 하면 먼저 김두한·이정재·임화수 등을 얘기하는데, 이들은 우리가 말하는 조폭과는 성격이 다르다. 한국 조폭의 효시는 '신상사파'라고 할 수 있다. 1960년대 명동에서 사보이호텔을 기반으로 성장했는데, 두목이 특무상사 출신의 신상현(70)씨다. 이 때만 해도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봤던 풍류가 있었다.

지금도 신상사파 이름을 파는 조직이 있고, '신촌이대식구파' 두목이 신상사파 막둥이라는 말도 있고, '돈암동식구파'는 신상사파를 정신적 지주로 내세우고 있다.

이후 오종철, 박익(일명 번개)이 이끄는 범호남파가 득세했다. 그 때 처음 사시미칼이 등장했다. 본격적으로 그 칼을 사용한 사람이 김태촌, 조양은이다. 깡패들은 나이대로 서열을 매기는데, 조양은이 나이많은 사람을 습격해 난자한 사건 때문에 (조폭내) 질서가 문란해졌다고 한다. 이들의 세력이 커지면서 조양은은 '양은이파', 김태촌은 자기 고향 이름을 따서 '서방파' 두목이 됐다. 여기에 이동재가 두목인 '오비파'가 가세했고, 1970년대 말 소위 깡패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지금도 깡패 얘기할 때 '3대 패밀리'라고 하면 양은이파, 서방파, 오비파를 가르킨다.

이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 삼청교육대가 생기고, 3대 패밀리 두목들은 모두 징역을 살았다. 지금은 다 출소했지만 활동 자체는 약해졌다. 대신 그 밑에 있던 깡패들이 신서방파 등을 내세우면서 득세하고 있다. 최근 부산 영락공원 장례식장에서 벌어졌던 소위 '칼부림' 사건 같은 것은 80~90년대까지 종종 있었지만, 요즘 신세대 깡패들은 거의 칼부림을 하지 않는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 조직폭력배, 양아치, 깡패는 서로 어떻게 다른가.
"우리는 같다고 본다. 다만 조폭은 양아치라고 불리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규율이나 의리가 없고, 주먹도 못 쓰는 뒷골목 건달 몇 명이 모여서 서민들 협박해 돈을 갈취하는 게 양아치라는 것이다. 조폭 자신들은 일반인을 상대로 칼이나 주먹을 휘두르거나, 돈을 빼앗지 않기 때문에 양아치와 물이 다르다고 한다. 양아치는 중소기업이고 자기들은 대기업 내지 재벌이라고 하는 것인데, 나쁜 일 하는 것을 보면 다 똑같다.

검찰 입장에서 보면 양아치는 표나게 나쁜 짓을 하니까 잡기가 쉽고, 조폭은 교묘하게 넘어가기 때문에 잡기 힘들다. 전부 깡패이지만 사실 더 위험한 것은 양아치다. 조폭은 사람을 죽지 않게 할 만큼 칼을 쓰는 방법도 가르친다. 실제 칼부림 사건에서 조폭들이 제대로 싸우면 사람은 안 죽는다. 목이나 심장 부위를 찌르면 나중에 재판받을 때 살인미수로 의율된다는 것을 알아 생명에 지장없는 아킬레스건을 자르는 식이다. 조직없는 양아치는 그런 게 없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 조폭 하면 '의리' 등의 단어가 떠오른다. 최근 조폭의 특징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의리있는 조폭은 없다. 1980년대 전주에 월드컵파라는 유명한 깡패들이 있었는데, 경찰이나 검찰이 이 깡패들을 잡아오면 번호를 매긴다. 그래서 한두 번 학교(교도소의 은어)를 다녀오면 스스로 몇 번인지 안다. 이 깡패들은 범행도 잘 자백하고 오히려 선배나 동료들의 범행까지 뒤집어쓰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을 의리라고 보기는 힘들다.

순박한 대한민국 사람들 국민성이 원래 그렇지 않나. 깡패들이 배신하는 드라마, 만화를 보면 그게 바로 깡패들의 본 모습이다. 의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의 배경에는 항상 이권이 있다. 이권이 있기 때문에 선배를 계속 모시면서 의리를 찾는 것이지, 만약 모시는 선배가 이권이 없거나 먹을 것이 없다면 바로 배신하는 게 조폭이다."

- 과거엔 조폭이 유흥업소 등으로부터 불법적으로 돈을 갈취했는데, 최근엔 사업을 하거나 기업화되는 추세라고 하던데.
"김대중 정권 시절부터 조폭이 정치인들과 연계되면서 약간의 신분상승도 했고, IMF 때 사채를 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 주가조작이나 건설 시행업을 하면서 큰 돈을 번 깡패도 많다.

검찰은 항상 두 가지 측면에서 고민한다. 과거 유명한 조폭이었다고 해서 지금 합법적인 사업을 하는데, 무조건 인권침해적 감시를 해야 하느냐는 문제다. 또 깡패는 법보다 주먹이 가깝기 때문에 언제 본색이 드러날지 모른다는 것도 문제다. 그래서 깡패들이 합법적인 사업을 한다고 해도 늘 감시를 한다. 합법적인 사업을 해서 번 돈이 결국 밑에 데리고 있는 깡패들에 대한 잠재적 자금원이 되기 때문이다."

- 전국에 있는 조폭의 규모는 얼마나 되나.
"대검 조직범죄과에서 관리하고 있는 조폭은 전국에 2만명 정도이고, 조직은 군소 조직까지 합쳐 200개 정도로 보고 있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다. 그것보다 더 많은 수의 깡패가 있다고 봐야 한다. 깡패가 나중에 돈을 벌어 사업가로 변신을 해도 언제든 깡패로 돌변할 수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조폭으로 한번 등록이 되면 명단에서 빼지 않는다. 양아치를 깡패로 넣느냐 안 넣느냐 하는 문제도 있다."

"야쿠자는 '더불어 살아가는 필요악', 한국 조폭은 업종이 없다"

- 한국 조폭과 외국 조폭의 차이점이 있다면.
"일본에서 야쿠자는 '더불어 살아가는 필요악'으로 생각하고 있다. 야쿠자가 하는 종목이 따로 있다. 구슬치기, 빠찡꼬, 불법 카지노빠, 사설 경마, 대부업 등이다. 야쿠자가 먹고 살 수 있는 종목은 인정해주되, 야쿠자도 그 종목 외에는 안 하고 일반 국민과는 이권이나 싸움, 충돌을 절대 일으키지 않는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나면 검찰도 아주 엄하게 처벌한다. 일본에서는 그것이 묵계로 돼 있다.

그래서 일본 경시청에서는 야쿠자 조직원에 대해 100% 파악하고 있다. 더불어 살아가는 필요악이기 때문에 관리가 되는 것이다. 정해진 종목만 하면 검찰이나 경찰에서 손을 안 대니까 조직이 노출돼 있다.

우리는 그렇지 않다. 깡패들이 하는 고유 업종도 없고, 국민들은 깡패들을 더불어 살아가야 할 조직으로 생각하지도 않고, 깡패들은 일반 국민과도 패싸움을 한다. 그래서 일본 야쿠자와 달리 우리는 깡패가 노출이 안 돼 있다. 노출이 되면 될 수록 불리하기 때문이다."

- 얼마 전 조폭과 일부 연예인이 결탁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조폭과 연예인은 어떤 식으로 공생관계를 맺고 있는가.
"조폭과 연예인 관련 기사는 과장돼 있다. 1970~90년대에는 조폭과 연예인 관계가 밀접했다. 매스미디어가 발달이 안 돼 연예인의 가장 큰 수입이 밤무대 출연이었는데 조폭이 관련 이권을 쥐고 흔들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그런 공생관계 때문에 연예인 매니저들 중 주먹 출신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조폭과 연예인의 관계가 별로 없다. 연예기획자 중 조폭 출신이 있지만 조폭이어서가 아니라 그 일을 잘 하다보니까 남아있는 것이다. 지금 조폭이 연예기획사 하면 망할 것이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 학원폭력도 심각한 문제다. '일진회'처럼 학교 내에도 작은 조폭이 있다. 실제 이들이 성장해서 조폭으로 가게 되나.
"조폭으로 간다. 현재로서는 막을 방법이 없는 것 아닌가. 중학교, 고등학교 때 주먹쓰던 애들은 갈 데가 없다. 이글스파 사건 때 보니까, 신림동·봉천동 주변에서 주먹 좀 쓰는 애들이 갈 데 없으니까 자연스럽게 이글스파로 들어가더라.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끊임없는 계도활동을 한다고 하지만, 실제 다 큰 놈들이 부모 말도 안 듣는데, 선생이나 경찰이 계도한다고 듣겠나?"

- 곧 지방선거다. 과거에는 정치깡패라는 말이 있었는데, 요즘에도 선거에 조폭이 개입하는 사례가 있는가.
"현재 강남에서 잘 나가는 일부 깡패를 빼고 일반 조폭들은 정말 가난하다. 조폭은 외제차를 몰고 다닌다? 다 거짓말이다. 대구에서 본 30대 중반쯤 되는 깡패가 BMW를 몰고 다니더라. 그런데 집은 보증금 500만원, 월세 50만원짜리 원룸이다. 서울 깡패들도 마찬가지다. 돈은 없는데, 씀씀이는 크다.

이번 선거에서도 아마 깡패들이 동원될 것이다. 그러나 조직적으로 동원되는 것이 아니라 일당을 받는 용역수준으로 동원된다는 말이다. 유세장 가서 피켓 들고 '으샤으샤' 하는 것이다."

- 최근 한국영화에 불어닥친 조폭 열풍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들이 (조폭 세계를) 안 겪어봐서 그럴 것이다. 별개의 세계이기 때문에 거짓말을 해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 예를 들면 정말 의리없는 조직이고 돈없는 조직인데, 영화에서는 정말 의리도 있고 돈도 있고 로맨스도 있는 것처럼 묘사한다. 영화에서 깡패가 저렇다니까 깡패의 세계를 모르는 국민들은 '진짜 그런가 보다' 하는데, 깡패의 세계를 알면…. 깡패는 돈도 의리도 로맨스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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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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