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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수함 강국론을 펼치는 <한국형 잠수함 KSX>의 저자 정의승 이사장.
ⓒ 조성일
국가경제와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식량, 에너지, 수출입 물자 같은 주요 전략물자의 수송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답은 "99%가 해상교통로"이다. 그렇다면 이 물음을 거꾸로 해보자. 주요물자 수송의 99%를 차지하는 해상교통로를 '봉쇄'하면 국가경제와 국민의 삶은 어떻게 될까? 굳이 답하지 않아도 되리라. 그렇듯 해상교통로는 국가의 젖줄이고 혈관이고 생명선이다. 이건 우리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한반도를 에워싸고 있는 일본이나 중국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잠수함 안보론을 넘어 '잠수함 강국론'을 펼치는 <한국형 잠수함 KSX>(고려원북스 펴냄)의 저자인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정의승(67) 이사장은 안보 문제를 남북간의 군사대결로만 생각하는 우리들에게 주변국까지 고려 대상에 넣으라는, '의식의 확장'을 주문한다.

어렸을 때 학교에서 배운 깜냥으로 '잠망경'을 '잠수함'으로 착각하는 수준의 지식을 소유한 기자는 지난 18일 정의승 이사장과 가진 인터뷰를 통해 잠수함이 배터리로 움직인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물자 99% 수송 해상교통로가 봉쇄된다면?

▲ 바다를 항해하고 있는 잠수함.
ⓒ 정의승
미군이 지난 8일 있었던 북한의 미사일 발사의 준비부터 목표지점 타격에 이르는 전 과정을 손금 들여다보듯 포착한 데서 알 수 있듯 오늘날 강대국의 정보망으로부터 자유로운 전장은 거의 없다. 특히 한반도 주변의 상황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그나마 아직은 자유로운 전장으로 남아 있는 곳이 바로 수중이다. 정의승 이사장의 잠수함 강국론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경제라고들 하는데,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더 본질적인 것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안보입니다."

예비역 해군중령다운 발상이라고 생각하던 기자는 이어지는 그의 설명을 듣고서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 경제의 근간이 에너지라고 전제한 정 이사장은 우리에게 에너지, 즉 석유가 없으면 어떻게 될 것 같으냐고 되레 기자에게 물었다. 그의 질문은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석유가 만약 들어오지 못한다면 그리 오래지 않아 우리 경제는 멈춰 설 것이고, 그 다음의 진행 과정은 누구나 짐작하는 대로일 것이라는 의미였다.

"우리 경제의 근간인 석유를 수송하는 해상교통로(SLOC, Sea Lane Of Communication)가 막히면 곧바로 국가의 안위에 문제가 생깁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식량도 그렇고 또 수출입 문제 역시 같은 차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우리 주변국인 일본이나 중국 역시 마찬가지 사정입니다."

기억하라, 연합군 괴롭힌 독일 U-보트

"SLOC는 언제나 평화로운 걸로 생각하거나 누가 막아주겠거니 하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만약 우리의 SLOC 상에서 유조선 한 척만 격침되어 보세요. 다른 유조선이 절대로 안 들어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스스로 우리의 해상교통로를 보호해 안전하게 확보해야 한다. 그런데, 초강대국의 정보망에서도 아직 자유로운 지대로 남아 있는 수중에서 어떻게 안전하게 해상교통로를 확보할 수 있을까.

▲ 군함과 합동 해상 훈련중인 잠수함.
ⓒ 정의승
"잠수함이면 가능합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해군 잠수함 U-보트의 활약상이 이를 잘 입증하고 있습니다. U-보트는 영국을 비롯한 연합국 해군과 상선단에 무차별 공격을 가해 통상 파괴를 통한 SLOC 봉쇄작전을 폈는데, 그 결과 영국이 중심이 된 연합군 해군력이 막강한데도 실질적 재해권을 상실하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피해를 입었잖아요."

수중에서 '암약'하는 잠수함은 은밀성을 생명으로 하는 게릴라적 무기체계이다. 앞에서 기자가 처음 알았다던, 잠수함은 배터리로 움직인다는 상식을 상기하며 '암약'이란 단어의 뜻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그런데 문제는 잠수함만 있으면 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은밀성만큼이나 전투생존성과 공격능력의 우수성이 요구된다.

잠수함의 은밀성과 우수성은 상대방에게는 큰 위협이 된다. 북한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다방에서도, 술집에서도, 아무데서나 나오는 '방위병'이라는, 오래 전 우스갯소리는 예측 불가능한 적에 대해서 체계적인 방어전략을 세울 수 없다는 교훈을 준다. 상당한 공격 능력을 가진 무기(잠수함)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를 만큼 은밀성을 확보하고 있다면 그것 자체로 엄청난 힘이다.

세계 최고 잠수함운용·조선기술, 이젠 설계력!

'잠수함 입국' 주장하는 잠수함 전도사
정의승 이사장은 누구?

▲ 정의승 이사장
ⓒ조성일
'잠수함 전도사'로 통하는 정의승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이사장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신문배달을 하며 고학을 해야 할 만큼 가난하게 살았다.

의예과를 지망했으나 2지망으로 생물학과에 들어가지만 공부를 열심히 하면 의예과로 전과할 수 있다는 희망이 절망적이라는 판단이 서자 미련 없이 서울대를 그만두고 학비가 들어가지 않는 해군사관학교에 들어간다.

해사를 졸업한 정 이사장은 영어를 잘한다는 이유로 미국 관련 일을 자주 보고, 유학도 하고, 월남전에 참전하면서 14년간 복무하다 해군 중령으로 예편했다. 독일 엔진 제작사인 MTU사에 스카우트 된 것이다.

군 복무를 통해 '국가는 해양, 군대는 잠수함이 살길'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 정 이사장은 잠수함과 관련한 사업을 하며 '잠수함 입국'에 대한 강한 신념을 펼치고 있다.

특히 그는 1997년 한국해양전략연구소를 세워 해양력과 해양사상 고취 등 연구 활동에 진력하면서 평생꿈인 잠수함 강국론을 펼치고 있다.
정의승 이사장은 국가간의 분쟁이 야기됐을 때 국지전이든 전면전이든 국방력을 총동원하고 모든 전력과 전술을 망라하는 정규전이 유용하지만 세계 굴지의 초강대국만 이웃하고 있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현실에서 볼 때 주변 강대국들과의 정규전은 사실상 불가항력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적은 비용으로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잠수함 강국론'은 설득력 있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정 이사장의 잠수함 강국론은, 해양통제권(Sea control, 제해권)과 흔히 해군에서 사용되는 두 가지 작전 개념 중의 하나인 해양거부권(Sea Denial)에 근거한다.

해양거부권은 상대방이 맘대로 공격하지 못하게 하는 공격 억지력을 말한다. 잠수함이 평상시에는 전쟁 억지 전력으로 평화 유지에 기여하고 유사시에는 국가와 국민을 위기로부터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RIMPAC(환태평양국가 해군합동훈련)에서 최고 실력을 보여준 바 있는 잠수함의 운용능력과 이미 세계 굴지의 입지를 확보하고 있는 조선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첨단급 잠수함의 성능을 좌우하는 설계 능력만 확보되면 잠수함 입국의 꿈은 실현될 것입니다."

그래서 정 이사장은 율곡이 10만 양병론을 주장하듯 300여명의 잠수함 설계요원을 양성하자고 주장한다. '싸우면 이길 수 있는 첨단 잠수함'을 창출할 수 있는 설계요원의 확보를 위해 현재 국가에서 진행하고 있는 한국형 잠수함 획득사업인 'KSX'(Korea Submarine eXperimental)를 활용, 선진 기술과 어깨를 나란히 해 잠수함을 함께 설계하는 공동설계와 설계실습 및 함 성능 보장과정을 몇 차례 반복 이수하면 가능하다는 게 정 이사장의 제안이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

"세계의 패권은 바다를 누가 지배하느냐에 달려 있었습니다. 역사를 보면 대륙 세력이 세계를 지배한 적은 없습니다. 대륙세력이랄 수 있는 몽골제국이 세계를 지배했다고는 하지만 고작 150여년에 불과했습니다. 로마시대는 지중해를, 중세시대에는 대서양을 지배하던 자가 세계적 강자로 군림했고 지금은 태평양을 지배하는 국가가 세계 패권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잠수함 전도사인 정의승 이사장은 해양입국론자이기도 하다. ▲바다를 아는 지식 ▲바다 경영 능력 ▲바다를 지키는 힘 등 이 세 가지를 망라해 '해양력'이라고 정의하는 정 이사장은 우리의 해양력이 막강하다고 했다. 조선 세계 1위, 물동량 세계 5위, 선복량 세계 8위, 수산채취력 세계 12위로 종합하면 세계 10위권이라는 것.

그러나 이런 막강한 해양력에도 불구하고 해군력이 약한 게 문제라며, 정 이사장은 적은 비용으로 막강 해군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잠수함의 역할이 절대적이라며 다시 '잠수함 강국론'으로 이야기를 돌려 수미쌍괄식으로 강조했다.

▲ 해양입국론을 설파한 육당 최남선의 글귀 앞에 선 정의승 이사장.
ⓒ 조성일
정 이사장은 우리는 전통적 '약소국'(弱小國)으로 이웃나라의 잦은 공세와 침략으로 시달려 왔지만 이제부터는 우수한 잠수함 능력을 양성해 단군 이래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대 침략국 대응능력을 구축하고, '강소국'(强小國)으로 도약하여 이웃나라들과 더불어 당당하게 평화와 번영을 지켜나가길 바란다는 말로 인터뷰를 끝내면서 해양입국론을 설파한 육당 최남선의 글 앞에서 사진 찍기를 자청했다.

"누가 한국을 구원할 자이냐? 한국을 바다의 나라로 일으키는 자가 그일 것이다. 어떻게 한국을 구원하겠느냐? 한국을 바다에 서는 나라로 고쳐 만들기 그것일 것이다."

한국형 잠수함 KSX - 한반도 미래방위의 지렛대

정의승 지음, 고려원북스(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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