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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그맨 김형곤이 11일 오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떴다. 향년 49세.
ⓒ 연합뉴스
김형곤 코미디의 화두는 정치가와 섹스다. 이 둘은 전혀 달라 보이지만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현실에서는 그들에 대해 가감 없이 말하기가 어렵다. 하나는 정치권력 혹은 정치적 통제 때문에, 하나는 사회적 금기 혹은 도덕적 원칙 때문에 꺼려지는 소재다.

이 때문에 오히려 대중문화에서 다루어져야 하는 소재다. 항상 금기와 억압을 뛰어넘는 것이 문화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영화 <왕의 남자>는 결국 통렬한 정치 풍자와 성(性)을 압축적으로 버무려낸 작품이라 성공했다.

다만, 김형곤이 성에 대해 다루어온 것에 대해서는 보는 사람에 따라 저질시비가 있어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정치풍자 개그의 1인자였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정치에 대한 가감 없는 풍자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시원한 공격이기 때문이다. 부정부패와 전횡을 일삼지만 권력자라는 이유 때문에 비판받지 못하는 현실을 날카롭게 꼬집는 개그야말로 웃음을 통해 통쾌함을 선사한다. 그러나 이러한 개그 프로그램은 한국에서 정착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 본격적인 정치 풍자 코미디로 평가되는 것은 87년 KBS <유머1번지>의 '회장님 우리회장님'이었다. 당시 27세의 김형곤은 비룡그룹의 회장으로 등장해 "잘돼야 될 텐데", "잘될 턱이 있나"라는 유행어를 대히트 시키면서 정치 풍자 코미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손바닥에 불이 나도록 비비거나 딸랑딸랑 소리를 내는 장면은 당시 전두환 정권과 권위주의 사회의 부패와 전횡을 드러내는 것이어서 대호응을 받았다. 또한 턱을 치는 장면은 당시 제2권력자였던 이순자씨에 대한 풍자였다. "밥 먹고 합시다"하면 "저거 처남만 아니면 잘라야 하는데"라는 유행어를 통해 족벌 기업체제를 비판하기도 했다. 이 코너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이후 '탱자가라사대'에서도 정·경 기득권층에 대한 비판을 왔다. 기득권층에 대한 비판은 한국 사회의 모순에 대한 풍자와 비판이기도 하다.

그 뒤 김형곤은 KBS <웃는 날 좋은 날>, <유머극장>,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정치 사회풍자를 선보이면서 많은 유행어를 남겼고, KBS <시사토크 코미디, 웃음 한마당>과 <김형곤쇼>에서 시사풍자 코미디의 1인자임을 굳혔다.

2000년 정치진출 실패 뒤에는 대학로 공연에 매진했다. 극단 '곤이랑'을 통해 연극 <등신과 머저리> 등을 만들었고, <여부가 있겠습니까>, <병사와 수녀>, <왕과 나>, <회장님 좋습니다>, <신 대왕은 죽기를 거부했다>, <용이 나리샤>에 출연했다.

1999년 코미디 인생 결산 공연 <여부가 있겠습니다?!> 와 2005년 25주년 기념공연 <엔돌핀 코드>는 스탠딩 코미디의 정립과 코미디의 지평을 넓힌 작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근래에 대학로의 한 극장을 인수해 <안녕하십니까 수녀님>을 뮤지컬 방식으로 준비하던 중이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KBS 2TV <폭소클럽> '김형곤의 세상읽기'에서도 정치 사회 풍자를 시도했다. <폭소클럽>을 통해 정치풍자를 강화한다는 계획이었으나 얼마 전 프로그램이 폐지된 상태.

김형곤은 한 매체 인터뷰에서 "한국 코미디의 미래는 스탠딩 코미디에 있으며, 일회적이고 의미 없는 개그는 지양하고 풍자가 담긴 시사코미디가 본질이 돼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모든 국민이 항상 웃을 수 있도록 하되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내용으로 웃게 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개그, 코미디 문화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한다.

그만큼 현재 개그와 코미디에서는 일회적이고 소모적인 개그가 일반화되어 있으며 사회 정치풍자 개그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웃음 속에 뼈가 들어있는 우스개는 많이도 사라졌다.

그가 떠난 것이 어쩌면 한국에서 개그 사회 풍자 코미디가 함께 떠난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특히 텔레비전에서는 연예인 사담이나 가볍고 지엽적인 말재주 펼치기 중심의 개그만이 보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타계를 통해 한국 개그, 코미디의 방향을 재정립하는 계기가 마련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형곤, 돌연사... 축구하던 중 통증 호소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김가희 기자 = 개그맨 김형곤(사진)이 11일 오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떴다. 향년 49세.

김형곤은 이날 오전 축구를 하던 중 갑자기 통증을 호소해 서울 광진구 자양동 혜민병원으로 옮겼으나 사망했다.

1980년 TBC 개그콘테스트 은상을 수상하며 방송계에 데뷔한 김형곤은 '공포의 삼겹살'로 불리며 심형래, 최양락, 임하룡 등과 함께 80~90년대 큰 인기를 누렸다.

KBS '웃는날 좋은날', '유머1번지', MBC '일요일 일요일밤에' 등을 무대로 시사 개그를 선보였던 그는 '잘 돼야 될텐데' 등의 유행어를 만들기도 했다.

극단 곤이랑을 만들어 연극 '등신과 머저리' 등을 공연했고, 모노드라마 '여부가 있겠습니까', '병사와 수녀', 뮤지컬 '왕과 나', 영화 '회장님 우리 회장님' 등에 출연했다.

1999년에는 자민련 명예총재특별보좌역으로 정치에 입문해 2000년 무소속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하기도 했다.

작년에는 자신의 웃음 철학을 담은 에세이집 <김형곤의 엔돌핀코드>를 출간하기도 했으며, 이달 30일에는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교민을 대상으로 코미디쇼를 펼치기로 예정돼 있었다.

87년 'KBS코미디대상'을 비롯해 백상예술대상 코미디언 연기상, 예총예술문화상 연예부문 공로상 등을 수상했다.

kah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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