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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 기자] 30년 결혼생활을 접고, 남편과 이혼한 전업주부 A씨는 무일푼으로 거리에 나앉고 말았다. 이혼 전 남편이 임의대로 아파트 등 재산을 처분해 도박으로 탕진해버렸던 것. A씨는 남편이 주로 돈을 벌었고, '남편의 재산은 내 재산'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부부공동명의'는 생각지도 않았다고 토로했다. 남편을 상대로 법원에 '재산분할청구' 소송을 냈지만 남편은 '오리발만 내밀 뿐', 속수무책이다. 결국 A씨는 남겨진 세 자녀의 양육까지 떠맡아 힘겨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혼인 이후 형성된 재산을 부부 공동의 노력으로 이룩한 것"으로 추정하는 '부부공동재산제'가 뜨거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해 한명숙(열린우리당), 이계경(한나라당) 의원이 '부부공동재산제'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데 이어 지난 7일엔 최순영(민주노동당) 의원이 한국여성의전화연합과 함께 현행 법정 재산제인 별산제를 '부부공동재산제'로 바꾸는 민법개정안을 발의했다.

부부별산제는 부부 각자의 재산을 임의로 처분·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가장 상식적이고 평등한 법으로 보이지만, 실제 여성이 자신 명의의 재산을 갖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 비추어보면 '무늬만 그럴 듯한 평등법'인 셈이다. 이 때문에 부부별산제는 부부 공동의 노력으로 형성한 재산이라 하더라도 법적으로 명의를 가지지 못한 부부 일방의 잠재적 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한 이혼 전문 상담 변호사는 "이혼을 원하는 여성들이 대부분 재산분할청구를 위해 상담해오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남편 명의로 되어 있어 평등한 재산 분할이 쉽지 않고, 육아·가사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아 여성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며 현행 별산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최 의원이 내놓은 개정안은 부부공동재산제를 법정재산제로 규정했으나, 혼인 전부터 가진 재산과 혼인 중 상속·증여 등 상대방 배우자의 협력 없이 취득한 재산은 부부 일방의 '고유재산'으로 규정하여 각자 사용·수익·처분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혼인 전후 언제든 부부약정을 통해 재산에 관한 계약을 할 수 있도록 부부약정 시기를 넓히고, 약정 방식도 별산제·수정별산제·완전공유제로 제시하여 부부가 자율적인 약정을 통해 관리할 수 있도록 했으며, 공유재산에 대한 재산분할을 혼인 중에도 할 수 있도록 했다. 상대 배우자의 재산 상황에 대한 정보조회권을 신설해 현재 별산제 하에서 명의자가 재산을 빼돌려 명의를 가지지 못한 상대 배우자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을 방지했다.

한편 한명숙, 이계경 의원의 '부부공동재산제' 개정안은 법정재산제 규정과 부부재산약정, 혼인 중 재산 분할 조항에서 최 의원안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선 한명숙, 이계경 의원안은 법정재산제를 '수정별산제'로 규정하여 재산분할시 혼인 이후의 재산에 대해 50%를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부부약정 시기 역시 '혼인 전'으로 국한시키고 있다.

현행에 규정하고 있지 않은 '혼인 중의 재산 분할'은 세 의원 모두 개정안에 신설했다. 한명숙 의원안은 혼인 이후 형성된 재산에 관해 균등분할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나, 최순영 의원안은 분할 비율을 50%로 못 박았다. 현행법에는 재산 형성 기여도에 있어 전업주부는 30%. 취업주부는 50%를 인정하고 있다.

또한 세 의원 모두 재산처분 제한에 관한 조항을 신설해 공유재산이든 특유재산이든 생계와 관련된 재산은 처분 제한을 두어 가족공동체가 해체되는 것을 방지했다. 부부 일방의 과실로 인한 채무는 과실 책임이 있는 배우자에게 분할될 공동재산에서 우선 변제하고, 나머지는 채무에 관한 민법조항에 따라 처리되도록 하는 현행법을 그대로 따랐다.

박인혜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상임대표는 이번 개정안을 통해 "여성에게 불평등하게 적용되고 있는 여성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재산권에 대한 의식의 전환과 문화적 평등을 이루기 위한 토대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면서 "여성의 재산권 확보는 가족 내 경제적 평등 실현과 더불어 우리 사회 전반에 성평등한 문화를 확산시켜나가는 기초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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