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것이 어디 영화뿐이겠냐마는 아무래도 영화의 흥행조건을 규정하기란 꽤 골치 아픈 일인 것 같다. 사실, 영화의 흥행을 '예측' 하는 것은 가능해도 '확신' 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만큼이나 소모적인 것이다. 지금 우리는 그 '현상'을 확실하게 목격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작년 12월 29일, 같은 날 개봉한 영화 <왕의 남자>와 <청연>의 사례는 골치 아픈 이 문제를 증명해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 만하다. 그런 점에서 두 영화의 비교는 단순히 '관객수'라는 물리적인 개념에서 접근해서는 곤란하다. 도대체 무엇이 그리고 왜 두 영화의 운명을 찢어 놓았을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관객. 그들의 반응에 따라 영화는 울고 웃는다. 들불처럼 번진 영화에 대한 입소문은 그 어떤 마케팅 전략보다 파급력이 크고 광범위하다. 아무리 수십 억의 홍보비용을 들였다 해도 관객이 아니면 아닌 것이다. 영화는 태생적으로 그런 운명을 타고났다.

손님은 왕이다?

좀 더 본질적으로 따져 보면, 영화의 속성은 일반 상품(혹은 서비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일반 상품이야 만져보고, 맛보고, 냄새 보고 난 후에 평가를 하고 구입할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면 된다. 하지만 영화는 다르다. 막상 뚜껑(개봉)을 열어보기 전 까지는 아무도 그 안의 내용을 들여다 볼 수 없다. 고작 예고편 정도로 관심을 끌 수 있지만, 엄청난 부작용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예고편은 쓸데없이 관객의 기대치만 높일 우려가 있다) 다소 모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청연>이 잘못한 건 하나도 없었다. 스토리 탄탄했고, 배우들의 열연도 충분히 감동적이었으며, 뭐니 뭐니 해도 스크린을 가득 채운 이국적인 풍경은 감탄을 절로 자아내기에 전혀 손색이 없었다. 이러한 완벽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친일논란이란 예상치 못한 '소문'이 복병이 됐다. 주인공에 대한 냉랭한 반응으로 관객이 영화에 등을 돌린 결과, <청연>은 치유 불가능한 상처를 입게 됐다. 굉장히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마찬가지다. <왕의 남자>는 '입소문'이란 같은 현상을 겪었지만 결과는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물론, 영화 자체에 대한 완성도나 작품성이 모자란 것은 아니란 점은 분명히 인정한다. 그런데도 어딘지 모르게 석연치 못한 이유는 기대 이상의 호평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청연>에 대한 실망감이 <왕의 남자>에 대한 만족감으로 이어진 것은 어쩌면 시기(타이밍)를 잘못 타고난 필연적인 비극이었는지도 모른다. 관객 동원 1000만선을 기웃거리고 있는 <왕의 남자>의 흥행독주는 지칠 줄 모르고 관객을 빨아들이고 있다. <청연>의 초라한 성적표가 더 비참하게 보일 뿐이다. '손님은 왕이다'라는 말이 확실하게 입증된 셈이다.

영화를 증명하는 집단 심리의 발로

주지하다시피, <청연>의 주인공 박경원은 여비행사였다. 물론 영화의 초점도 그녀의 파란만장했던 인생에 맞춰져 역사적 관점에서의 시대적 배경보다는 보편적 정서에서의 인간상(像)에 더 큰 비중을 뒀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것은 감독의 의도였던 모양이다. 영화를 받아들이는 최대 주체인 관객들은 영화를 엉뚱하게(?) 해석하며 전혀 다른 시각에서 접근한 것이다. 이 영화에 불을 지른 발화점이 된 그녀가 살았던 비극적인 시대.

구전(口傳)의 힘은 한 사회에 흐르는 트렌드의 방향을 유도하며 속도의 완급조절에서 유감없이 발휘된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아무래도 소문의 진상이 채 밝혀지기도 전에(밝혀진다고 해서 나쁠 건 없는데도 사람들은 거의 본능적으로 소문을 의식하게 된다) 이미 만신창이가 된 경우를 우리는 아쉽게도 <청연>에서 본 것이다.

집단 심리가 무서운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문자 그대로 '변수'라고 해야겠다. 일단 형성된 육중한 무게의 지배적인 심리는 개개인이 따져볼 겨를 조차 주지 않으며 내리 누른다. 집단 심리는 개인의 의식을 순식간에 앗아갔고, <청연>은 그 피해자였다.

그렇다고 해서 <청연>의 흥행 실패를 변호하는 건 아니다. 마찬가지로 <왕의 남자>의 흥행성을 옹호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흥행 성적을 결정하는 조건으로서 관객의 반응이 무시 못 할 위력을 가졌다는 사실에서 의아한 마음이 든다.

모르긴 몰라도 관객 1000만 명 시대의 한국 영화가 주력해야 할 부분이 너무 가까이 있어 소중함을 몰랐던 관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해, 관객 천만 명 시대의 문을 연 주체가 변심하면 다시 거꾸로 걸어 나갈 수도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 절실한 때다. 2006-01-23 11:21ⓒ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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