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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체취가 그리웠는지, 인기척이 들리자 두 다리로 종종걸음을 치며 재롱을 떠는 모습이 더 슬프고 측은하게 느껴진다.
ⓒ 이정구
"크르르 컹컹"
"깨-앵, 깨-앵"

충남 천안시 북면에 위치한 유기견 보호소 '북면농장'에 들어서자 개들이 아우성이다.

공격적으로 짖는 개가 있는 반면, 사람의 체취가 그리웠는지 연신 꼬리를 흔들고 재롱을 피우며 달려드는 녀석들도 있다. 어떤 개는 사육장 한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공포에 질린 애처로운 시선을 보낸다.

작년 한 해 천안에서만 191마리의 개가 주인을 잃거나 주인에게 버림받았다. 해를 거듭할수록 유기견 수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 2003년 32마리에 불과했던 유기견이 2004년 104마리, 2005년에는 191마리로 증가했다. 3년 사이에 6배나 증가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천안시에 신고돼 정식절차를 거쳐 처리된 숫자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들에게 발견되지 않고 거리를 떠돌거나 신고되지 않은 개들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최근 3년간 327마리의 유기견이 천안시에 신고됐다. 이 중 13마리만이 원 주인에게 돌려졌고 108마리는 새 주인을 만났다. 새 주인은 일반 가정도 있지만 대부분 천안연암대 동물보호계열 학생들의 실습용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180마리는 안락사 처리됐다.

▲ 유기견은 포획된 지 30일 안에 생사의 기로에 선다. (주인을 다시 찾거나, 제3자에게 분양되거나, 안락사 당한다)
ⓒ 이정구
유기견의 삶과 죽음은 단 30일 만에 결정된다. 유기견이 신고되면 유기견 보호소에서 현장에 출동해 포획한다. 포획된 유기견은 보호소에서 보호되고 그동안 천안시는 개의 품종, 연령, 성별, 건강상태, 포획 당시 위치와 사진 등을 10일 간 공고한다.

그 기간에 주인이 찾아오면 다행이지만 거의 그렇지 않다. 이에 제3자가 나타나 분양해 가면 그 유기견은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이 모든 절차는 포획 당시부터 30일 안에 이뤄진다. 그 안에 주인을 찾지 못하면 안락사 처리된다.

유기 형태도 가지가지, 이사철 특히 많아

유기 형태도 가지가지다. 가장 많이 버려지는 장소는 아파트 관리사무소, 노인정, 교회 등이다. 광덕, 풍세, 북면 등 인적 드문 산이나 계곡에 버리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유기견 중 잡종견으로 분류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족보와 혈통을 갖춘 애완견이 많다.

천안시 축산과 박성필씨는 "시추가 50%를 차지하고, 코카스파니엘이 20%, 말티스, 푸들, 미니핀, 요크셔테리어, 뽀메리안 등 애견가들 사이에서는 알만한 개들이 거리로 쫓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피부병이 있거나 늙고 병든 개들이 주로 버려졌는데 이제는 건강하고 혈통이 잘 알려진 유명한 개들도 유기되고 있다고 한다. 개의 크기도 가리지 않는다. 얼마 전부터 국내에 개체수가 급증하기 시작한 시베리안허스키가 고속도로, 주택가 등에서 떠돌다 발견되는 점도 눈에 띈다. 대학가와 역전 등에서도 애완견 유기가 늘고 있다.

▲ 발견당시 예쁜 옷까지 차려입고 있던 유기견, 주인을 기다리는 지 서성이는 모습이 처량하다.
ⓒ 이정구
이사철인 봄, 가을이면 훨씬 더 많은 개들이 거리에 버려진다고 한다. 버려진 개들을 살펴보면 말끔하게 목욕까지 시키고, 며칠 간 먹을 수 있는 사료를 개집에 넣어 누군가 보살펴 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놓고 가버리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개 이름과 혈통인증서와 함께 편지까지 써서 새 주인을 만나길 바라는 마음을 전달하기도 한다고.

최근에는 소방서에서 복서라는 개가 4마리나 발견됐다. 유기견 보호소 류재봉 대표는 "개의 관리상태로 보아 성형수술까지 해 가며 상당히 정성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며 "이런 경우 유기견이 아니라 주인이 잠시 잃어버려 찾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 최근 천안소방서에서 발견된 '복서' 4마리. 성형수술까지 받으며 최상의 관리상태를 보이고 있지만 무슨 영문인지 주인을 잃었다.
ⓒ 이정구

준비 안된 애견분양 불행의 씨앗...책임감 가져야

언제부턴가 TV 방송매체마다 동물관련 프로그램이 인기 몰이를 시작했다. 그때 눈에 띄던 장면은 국적조차 불분명한 각종 개들과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지나칠 정도로 미화시켜 여과 없이 방영된 점이다.

이후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수입 애완견들이 급속도로 분양되기 시작했다.

유기견 보호소를 운영하는 북면농장 류재봉(49) 대표는 "당시 방송매체의 유행을 등에 업고 무분별할 정도로 애완견 수입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너도나도 유행처럼 개를 길렀고, 개 값은 천정부지로 솟았다. 또한 당시 개들은 몇 차례 번식과정을 거쳐 추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지금 와서 그 후유증을 앓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 경기침체까지 장기화되며 하나 둘 기르던 개들이 애물단지로 전락해 길거리에 버려지고 있다"고 말했다.

▲ 유기견 보호소 북면농장 류재봉 대표가 건강상태가 양호한 유기견 한 마리를 보여주며 옛 주인의 무책임한 행위를 비난했다.
ⓒ 이정구
한국애견협회 천안시지부 임광천 회장은 "애완동물을 분양 받으려면 최소한 자신의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 책임감을 갖고 사랑으로 길러야 한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이 준비도 없이 즉흥적으로 애완동물을 분양 받았다가 처리를 못해 버리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동물병원에서 만난 애견인 이해주(42·신방동)씨는 "언제부턴가 우리 토종개는 찾아보기조차 힘들어졌다. 너도나도 외국산 애완견들을 순종이라며 안고 다니는 모습이 한편으로는 너무 안타깝다. 길거리에 버려진 국적불명의 개들끼리 또 다른 종을 번식시켜 나간다면 이 땅에 우리의 혈통을 가진 개를 언제까지 볼 수 있을는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천안시청 축산과 박성필씨는 "해마다 유기견이 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올해는 개띠해인 만큼 주인 잃고 거리를 떠도는 개들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낯선 환경에 적응이 안되는지, 보호장 한 구석에서 공포에 떨고 있는 개들.
ⓒ 이정구

유기견 일반에 무상분양

개 주인은 기본적으로 매년 1회 광견병 예방접종을 실시해야 한다. 외출시에는 반드시 목줄을 착용하고, 대형견일 때는 입마개도 필수다.

합리적인 이유 없이 동물을 유기하면 동물보호법에 따라 20만원 이하 벌금, 구류, 과태료를 내야 한다. 광견병 예방접종 증명서가 없을 경우도 1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개나 그 밖의 동물을 풀어놓거나 나돌아 다니게 한 사람도 경범죄처벌법에 의거 5만원의 범칙금을 물어야 한다.

한편 떠돌이나 유기견을 발견했을때 천안시청 축산과로 신고하면 유기견 보호소에서 포획해 간다. 일반인들도 유기견을 무상으로 분양받을 수 있다.

문의: 041-521-5508

덧붙이는 글 | 바른지역언론연대 <충남시사신문> 1월 10일자, <생활정보신문 교차로> 1월 11일자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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