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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도 마지막으로 보내는 일요일. 섬은 섬을 돌아 연연 칠 백리, 칠 백리 거제도 해안선의 길이를 표현한 '거제도 연가'의 노랫말로, 눈이 시릴 정도로 쪽빛 겨울바다가 아름다운 거제도는 섬 어디를 가나 푸른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고 가슴을 탁 터이게 하는 마술을 가진 바다다.

▲ 호수 같은 쪽빛 겨울바다.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르다. 해금강이 보이고 그 너머로 갈매기들의 천국인 바위섬 홍도가 보인다.
ⓒ 정도길
옥포 시가지에서 덕포해수욕장으로 넘어가는 고개 마루, 승판재에서 내려다보는 옥포만. 1592년 5월 7일 12시, 임진왜란 초기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왜선 42척을 격침하고, 4천여 명의 왜군을 섬멸시킨, 최초의 해전을 승리로 이끈 역사의 현장이다.

눈을 지그시 감고 413년 전으로 돌아가면 임란 당시 치열했던 전투장면이 머릿속에 영상으로 떠오른다. 잠시 후, 눈을 뜨고 보는 지금 이 시간, 푸른 바다에는 격침되는 왜선과 도망치는 왜군의 모습이 그대로 재현되는 듯 하고, 승리의 기쁨을 노래하는 조선 수군의 함성이 바람소리에 실려 귓가를 맴돌고 있다.

▲ 옥포만(玉浦灣). 눈을 감으면 413년 전 임진왜란 당시의 치열했던 전투장면이 영상으로 떠오르는 해전의 첫 승첩지인 옥포대첩 현장의 바다. 당시, 거북선도 이 여객선처럼 속도를 내며 왜선을 물리쳤을까?
ⓒ 정도길
역사의 혼이 서려 있는 이 곳, 3만 3천 평의 부지에 옥포대첩기념공원을 조성하여 첫 승전한 옥포해전을 기념하고, 충무공 정신을 후세에 길이 계승하기 위해, 매년 같은 시기에(양력으로 6월 16일 전후) 축제를 열어 선조들의 혼을 기리고 있다.

또 이곳에는 세계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대우조선이 있고, 이 조선소에서 건조한 대한민국 해군 1번 구축함 '충무공 이순신함'은 우리나라 국방력을 대외에 널리 알릴 수 있는 자랑거리기도 하다.

▲ 옥포만(玉浦灣)2. 임진왜란 당시의 그 바다가 지금도 그대로 있다. 달라진 게 있다면, 해전의 첫 승첩을 기념하는 탑이 산등성 사이로 선조의 얼을 하늘에 알리고 있다.
ⓒ 정도길
굽이굽이 휘어져 도는 도로를 따라 거제도 북쪽에 위치한 장목면 저도라는 섬 가까이 가면, 맑은 바닷물에 크고 작은 자갈이 해수욕을 하며 흰 거품을 내뿜고 있다. 아이의 몸을 깨끗이 닦아 주는 마음으로 작은 몽돌을 하나 주워 바닷물에 씻어 바다 한 가운데로 힘껏 던졌다. 태풍이 불면 파도에 밀려 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리라.

▲ 크고 작은 자갈들이 추운 겨울바다에서 해수욕을 하며 흰 거품을 내 뿜고 있다
ⓒ 정도길
올망졸망한 섬. 바다위에 천연으로 그려진 점이다. 점과 점을 연결하면 선이 된다는 것을 초등학교 때 배웠다. 섬과 섬을 연결하면 선이라 하지 않고 다리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저도는 한 때 대통령 별장이 있던 곳으로 일반인들의 출입이 제한되었고, 지금도 군사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어 출입이 금지되고 있는 섬이다.

이 섬을 관통하여 부산으로 이어지는 '거가대교' 건설이 한창이다. 2010년 이 다리가 완공되면 국내 최장의 다리로서 부산에서 거제까지 30분이면 충분히 오갈 수 있고, 국내외의 수많은 관광객이 거제도를 찾을 수 있다. 오늘 이 시간에도 차량을 가득 실은 카페리는 부산으로 향하고 있다.

▲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는 저도의 모습. 섬 오른쪽으로 거가대교 건설공사가 한창이다. 수억만 년을 지켜온 순결이 이제는 알몸을 드러낸 채 그 부끄러움을 감수해야만 할 위기에 처해 있다.
ⓒ 정도길
다시 차를 돌려 거제도 남쪽 끝으로 향한다. 북쪽 끝인 저도에서 남쪽 끝인 대소병대도까지 승용차로 한 시간이 넘게 걸린다. 장목~외포~장승포~구조라~저구~홍포마을로 이어지는 해안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도로변 동백나무 잎에서 역광으로 비춰지는 은빛 광선에 눈이 부시고, 푸른 바다 위로 떨어지는 햇살의 은빛바다가 조화를 이룬다. 모두 은빛이다. 쪽빛 바다에 출렁이는 은빛 바다물결.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서도 시인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시인이 따로 있는가? 내 마음속의 표현이 시가 아닐까?

▲ 산이 산에 있지 않고 바다로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외롭지 않는 섬, 외도(外島)
ⓒ 정도길
바다는 살아 있는 생명이다. 그 생명은 사람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 주는 자원이기도 하지만, 재앙을 입게 하는 무서운 존재기도 하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모든 것들은 사람과 관련이 있다. 사람과 바다. 서로 공존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 잉크물을 뿌려 놓은 듯 시퍼런 바다. 바다와 인간이 공존하는 모습이다. 오른쪽 끄트머리에 해금강 사자바위가 보인다.
ⓒ 정도길
어느 책에서 읽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바다에 관한 의미 있는 글귀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지상의 노폐물의 저수지인 바다가 썩지 않는 이유는 0.035%의 염분이 있기 때문이다.

사회가 부패하더라도 망하지 않고 발전돼 나가는 것은 소수일지라도 희망의 등불이 있기에 그렇다고 한다.(참고로 바닷물속의 염분은 백분율이 아닌 천분율, 즉 퍼밀을 씁니다. 1000분의 35인 35퍼밀입니다.) 문득 바다를 보며 이 글귀가 머리를 스친다. 난 희망의 등불이 될 수 있을까?

▲ 무제(無題),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바다와 인간의 관계.
ⓒ 정도길
겨울바다에서 삶의 희망을 찾고 싶다. 바다가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쓸데없는 고민을 했다. 하루 동안 바다를 보며 편안하게 드라이브나 할까 집을 나섰지만, 결국에는 바다 때문에 마음의 짐을 안고 집으로 돌아 왔다. 그래도 행복한 고민이다. 사람은 무수한 과제를 만들고, 해결하고, 또 그것을 반복하며 사는 것 같다. 고민도 사랑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닐까?

▲ 참으로 고요한 바다, 경이로움과 신비로움을 함께 느낀다. 드넓은 바다에 홀로 떠 있는 저 배 안에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여차를 가는 길목에서 바라본 바다다.
ⓒ 정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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