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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 칼라'라는 성을 구경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넓지않은 성 내부의 골목을 구석구석 걷는 방법도 있을테고, 이름있는 유적들을 위주로 구경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난 우선 이곳에 있는 두 개의 첨탑(미나레트)에 올라가서 성의 전경을 바라보는 것으로 이찬 칼라 구경을 시작하기로 했다.

히바에는 세 개의 유명한 미나레트가 있다. 칼타 미나레트와 이슬람 호자 미나레트, 그리고 주마 모스크 미나레트가 그것이다. 이중에서 히바의 전경을 보기 위해서 좋은 곳은 이슬람 호자 미나레트와 주마 모스크 미나레트다. 칼타 미나레트는 화려한 외양이 돋보이기는 하지만, 19세기 중반에 만들다가 중단한 것이라서 이곳에는 올라가봐야 시내의 전경을 보기는 힘들다.

▲ 만들다가 중단한 칼타 미나레트
ⓒ 김준희
우선 이슬람 호자 미나레트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이 미나레트는 20세기 초에 만들어진 이슬람 호자 메드레세의 옆에 있는 약 50m 가량의 높은 원형 첨탑이다. 메드레세의 입장료는 1000숨(숨은 우즈벡의 공식화폐단위, 1숨은 한화 약 1원), 거기다가 미나레트에 오르기 위해서는 별도의 돈 1000숨을 더 지불해야 한다.

▲ 이슬람 호자 미나레트
ⓒ 김준희
멀리서 보았을 때와는 달리 가까이에서 본 호자 미나레트는 그 높이와 크기로 사람을 압도하고 있었다. 황토색을 바탕으로 높이마다 다른 색과 무늬를 사용해서 장식해 놓은 탑이다. 워낙 높은 탑이라서 꼭대기를 보자면 고개를 위로 쳐들고 바라보아야 한다. 높이는 둘째치고 그 다양한 문양 때문에 부하라에서 본 칼랸 미나레트보다 더 근사해 보이는 탑이다. 난 미나레트를 지키고 있는 아주머니에게 1000숨을 건네주고 작은 입구를 통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미나레트의 내부로 들어서자 어두컴컴한 안에는 묵직한 계단들이 위로 향해 있었다. 원형의 좁고 높은 탑의 내부를 계단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폭이 좁고 한층의 높이가 높은 계단 백여개를 꽈배기 형태로 꼬아놓은 꼴이다. 이 내부에는 별도의 인공적인 조명이 없다. 탑의 중간마다 하나씩 만들어놓은 작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에 의존해서 올라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쉬운 노릇은 아니다. 약 100개에 달하는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 것은 육체적으로 힘든 것이 아니라, 좁고 어두운 곳에 들어왔을 때의 알 수 없는 답답함 때문에 힘든 것이다. 그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서라도 난 걸음을 빨리 옮겼다. 듬성듬성 나타나는 작은 창을 통해서 들어오는 햇빛에 의존해서, 그리고 그 빛이 사라지면 어둠속에서 눈이 익숙해지길 기다리면서 걸음을 옮겨갔다.

▲ 미나레트 내부의 계단. 이런 계단 100 여개를 밟으면 정상에 오를수 있다.
ⓒ 김준희
혹시 실수로 걸음을 잘못 디뎌서 뒤로 넘어져 구르기라도 한다면 모든 것이 박살날 판이다. 처음에 오르기 시작할 때는 계단의 수를 세어보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어느덧 그것도 80개를 넘어서면서 가물가물하다. 한참을 올라가니 위에서 빛이 들어오고 있다. 정상에 온 것이다.

이곳에서는 히바의 전경이 보였다. 멀리 사막이 보이고 그너머로는 지평선이 보인다. 이곳에서 보니까 히바라는 도시의 지형을 알 것 같다. 사막이 히바의 외곽을 두르고 있고 그 안쪽으로 목초지 같은 풀밭이 보이고 또 그 안쪽으로 히바시내와 이찬칼라가 자리를 잡고 있는 형태다. 탁트인 경치와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때문에 여기까지 오느라고 힘들었던 것을 모두 잊을 것 같다.

▲ 호자 미나레트 정상에서 본 히바의 전경. 우측에 보이는 탑이 주마 모스크 미나레트.
ⓒ 김준희
정상의 공간은 넓지 않았다. 둥근 원형 공간의 한쪽은 내가 올라온 계단으로 통한다. 나머지 공간에서는 3명이 둘러앉아서 고스톱을 치면 적당할 것 같은 넓이다. 이 둥근 공간을 6개의 창이 둘러싸고 있다. 그 창은 모두 창살로 막혀있고 창틀에는 온갖 쓰레기들이 버려져 있다. 담배꽁초와 술병과 아이스바 막대기와 사과씨까지 보였다.

그리고 하얀 벽은 낙서 투성이다. 영어와 러시아어가 뒤섞인 많은 낙서들 틈에서 다행히 한글은 보이지 않았다. 전망이 좋고 시원한 곳에 올라오니 내려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돗자리를 깔고 누워서 한숨 자고 싶은 그런 곳이다.

알고보니 올라오는 것 보다 더 어려운 것이 내려가는 것이었다. 등산을 할 때도 오를때보다 하산할 때 다칠 위험이 크다고 하지 않던가. 이 좁은 탑도 마찬가지다. 올라오는 것은 그냥 빛에 의존해서 걸음만 옮기면 되었는데, 내려가는 것은 그게 아니다. 똑같은 빛일텐데도 상대적으로 내려갈 때가 더 어두워보였다.

올라가다가 발을 헛디디는 건 큰 문제가 아닌데, 내려가다가 발을 헛디디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았다. 어둠 속에서 조심스럽게 내려오던 나는 마지막에 와서 거의 두 손 두 발을 다 사용해서 눈썰매를 타는 자세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스타일을 구기기는 했지만 안전하게 내려왔으니 다행스러운 일 아닌가.

미나레트를 내려와서 잠시 숨을 돌리고 나서 이슬람 호자 메드레세로 들어갔다. 메드레세의 안뜰은 텅 비어있었고 가운데에 있는 우물은 쓰레기통 처럼 변해있었다. 과거에 많은 신학생 들이 공부를 했다는 이곳은 중앙에 우물이 있는 뜰이 있고 그 주위를 'ㅁ'자 모양의 건물이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다.

이 건물 내부는 지금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1층에 있는 20개가 넘는 방들을 모두 연결해서 전시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입구로 들어가면 방과 방을 연결한 좁은 통로를 통해서 'ㅁ'자 모양의 건물을 한바퀴 돌아 나오게 되어있는 형태다. 내부에는 과거 히바왕국의 전통복장과 물주전자, 카펫, 그릇과 코란으로 보이는 책이 있었다.

한쪽에는 히바의 기병대가 사용한 듯한 말안장과 갑옷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에어컨이 있었다. 첨탑의 꼭대기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긴 했지만 그것도 잠시뿐, 내려오고 나니까 바람 대신에 건조한 햇볕만이 있는 곳에서 이 에어컨은 반가운 존재였다. 난 메드레세를 나가기 전에 이 곳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시간을 보냈다.

▲ 주마 모스크 미나레트
ⓒ 김준희
메드레세를 나와서 이찬 칼라의 다른 미나레트인 주마 모스크 미나레트로 향했다. 중앙아시아에서 유명한 모스크인 주마 모스크가 만들어진 것은 10세기 경이지만 현재의 양식은 18세기에 완공된 것이라고 한다. 그 옆에 있는 미나레트의 높이는 약 42m로 이슬람 호자 미나레트보다는 낮지만 이곳에서도 히바의 전경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미나레트의 입장료 1000숨을 주고 다시 미나레트의 계단을 통해서 올라갔다.

주마 모스크 미나레트의 내부도 이슬람 호자 미나레트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었다. 어두컴컴하고 좁은 계단을 둘둘 꼬아서 탑의 위로 향하게 한 형태다. 계단의 수는 호자 미나레트의 수보다 적은 약 80개 정도. 역시 이곳도 정상에 올라오니까 히바의 탁 트인 전경이 보인다.

탑의 정상도 호자 미나레트의 그것과 비슷하다. 넓지 않은 공간에 하얀 내벽이 있고 그곳은 낙서 투성이다. 호자 미나레트의 정상은 6개의 창이 둘러싸고 있었는데 이곳은 4개의 창이 있다는 점이 차이랄까. 그리고 그 창틀에는 많은 쓰레기들이 버려져 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이곳에서도 탁 트인 히바의 전경을 볼수있다. 역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고 멀리 사막이 보인다. 그 안쪽으로 황토색으로 만들어진 이찬 칼라의 성벽과 화려한 초록색의 칼타 미나레트가 보인다. 이 두 개의 미나레트 정상에 오른 것만으로도 히바 구경을 다 한 것만 같은 기분이다.

▲ 주마 모스크 미나레트 정상에서 본 히바. 아래 보이는 길이 이찬칼라의 중심가.
ⓒ 김준희
주마 모스크 미나레트를 내려와서 삼사와 샐러드로 점심을 먹고 중심가를 걸었다. 중심가라고는 하지만 이 거리는 자동차가 다니는 길이 아니다. 이찬 칼라의 안쪽에서는 자동차를 보지 못했다. 이 길은 오직 행인을 위한 길이다. 이 길의 한쪽은 서문으로 향해있고, 다른 한쪽으로 걷다보면 동문을 지나서 바자르(시장)로 가게 된다.

이 중심가에는 관광객들을 상대로하는 기념품 가게와 노천카페, 음료수와 생수를 파는 곳이 많았다. 난 그곳에서 어슬렁거리며 기념품을 구경했다. 열쇠고리와 배지와 전통 문양으로 장식한 손수건과 인형과 모형 첨탑을 비롯해서 많은 기념품들이 있었다. 한참을 구경하고 있는데 저쪽에서 방금 결혼한 듯한 신랑신부 행렬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행진을 하고 있는 신랑신부의 모습은 우리나라에서 보던 모습과 비슷했다. 신부는 하얀 드레스를 입었고 신랑은 짙은 색의 정장을 하고 있다. 그 주위에는 많은 현지인들이 함께 신랑신부와 걷고 있고,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도 계속 따라오면서 촬영을 하고 있었다.

신랑신부 일행이 한 곳에서 멈추었다. 그곳은 관광객을 상대로 전통 음반을 판매하는 레코드 점 앞이다. 일행 중 한 명이 그 음반점에 뭐라고 얘기를 하고 나니까 그곳에서 갑자기 신나는 음악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일행들은 그 음악에 맞추어서 춤을 추기 시작한다. 조용하고 한적하던 길이 갑자기 춤판으로 변한 듯이 흥겨운 분위기다.

▲ 춤을 추는 신랑신부 행렬. 뒤쪽으로 두 개의 미나레트가 보인다.
ⓒ 김준희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둥그렇게 모여서 춤을 추고 신랑신부는 선 채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단체로 온 듯한 서양인 관광객들도 주위에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며 사진을 찍는다. 부하라에서 보았던 독립기념축제가 생각났다. 그때는 밤이었고 지금은 낮이다. 벌건 대낮에 많은 외지인들이 보는 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여서 춤을 추고 있는 주민들. 우즈벡 민족이 춤과 노래를 즐기는 민족이라는 것이 다시 떠올랐다.

그렇게 춤을 추다가 음악이 멈추자 일행은 서문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난 노점에서 파는 300숨 짜리 환타를 한 병 사서 마시며 그 뒷모습을 보았다. 환타는 차가웠지만, 더운 날씨에 몇 모금 마시다보면 바닥이 보일 만큼 적은 양이다.

주위에는 서양인 관광객들이 보였다.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반바지를 입고 카메라를 메고 있는 관광객들은 두세 명씩 짝을 지어서 가이드와 함께 다니고 있었다. 난 호텔로 향했다. 아침에 샤워를 했지만 몸에서 다시 땀이 흐르고 있었다. 이찬 칼라의 다른 곳을 구경하러 가기전에 잠시 햇볕을 피하고 싶었고, 씻고 싶었다.

 

덧붙이는 글 | 2005년 7월 부터 10월까지 4개월간 몽골-러시아(바이칼)-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키르키즈스탄을 배낭여행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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