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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로 들어가는 도동 항구는 너무나 아름답다. 갈매기들이 섬 일주 관광선을 탄 사람들을 쫓아 통구미 돌아 코끼리바위를 지날 때까지 줄곧 뒤따르는 정경도 정겹고, 그 반대편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절벽 해안 산책로를 아슬아슬하게 걸어가는 즐거움도 생애의 희귀한 체험이다.

행남등대까지 올라 수십 길 낭떠러지 위에서 붉은 꽃 만발한 동백나무에 의지한 채 저동항과 촛대바위를 바라보는 여정(旅情), 또한 울릉도 아니면 결코 맛볼 수 없는 소중한 행복이다. 그뿐인가. 꼬박 한나절을 바쳐 성인봉에 올라 두 손을 가슴에 얹고 저 멀리 동해바다를 응시하노라면 나도 모르게 지금껏보다는 좀 더 호쾌하게 살아가야겠다는 생의 의욕이 용솟음치기도 한다.

▲ 너무나 아름다운 도동 항구
ⓒ 정만진
울릉도에 갔으면, 새벽 일찍 일어나 독도박물관 출발 케이블카를 타고 도동 항구 오른쪽 317m 망향봉에 올라 독도 너머에서 해가 솟아오르는 일출의 장엄을 마음에 담는 호사도 누려야 한다. 울릉도 유일의 평지인 나리 분지를 밟으며 너와집과 투막집도 눈에 쏘옥 집어 넣고, 죽도에서 약초 먹여 키운 울릉약소 불고기를 입에 쏙쏙 집어넣는 즐거움도 만끽할 일이다.

물론 울릉도 유일의 해수탕임을 자랑하는 해수온천탕에서 (고기 반 물 반이 아니라) 모래 반 물 반의 사우나 즐기기, 카메라가 고장나면 "하필이면 여기서 고장이 나다니!" 싶지만 금세 'Photographer' 박진용 스튜디오에서 친절 속에서 수리가 되었을 때 그 쾌감 맛보기, 거리에 즐비한 울릉도 호박엿 씹기 등도 꼭 챙겨야 할 유쾌함이다.

일주도로를 달려 울릉도 서면 끝 태하리에 가면 성하신당(聖霞神堂)이 있다. 울릉도 개척 후 주민들이 해마다 삼짇날(重三日)이면 농사나 어업의 풍년을 비는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그러나 성하신당 앞의 안내판을 읽어보는 이는 자못 슬픔에 잠기고, 어쩌면 인간의 비인간성에 대한 모멸감을 느끼기도 한다.

불필요한 한자어를 우리말로 바꾸어가며 읽어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 태종 때 울릉도 공도(空島, 빈 섬) 정책이 확정된 후 안무사 김인우 일행이 울릉도 주민을 데려가기 위해 태하동에 도착한다. 김인우 일행은 일기가 좋아 내일 주민들을 데리고 출발하기로 하고 잠자리에 든다. 꿈에 해신이 나타난다.

"일행 중 동남동녀(童男童女, 어린 사내아이와 계집아이) 한 쌍을 남겨두고 떠나라."

안무사는 날이 밝자 출발하려 했지만 갑자기 풍파가 심하게 일어난다. 풍파는 점점 심해진다. 안무사는 문득 지난밤의 꿈 생각이 나서 동남동녀 한 쌍을 불러 "내가 머무르던 곳에 필묵(붓과 먹)을 두고 왔으니 그것을 가져 오너라"고 명령했다. 동남동녀가 숲속으로 사라지자 순식간에 풍파가 가라앉고 바람이 부드러워졌다. 안무사 일행이 황급히 출발하니 배는 쏜살같이 미끄러졌다. 필묵을 찾지 못한 동남동녀 한 쌍이 돌아왔을 때 배는 이미 까마득히 수평선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무사히 귀임한 안무사는 섬에 두고 온 동남동녀의 안부가 항시 잊혀지지 않아 번민하던 차에 여러 해 지나 다시 울릉도 순찰 명령을 받고 섬에 들어가 지난번에 머물렀던 곳으로 바로 달려갔는데, 거기에는 서로 껴안은 모습을 한 동남동녀의 백골만 남아 있었다. 안무사는 두 사람의 고혼을 달래기 위해 그 곳에 사당을 지어 제사를 지내고 돌아왔다. 그 이후 이 성하신당에서는 울릉도 사람들의 제사가 끊이지 않고 있다.


▲ 어린 남녀 두 아이의 슬픈 죽음이 깃든 성하 신당
ⓒ 정만진
불쌍한 두 아이의 최후 장면이 울릉도를 떠날 때까지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래도 울릉도에는 한국전쟁의 상처가 없다. 얼마나 다행인가. 좌우로 나뉘어 마구잡이로 사람을 학살한 흔적도 없고, 공중에서 지상에서 엄청난 폭탄과 총알을 퍼부어 생명과 집과 역사와 문화를 파괴한 잔혹도 없다. 세계대전의 포화를 맞지 아니한 하이델베르크가 독일 중에서도 유난히 아름답다는 사실을 어찌 잊으랴.

▲ 아름다운 울릉도 바닷가에서 철조망과 군대 초소를 발견하는 것은 지구상 유일의 분단국가를 사는 우리 민족만의 아픔이다.
ⓒ 정만진
다만 곳곳에 철조망을 치고 병사들이 바다를 지키고 있는 광경이 안타깝고 눈에 거슬린다. 분단이 없으면 이 철조망도 없다. 하루라도 빨리 해안 초소의 병사들이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올라갔으면 하는 바람이 샘솟는다.

비록 울릉도 바닷바람보다 만주 벌판에서 불어오는 북풍이 더 지독하고 매서울지라도, 그대 한겨레의 청년이여, 즐겁지 않겠는가. 그 삭풍은 그래도 통일된 조국 강산의 하늘을 꿰뚫고 지나가는 사시사철 봄바람 아닌가. 먼저 울릉도에서 철조망을 걷어내자. 그리고 우리 마음속의 철조망도 확 걷어치우자. (계속)

덧붙이는 글 | 대구경북시민신문(주간) 11월 둘째 주에 기고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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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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