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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를 펴낸 박도 기자를 만나보았다.
ⓒ 심은식
오랜 교직 생활을 정리한 후 강원도 안흥 산골에 머물며 독자들에게 따뜻하고 아름다운 소식을 전해주고 있는 박도 기자. 올해만 <길 위에서 길을 묻다>와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이렇게 두 권의 책을 펴낸 그는 작년에도 <일본기행>과 <지울 수 없는 이미지>를 선보이기도 했다. 마침 서울에 볼 일이 있어 상경한 그를 광화문 근처 찻집에서 만났다.

어릴 적 신문배달하며 키운 기자의 꿈이 현실로

박도 기자를 만나 곳은 과거 동아일보사 윤전기가 있던 곳 1층에 위치한 일민미술관의 카페 '이마'였다. 공교롭게도 그곳은 그가 고등학생 시절 신문배달을 하던 곳이기도 했다.

"이 곳에서 만나니 감회가 새로워요. 예전에 이곳에서, 그러니까 우리가 앉아 있는 이쪽 창으로 신문뭉치가 나가면 밖에서 그걸 받아 배달을 하곤 했어요. 그 때 커서 신문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결국 늦게나마 <오마이뉴스>를 통해 기자가 되었네요."

▲ 길가로 난 창문을 가리키며 당시에 신문뭉치가 나오던 입구였다고 회상하는 박도기자
ⓒ 심은식
기사를 쓰게 된 동기를 묻자 그는 지난 2002년 <월간 독립기념관> 7월호에 항일군 참모총장 허형식 장군에 대해 쓴 글이 계기가 되었다고 답했다. 그 글을 당시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인 정운현씨에게 보낸 것이 첫 기사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컴퓨터를 쓸 줄 몰라 원고를 일일이 손으로 써서 보냈고 그걸 받은 오마이뉴스 편집부가 다시 기사로 정리해서 내보냈다고 한다. 그랬던 그지만 지금은 베테랑 기자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사진도 척척, 글도 척척 잘 올린다. 그리고 그렇게 올렸던 기사로 벌써 책도 여러 권 냈다.

처음 기사를 쓰기 시작했을 때는 자신이 쓴 기사에 달린 댓글 때문에 상처를 받기도 했고 정확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 독자들에게 지적 받을 때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고정 독자가 생길 만큼 그의 글은 인기 있다. 심지어 말린 고추며 비누를 보내주는 열성팬까지 있다고 한다.

네티즌의 반응으로 인터넷 위력 실감해

▲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표지
ⓒ 지식산업사
박도 기자의 기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백범 김구 선생의 암살 배후를 밝히려는 권중희 선생의 인터뷰였다. 당시 그 기사가 지면에 배치 됐을 때 기사를 본 독자들은 미국에 가서 조사하는 비용에 보태라며 4000만원이 넘는 성금을 보냈었다. 하지만 박도 기자는 다른 기사가 더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물론 그 일도 무척 감동적이었어요. 인터넷의 위력이라는 걸 실감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그보다 올해 5월30일에 가정의 중요성에 대해 쓴 글이 있어요. 그걸 읽은 어떤 분이 이혼을 하려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는 편지를 보내왔더군요. 내가 쓴 글이 한 가정을 지켰다는 것. 그게 가장 기쁘고 고맙더군요."

책을 낸 소감에 대해 묻자 그는 기쁘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최근 출판계가 심한 불황상태라 걱정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일화들을 얘기해주었다. 처음 책이 나왔을 때 기뻐서 눈물이 났던 일, 그 책이 서점에서 금방 치워졌을 때의 서운함, 글을 통해 자신이 언급했던 내용을 지키기 위해 애썼던 일 등. 그는 책 한 권이 나오는 일은 아이 하나를 낳아 기르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고목처럼 살고 싶어

역사문제, 소설, 작가 인터뷰, 서평 등 문화 전반에 걸쳐 다양한 기사를 쓰는 그의 글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대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다. 언젠가 그는 자신의 기사를 통해 한 여행지에서 고목이 쓰러져서 시내를 가로질러 외나무다리가 되어 뭇 짐승들의 길이 되고 있는 것을 보고 자신도 나머지 삶을 그 고목처럼 살고 싶었다고 밝힌 적이 있다.

"인터넷을 흔히 메마르고 차갑다고 해요. 누군지도 모른 채 만나고 헤어지고 하니까요. 하지만 결국은 사람들이 만든 것이고 그 안에서 사람다움을 전하고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하고 싶은 것도 그런 것이고요."

▲ 박도 기자의 손 - 환갑의 나이지만 기사를 다루는 손만은 어느 젊음 못지 않다.
ⓒ 심은식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보았다.

"우선 올해 한 번 더 미국을 다녀올 예정입니다.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에서 2차로 6·25 당시의 사진들을 발굴해서 정리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허형식 장군에 대한 자료도 수집하고요."

올해 환갑을 맞는 박도 기자의 열정은 여전했다. 글을 통해 세대와 세대를, 도시와 시골을 이어주고 나아가 나라와 나라도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그에게 많은 누리꾼들의 성원과 건강이 함께 하길 기원한다.

박도 기자는 누구?


박도 기자는 서울에서 오랜 교단 생활을 마무리하고, 지금은 강원도 산골에서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민족문학작가회 회원으로 작품집에는 장편소설 <사람은 누군가를 그리며 산다>와 산문집 <샘물 같은 사람> <아버지의 목소리> <일본기행> <민족반역이 죄가 되지 않는 나라> 한국전쟁 사진첩 <지울 수 없는 이미지>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길 위에서 길을 묻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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