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러시아의 이르쿠츠크를 떠난 비행기는 약 4시간 만에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인 타슈켄트에 도착했다. 이르쿠츠크에서 3시30분에 비행기를 타고 4시간을 날아왔지만 시차 때문에 도착했을 때 현지 시간은 4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일주일에 한번씩 있는 이 항공편의 가격은 세금을 포함해서 210달러정도다.

비행기에서 바라본 우즈베키스탄은 황토색이었다. 사막을 연상시키는 황토색의 모래벌판과 그 위에 사방으로 뻗어있는 길들. 공중에서 본 그 모습은 마치 나스카의 문양 같았다.

모래벌판을 지나자 멀리 타슈켄트가 보였다. 인구 250만의 대도시답게 큰 아파트와 단층건물, 포장도로들이 적절하게 조화된 느낌이다. 타슈켄트의 외곽에는 큰 밭과 집들이 군데군데 모여 있어 인상적이다.

공항에 도착해서 입국심사를 거친 뒤 세관신고서를 제출하고 나서 공항건물 밖으로 나왔다. 중앙아시아의 진주라고 불리는 우즈베키스탄에 도착한 것이다. 이 세관신고서 때문에 한 달 후에 난 큰 곤욕을 치르게 되지만, 이 사실을 알지 못했던 나는 우즈베키스탄에 도착한 기쁨에 엎드려서 땅에 입이라도 맞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 타슈켄트의 거리
ⓒ 김준희
타슈켄트는 생각보다 상당히 더웠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과 강한 햇빛, 원래 더운 오아시스 도시인데다가, 한창 더울 때인 8월 중순에 도착했으니 그 더위가 오죽할까. 공항에 마중 나와 있던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서 환전을 하고 싼 숙소를 찾아서 들어갔다.

우즈베키스탄의 화폐단위는 숨(sum)이다. 숨의 달러환율이 우리나라의 그것과 비슷하다. 그러니까 1원=1숨이라고 봐도 무방한 것이다. 계산하기가 쉬워서 좋았다. 사실 계산이라고 할 것도 없지만.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지폐와 동전을 함께 사용하는데, 가장 큰 지폐단위가 1000숨이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나는 멋모르고 200달러를 환전했다. 환전소에서는 나에게 뭉칫돈을 주었다. 200달러는 약 20만숨. 1000숨짜리 지폐 150장과 500숨짜리 지폐 100장을 나에게 주었다. 졸지에 나는 지폐 250장을 가방에 넣고 다녀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숙소에서 샤워를 하고 정리를 하고 나자 어느새 밖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밤거리에 혼자 나가는 것이 꺼려졌지만, 우즈베키스탄에 도착한 첫 날을 그냥 보낼 수 없다는 생각에 카메라를 챙겨서 밖으로 나섰다.

▲ 타슈켄트 러시아 정교 성당
ⓒ 김준희

밤이 되자 더위는 한풀 꺾여 있었다. 밤거리에는 사람들도 그다지 많지 않았고, 왕복 8차선 도로에는 특이하게도 보행자 신호등과 횡단보도가 없었다. 사람들은 대충 양옆의 차선을 본 다음에 무단횡단을 하고 있었다.

우즈베키스탄에는 대우자동차 공장이 있다. 연간 10만대 가량을 생산한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이곳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흔한 차가 바로 대우차다. 다마스, 티코, 마티즈, 넥시아(씨에로)가 타슈켄트의 밤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보행신호가 없는 차도를 나도 현지인들처럼 그냥 건너보았다. 위험하기는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여기에도 좋은 점이 있고 나쁜 점이 있다. 나쁜 점은 신호가 없기 때문에 자칫하다가는 차에 받힐 가능성이 있다는 것. 그것도 우즈벡에 널려있는 대우차에 받힐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반면에 좋은 점은 신호가 없기 때문에 무단횡단을 해도 걸릴 염려가 없다는 것. 아니 무단횡단이라는 개념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타슈켄트 지진기념비
ⓒ 김준희

그 밤거리를 찍기 위해서 카메라를 들고 있는데 옆으로 한 할아버지가 다가오더니 한국말로 나에게 말을 했다.

"경찰이 사진 찍지 말라하오."
"예?"

할아버지는 고려인인지 어설픈 한국말을 하고 있었다.

"사진 찍으면 카메라 뺏긴다 하오."

무슨 얘긴지 몰라서 주위를 둘러보는데 내 옆으로 어느새 우즈벡 경찰이 와 있었다. 경찰은 거리 한쪽의 건물을 가리키면서 나에게 말했다.

"노 포토그래피."

뭔지는 모르지만 그 건물은 사진촬영이 금지된 곳인 것 같았다. 나는 알겠다고 하고 그 자리를 떴다. 우즈벡 경찰들에 관한 안 좋은 소문들을 많이 들어서 가급적 경찰들과는 마주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거리를 걷다가 한쪽에 있는 노천카페에 앉았다. 배가 고파졌기 때문에 맥주 한 병과 꼬치구이 샤슬릭, 리뾰쉬까 라고 부르는 빵을 주문했다. 500cc짜리 맥주는 한 병에 1000숨, 샤슬릭 한 꼬치는 400숨, 쟁반만한 빵이 하나에 100숨이다. 혼자 테이블에 앉아서 이것들을 먹고 있자니 우즈베키스탄에 왔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 타슈켄트 가스피탈리 바자르
ⓒ 김준희

타슈켄트의 거리에는 백인들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나와 비슷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인구 60만의 이르쿠츠크에 비하면 인구 250만의 타슈켄트 거리는 크고 잘 정돈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거리에는 왠지 무뚝뚝한 느낌의 러시아 사람들 대신 타슈켄트 상점의 아저씨들이 말 한마디 못하는 여행객을 웃는 얼굴로 맞아주고 있다.

맥주를 마시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등 뒤에서는 알 수없는 가사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앞에서는 나와 비슷하게 보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거리를 걷고 있었고, 사람들은 신호등 없는 8차선 도로를 잘도 건너다닌다. 우즈베키스탄의 첫 날 밤이다.

 

덧붙이는 글 | 2005년 7월 부터 10월까지 4개월 동안 몽골-러시아-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키르키즈스탄을 배낭여행했습니다. 그중에서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키르키즈스탄 여행기를 우선 작성해보았습니다.


태그: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