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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역 한달 보름만에 췌장암 진단을 받고 지금은 창원 집에 누워서 지내는 오주현씨.
ⓒ 오마이뉴스 윤성효

"지난해 7월 피검사 하나만 했더라도…."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 옆에는 27일 숨진 노충국씨와 비슷한 처지의 한 청년이 살고 있다. 해군 제주방어사령부 본부대에 근무하다 올해 3월 전역하고 한달 보름만에 병원을 찾았다가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은 오주현(22)씨.

그는 지난 8월에 4차 항암치료를 받은 뒤 가정형편으로 병원에 더 가지도 못하고 집에서 민간요법과 한방에 의지한 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오씨 어머니 차상득(47)씨는 "아들이 지난해 7월 복통을 호소했을 때 피검사 하나만 했더라도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라며 "건장한 아들이 군대 갔다가 죽을 병에 걸려 왔는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눈물을 흘렸다.

오씨는 지난 2003년 1월 창원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해군에 입대했다. 평소 병치레가 없던 그는 입대시 신체검사와 혈액검사에서도 아무 이상이 없었고, 올해 3월 29일 군 복무를 마치고 전역했다.

다만 지난해 7월 군 복무 중 복통을 호소한 적이 있는데 이게 췌장암과 관련 있던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아팠던 부위도 허리 왼쪽으로 췌장 쪽인 데다 군대 있으면서 서너 차례 심한 복통을 호소했기 때문. 그러나 복통을 호소할 때마다 담당 군의관은 장염으로 진단했다고 오씨는 전했다.

"지난해 7월 배가 너무 아파 의무대에 갔죠. 증세를 말하니 군의관은 특별한 검사는 하지 않고 그냥 자신의 소견으로 장염으로 추정하데요. 처방은 링거 한 병 맞고 퇴원하라는 것이었죠. 그 뒤에도 복통이 있었고, 속이 더부룩하다고 말했으나 허사였죠."

오씨는 그뒤 담당 원사한테 밖에 나가 내시경 검사라도 받아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그 원사는 '의무대에 도구 다 있고, 돈 아까운데 그럴 필요 있느냐'며 묵살했다는 것. 오씨 어머니도 "지난해 여름 아들이 전화해서 내시경 검사받고 싶다고 하길래 그렇게 하라고 했는데, 나중에 장염으로 진단받았다고 해서 예사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내시경 검사 받고 싶다고 했는데 묵살당했다"

▲ 오주현씨 어머니가 인터뷰 도중 눈물을 보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지난 3월말 전역한 오씨는 늦은 복학 준비를 하느라 제대 뒤 정밀검진을 받아보려고 했던 계획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학교에 다녀오면 피곤함을 느끼곤 했는데, 당시는 바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탓으로 여겼다.

그러다 지난 5월초 복통이 심해 마산삼성병원을 찾았던 오씨는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전역한 뒤 불과 한 달 보름만이었다. 그뒤 서울삼성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다시 받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아버지 오세문(51)씨는 "아들이 아프다고 했는데도 군대에서 묵살했다"면서 "지난해 7월 복통을 호소하고 내시경 검사라도 받고 싶다고 했을 때 들어주었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 아니냐"고 억울해 했다. 그는 "병원에서는 췌장암 전이가 심해 수술도 할 수 없다고 한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아버지는 사업을 하다 IMF 외환위기 때 부도를 맞았다. 이후 생활이 어려워진 아버지 오씨는 아들 병원 치료비도 제대로 마련할 수 없는 처지다. 그래서 지난 8월 이후부터는 병원의 항암치료도 거의 중단되다시피 했다.

오주현씨 동생도 올해 7월 해군에 지원 입대했다. 어머니 차씨는 "형이 이렇게 되고 보니 동생도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라며 "매일 전화해서 형 안부를 묻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휴가 나오면 종합검진을 받겠다고까지 한다"고 전했다.

오씨는 지난 9월 마산보훈지청에 국가유공자 등록신청을 냈지만 한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대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참다 못한 외사촌형 권수범(30)씨가 노충국씨 사연을 듣고 26일 국방부 등 인터넷에 오씨의 딱한 사정을 올렸다. 그랬더니 곧바로 반응이 오더라는 것.

권씨는 "국방부와 해군 민원실 등에서 연락이 왔는데, 국가보훈처 국가유공자 심의 기한을 앞당길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말만 들었다"면서 "지난 9월 신청 뒤 아무 말이 없다가 이번에 노충국씨 사건이 터지고 인터넷에 글을 올리니까 그제서야 국방부 등이 움직인 것 같아 더 서글프다"고 말했다.

오주현씨 어머니는 "이래 가지고 자식을 마음 놓고 군대에 보낼 수 있겠나, 우리 아들 잘못되면 나는 못 산다, 요즘은 사는 게 아니다, 아들 치료도 제대로 못할 형편이어서 마음이 더 아프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국방부, '노충국씨 사건' 터지니까 움직이더라"

▲ 오주현씨가 해군 제주방어사령부 본부대에 근무할 때 모습.
ⓒ 오주현
오씨가 근무했던 제주방어사령부 관계자들은 오씨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오씨 담당 원사는 "구체적인 답변을 할 수 없다"면서 "대개 아프면 의무대로 가서 군의관한테 약을 받아 먹고 쉬도록 하고, 큰 병원에 후송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제주방어사령부 의무대 관계자는 "오늘 해군본부에서 오씨 진료기록를 찾길래 보냈다"면서 "더 이상 말할 수 없다"고 답했다. 민원실 정훈장교도 "현재 공식 입장을 밝힐 수 없으며, 당시 근무했던 군의관은 지금 다른 부대로 옮겼고 당시 진료기록을 봐야만 구체적인 답변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인터넷을 통해 오주현씨의 췌장암 발병 사실이 알려지자 26일부터 해군과 국가보훈처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해군본부는 27일 제주방어사령부에 오씨의 진료기록을 보내줄 것을 요구했다.

해군 감사실 관계자는 "민원접수 사실을 확인했으며, 오는 11월 1일 예정되어 있는 국가유공자 심의를 조기에 할 수 있도록 요구해 놓았다"면서 "단정할 수는 없지만 노충국씨 사례도 있어 오씨도 국가유공자 인정이 가능한 방향으로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해군본부 제대군인과 관계자도 "최대한 가능한 방법으로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마산보훈지청 관계자는 "해군측으로부터 26일 답변서가 도착해 국가보훈처 국가유공자심의회로 보냈다"면서 "답변서 내용은 볼 수 없으며 인정 여부에 대해서도 아직 답변할 단계가 아니다"고 말했다.

▲ 오주현씨 부모들이 아들의 병원 진료기록을 들어보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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