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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렬사 입구
ⓒ 이승철

단풍이 짙어가는 지리산 자락을 뒤로 하고 남해를 향하였다. 충무공의 유적지를 돌아보기 위해서다. 단풍과는 대조적으로 짙푸른 남해바닷가를 유유자적 여유롭게 달리는 것은 자유로운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길은 오락가락 바닷가를 넘나들며 달리다가 남해대교로 이어졌다. 남해대교는 1973년에 개통된 우리나라 최초의 현수교다. 다리 밑의 바다가 바로 이순신 장군이 왜구들을 끌어들여 섬멸한 노량해전이 시작된 그 유명한 노량해협이 아닌가.

어디 그뿐이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치열한 세력다툼에서 밀린 유배객들이 유배지인 남해로 건너가기 위하여 나룻배를 타고 거센 물살에 위태롭게 목숨을 걸었던 해협이기도 하다.

다리를 건너 왼편에 있는 작은 포구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주차장 바로 위에 있는 나지막한 언덕 위에 충무공의 충렬사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 충렬사는 충무공이 노량해전에서 도망치는 왜구들을 소탕하다가 장렬하게 전사하여 삼개월간 묻혀 있던 장소라고 한다.

돌층계를 올라가니 충렬사다. 외삼문 내삼문을 지나니 곧 바로 향불이 피워져 있는 사당이다. 놀라운 것은 사당 뒤의 묘였다. 1598년 11월 19일 전사한 충무공의 유해를 3개월간 이곳에 매장하였다가 1599년 2월 11일 충무공의 외가 동네인 지금의 충남 아산 현충사로 이장하였지만 처음에 매장하였던 이곳 그 자리에 가묘를 만들어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는 것이다.

▲ 충렬사
ⓒ 이승철

▲ 전시되어 있는 거북선
ⓒ 이승철

충렬사를 둘러보고 내려오다가 왼편 언덕에 서 있는 두 개의 비를 발견하고 살펴보니 그 중의 하나는 역시 충무공의 묘비다. 왜 충무공의 묘비가 충렬사 경내에 세워져 있지 않고 따로 떨어진 곳에 외롭게 서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선착장에는 제법 그럴 듯한 거북선 모형이 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이 저런 함선을 이용하여 왜구들을 무찔렀을 것이라고 상상하니 새삼스러운 감동이 밀려온다. 거북선 뒤로 남해대교의 멋진 풍경이 바라다 보이는 노량해협은 잔잔한 물결 위에 서늘한 가을바람만 소슬하다.

포구 음식점에서 맛있는 갈치조림으로 점심을 먹고 다시 길을 나섰다. 언덕을 넘어서니 오른편으로 관음포 안내판이 나타났다. 길 가운데를 막고 공사를 벌이고 있는 중장비 차를 피하여 포구로 내려가니 아담한 선착장에 몇 척의 어선이 잔물결에 흔들리고 있을 뿐, 멀리 보이는 잔잔한 바다 위에는 무심한 갈매기 몇 마리가 하릴 없이 배회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쓰러져가는 나라를 구한 한 시대의 영웅이며 후세의 사람들에게, 나라와 백성들에게 어떻게 충성하며 어떻게 보살펴야 하는지 삶과 행동의 모범을 보여준 위대한 한 군인의 역사는 그렇게 바다 위에 고이 잠들어 있었다.

▲ 관음포와 바다풍경
ⓒ 이승철

▲ 첨망대
ⓒ 이승철

관음포를 떠나 조금 더 달리노라니 충무공이 전사한 장소를 바라볼 수 있는 첨망대 안내판이 나타난다. '첨망대'라니 참 이색적인 이름이다. 그것도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장소를 가장 잘 바라볼 수 있는 장소라니 어쩐지 유쾌한 마음은 아니다.

"아니, 첨망대라니, 그런 이름도 있었나? 충무공이 죽은 장소가 그렇게 중요하단 말인가? 그럼 바다 가운데 표시라도 해 놓을 일이지."
"뭐 그런 뜻은 아니겠지. 충무공의 전사 당시의 상황이라든가 죽음을 맞은 그의 말이나 행동이 사실 매우 감동적이었으니까, 장소보다는 그런 여러 가지를 기억하자는 의미겠지."
"듣고 보니까 그럴 것 같기도 하군."

첨망대는 바다 가운데로 불쑥 솟아 깊숙이 들어간 언덕 위에 세워져 있었다. 입구에는 '이락사'라는 사당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역시 이 충무공의 사당이었다. 첨망대로 가는 길은 풍광이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다.

길 양편으로는 소나무와 동백나무가 가지런하고 오른편으로는 관음포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경치 좋은 곳이었다. 그런데 제일 높은 지점에 도달하였는데도 정자가 보이지 않는다. 틀림없이 정자 같은 건축물이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먼저 와 있던 노인들 몇 사람이 보여 물어 보았지만 자신들도 첨망대인지 전망대인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그냥 내려가려고 하는 중이란다. 기왕 내친 김인데 그냥 내려올 수가 없어 앞쪽으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 조금 더 내려가니 툭 트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정자 하나가 버티고 서 있다. 바로 첨망대였다.

▲ 첨망대에서 바라본 노량바다
ⓒ 이승철

▲ 첨망대 앞에 세워져 있는 노량해전도
ⓒ 이승철

첨망대에서는 그 어느 곳보다 노량 앞바다와 관음포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날씨가 맑아 멀리 광양만 앞바다까지 탁 트인 전망이 아득히 먼 곳까지 바라다 보인다는 뜻으로 쓰였을, 첨망대(瞻望臺)라는 어려운 이름이 가진 의미가 어렴풋이나마 느낌으로 다가온다.

저 바다 어디에선가 충무공의 결연한 의지가 담긴 우렁찬 음성이 들릴 것도 같다.
"저 못된 왜구들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섬멸하라!"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말라! 발포하라!"
"와아! 와아!"
우리 수군들의 함성소리도 들릴 것 같은데.

"나의 죽음을 적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라."
마지막까지 한 명의 적이라도 더 섬멸하려는 장군의 충정이 담긴 말이다. 그 이순신장군이 끝까지 국가를 위하는 일념으로 싸우다가 전사한 바다가, 잔잔한 물결로 가을 햇빛을 받아 보석을 깔아놓은 것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 작은 포구의 방파제. 저 길의 끝에는...
ⓒ 이승철

▲ 창선도의 돌담과 논, 그리고 바다
ⓒ 이승철

당시 조선을 침략한 왜장 중의 한 사람인 와키자카는 전쟁 중에 기록한 글에서 충무공을 이렇게 회고하였다고 전한다.

내가 가장 두려운 사람은 이순신이며
가장 미운 사람도 이순신이고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이순신이며
가장 흠모하고 숭상하는 사람도 이순신이고
가장 죽이고 싶은 사람 역시 이순신이며
가장 차를 함께 마시고 싶은 사람도 바로 이순신이다.


적장이었기 때문에 이겨야할 대상이었고, 미운 사람이었지만 가장 존경스럽고 또 그래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는 말은 어쩌면 그의 솔직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국가의 안위보다 자신들의 권력유지와 세력 확장에만 급급했던 지배세력들과 혹시라도 왕권에 걸림돌이 될까봐 전전긍긍하며 이순신을 미워하였던 선조임금, 그러나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국가와 임금에게 충성한 이 충무공의 충절과 백성을 사랑하였던 마음과 행동은 우리 역사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태양 같은 존재로 길이 빛날 것이다.

첨망대를 떠나 남해섬을 횡단하여 창선도로 향했다. 길가에 있는 창선도의 작은 포구에서 잠시 쉬면서 어촌을 살펴보았다. 여기저기 버려진 그물들과 그 사이를 잽싸게 기어다는 작은 게들, 아직은 따사로운 가을 햇살을 받은 포구의 갯벌은 작은 생명체들의 또 다른 삶의 터전이었다.

▲ 창선도 어촌의 돌담 골목길
ⓒ 이승철

마을로 들어서니 폐허처럼 쓸쓸하게 돌담에 감싸인 채 깊은 정적에 싸여 있었다. 한 집에 들어가 보니 문짝이 덜렁거리는 빈집이다. 또 다른 집도 마찬가지다. 바다가 있고 논밭이 있는, 그래서 여건이 살만한 지역인 것 같은데 잡초가 처마까지 자란 빈집의 을씨년스러운 모습이 오늘 우리 농어촌의 현주소인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진다.

멀리 왜구들이 쳐들어 왔었던 바다가 마음처럼 서서히 무겁게 가라앉고 있었다. 어느새 날이 어둑어둑 땅거미가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은 삼천포대교를 건너 사천에서 쉬어야겠다.

덧붙이는 글 | <10월 여행 이벤트 응모>기사
인터넷 포털시이트 검색창에서 시인이승철 을 검색하시면 홈페이지 "시가있는오두막집'에서 다른 글과 시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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