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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이상 선생
ⓒ 윤인숙
지난 10월 11일에 장충동 경동교회 여해문화공간에선 의미 있는 연주회가 열렸다. 그것은 성악부분에선 윤이상 선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제자이며, 윤이상 선생이 1995년 베를린에서 숨을 거둘 때까지 가장 가까이에서 선생을 모셔온 윤인숙씨가 서거 10주년 추모음악회를 연 것이다.

그날 윤인숙씨는 객석의 맨 앞에 별도로 의자 하나를 마련해 놓았다. 윤이상 선생의 혼을 위해 특별석을 마련한 것이다. 우리의 눈으론 볼 수는 없었지만 분명 그 자리엔 내내 윤이상 선생의 혼이 자리를 잡고 있었을 것이란 느낌을 주었다. 그건 영상을 통해서나마 윤 선생을 볼 수가 있었고, 윤 선생의 음악을 윤인숙을 통해서 생생히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윤이상 선생은 누구인가? 그는 1959년 독일에서 열린 다름슈타트음악제 때 '7개의 악기를 위한 음악'을 발표, 유럽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1967년 동베를린공작단사건에 연루되어 서울로 강제소환, 2년간의 옥고를 치렀으나 온 세계 음악가들의 항의와 국교 단절까지 불사했던 독일의 강력한 요구에 풀려날 수 있었다.

그러나 선생은 이러한 고통에도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음악일생을 꿰뚫어 교향곡 제1번부터 제5번을 비롯해 칸타타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 교양시곡 '광주여 영원히', 오페라 '심청', 관현악곡 '무악', '서주와 추상' 등 150여곡을 우리 겨레에게 남겼다. 선생의 업적 속에서도 세계적으로 평가되고 있는 것은 선생에 의해서 동양음악이 서양에 알려졌다는 것이다.

▲ 윤이상 서거10주년 기념음반 표지
ⓒ 신나라
선생은 음악활동은 '서양현대음악 기법을 통한 동아시아적 이미지의 표현' 또는 '한국음악의 연주기법과 서양악기의 결합'이라는 평을 받았다. 또 선생은 깊은 겨레 사랑으로 '범민족통일음악회'의 산파 역할도 하였다. 하지만 선생은 자유로운 몸으로 남한 땅을 밟아보지 못한 채 1995년 베를린에서 눈을 감았다.

범은장학재단 장충식 이사장은 윤이상 선생을 이렇게 표현한다.

"나는 윤이상 선생을 생각하면 절로 외마디 절규 같은 탄식이 나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이 시대의 위대한 작곡가요, 세계가 격찬한 음악계의 거장인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바이기 때문에 필설로 달리 덧붙일 필요는 없다."

또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민경찬 교수도 윤이상 선생에 대해 말한다.

"선생님께서는 비록 통일된 조국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서거하셨지만 선생님께서 생전에 보여 주셨던 우리 민족에 대한 사랑과 화합의 정신이 계승, 발전된다면 그만큼 남북통일도 당겨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윤 선생은 더 이상의 군더더기를 붙일 필요가 없을 만큼 우리에게 위대한 민족음악가였고 통일을 앞당기는데 이바지한 분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런 윤이상 선생의 음악을 이제 새롭게 들어볼 기회가 왔다. 신나라(회장 김기순)에서 선생이 서거한지 10년이 되는 날(2005년 11월 3일)을 기념하기 위해 음반을 발매했기 때문이다.

▲ 도쿄교향악단 연주 장면
ⓒ 신나라
이 음반은 1989년 4월7일 있은 '윤이상 특집음악회'의 실황녹음을 중심으로 제작한 것이다. 지휘는 재일동포 김홍재, 연주는 도쿄교향악단이며 장소는 일본 산트리홀이다.

특히 이 음반에서 눈에 띄는 것은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하프와 관현악을 위한 '서주와 추상'이다. 이 작품은 독일 뮨스터교향악단 창립 60주년 기념행사를 위해 창작되었다. 그는 이 작품에서 핵 전쟁준비에 광분하고 있는 정치적 폭력배들과 전쟁 광신자들을 준열히 규탄하였으며, 세계적인 핵전쟁이 인류에게 가져다줄 파국적인 재난을 경고하는 것은 물론 인류의 양심 앞에 전쟁을 반대하고 세계평화를 수호할 것을 강하게 호소하였다.

오디오에서 나오는 '서주와 추상'은 신비스런 느낌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표제를 알고 있는 때문인지 소름 돋는 핵전쟁을 상상하게 된다. 큰북과 팀파니 소리가 어우러지면서 '경악'이란 것이 가슴 속을 꽉 메운다. 6자회담이 서서히 희망을 보여주는 이때 우리는 다시 한 번 이 음악을 들으며 추스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또 이 음반엔 대관현악을 위한 환상적 무곡 '무악'도 들어 있다. 1978년 작곡된 이 작품은 윤이상 음악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 보이는 작품들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작품은 '무악'이라는 표제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춤을 위한 음악으로 여기에서는 동양을 나타내는 오보에와 서양을 상징하는 관현악을 통하여 상반되는 동서음악의 모습을 환상적인 춤음악다운 형상으로 펼쳐 보이고 있다.

▲ 지휘자 김홍재
ⓒ 신나라
같이 녹음되어 있는 교향시곡 '광주여 영원히'도 우리에겐 참으로 의미가 있는 곡이다. 이 곡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민중항쟁 중 전두환 군대가 저지른 시민대량학살을 주제로 해서 작곡하였다. 이 비참한 사건이 또 다시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 생생한 음색으로 인류에게 경고를 주자는 것이 작곡자의 목적이라고 한다.

이 음반의 지휘자는 1954년 일본에서 출생한 재일동포 김홍재이다. 그는 하고, 도호학원대학에서 오자와 세이지, 모리 타다시 등에게 배운 뒤 1979년 도쿄 국제 지휘콩쿨에 참가했으나 일본인이 아니라는 까닭 때문에 1등상을 주지 않고 대신 2등상과 사이또 히데오상을 받아 민족적인 설움을 맛보았다. 이후 도쿄교향악단, 나고야필하모닉교향악단, 교토시교향악단, 히로시마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 활동하다가 1989년 윤이상 선생에게 배움을 받았다.

후에 일본에서 윤이상 작품 교향곡 1번, 2번, 3번등 20여곡을 성공적으로 초연한 후 엔에이치케이(NHK) 교육텔레비전에 방영되어 절찬을 받기도 했다. 1998년 '차세대 음악계를 이끌어가는 우수한 지휘자'상인 '와타나베아키오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렸다. 그는 일본인들의 학대 속에서도 일본 국적을 취득하지 않아서 민족정신이 살아있는 재일동포 지휘자로 인정받고 있다.

▲ 윤이상 서거 10주년 추모음악회를 연 윤인숙
ⓒ 김영조
윤이상 추모음악제를 열었던 윤인숙씨는 이번 음반 발매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선생님께서 그렇게 애틋해하시던 조국에 자유스런 몸으로는 오시지 못했지만 이렇게 연주회와 음반으로나마 오실 수 있어서 다행이다. 선생님은 일부의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분이 아니라 민족 전체가 껴안아야할 분인 것은 분명하다. 이웃집 아저씨처럼 편안한 그리고 민족을 끔찍이도 사랑했던 선생님이 돌아가셨어도 우리는 그 편안함과 민족 사랑을 음반에서 찾아보았으면 한다."

윤이상! 그는 우리의 영원한 민족음악가다. 비록 그는 우리 곁에 있지는 못하지만 음반으로 우리 곁에 머무르며, 통일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많은 이들이 아니 우리 온 겨레가 윤이상의 '서주와 추상'을 들을 때 핵전쟁은 사라지고, 6자회담의 성공과 함께 우리의 통일이 성큼 앞으로 다가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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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