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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급우 폭행치사로 아들을 잃은 홍권식씨가 18일 아침 부산 J초등학교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지난 1일 부산 G중학교 교실에서 급우한테 폭행을 당해 5일 사망한 고 홍아무개(14)군의 아버지 홍권식(46)씨가 사건 이후 처음으로 1인시위에 나섰다. 18일 오전 8시 10분부터 40분까지 부산 J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인 것.

이 초등학교는 죽은 홍군과 가해자 C(14·구속)군이 나온 학교다. 홍씨가 이 곳에서 1인시위를 한 것은 지난 15일 밤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결핍이 부른 범죄의 늪-아동 범죄자) 프로그램이 발단이 됐다.

이 학교 K교사는 이 프로그램에 출연, C군이 '상도 많이 받았고 모범생이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부산지역에서는 방송되지 않는다. 그러나 홍씨가 뒤늦게 방송을 본 뒤 '발끈'한 것이다.

부친 "관련없는 교사가 왜 가해자 미화하나"... 교사 "홍군 얘기도 했다"

▲ 홍권식씨가 J초교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자 등교생들과 인근 주민들이 와서 내용을 읽어보기도 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홍씨는 K교사가 C군을 미화하는 발언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홍씨는 "K교사는 우리 아들과 C군의 담임도 아니었다"면서 "애들이 이 초등학교를 나왔다는 것 외에 직접 관련 없는 K교사가 왜 가해자를 미화하는 발언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홍씨는 "앞으로 재판에서 C군한테 유리하게 작용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홍씨는 이날 흰 천에 '살인자 미화한 발언, K 여교사는 각성하라. 학교에서 많은 상을 받은 학생은 살인을 해도 용서가 되는 것입니까? 살인자를 미화하는 이런 발언은 피해자 홍아무개군과 그 가족을 두 번 죽이는 일이다'라는 글을 써서 몸에 둘렀다.

또 "살인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크나큰 죄"라면서 "교육자 신분으로 살인자를 미화시키는 발언을 서슴치 않는 K교사는 각성하라"고 홍씨는 촉구했다.

홍씨가 학교 정문에서 1인시위를 벌이는 동안 등교하는 학생들과 인근 주민들이 몰려와 글을 읽어보기도 했다. 학교 앞을 지나던 일부 차량 운전자들은 창문을 열어 '힘 내세요'라며 홍씨를 격려했다.

홍씨는 이날 1인시위가 끝난 뒤 경찰관 안내로 J초등학교를 방문, 교장과 K교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성장기 중심으로 방송이 나가서..."
<그것이 알고싶다> 담당PD 해명

<오마이뉴스>에 기사가 게재된 다음날인 19일 오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담당 PD는 <오마이뉴스>에 연락해 "K교사의 발언이 C군을 두둔하는 내용은 아니었다"며 당시 보도 경위와 상황을 설명했다.

담당 PD에 따르면 K교사는 SBS의 취재 당시 "홍군과 C군은 친구였고 초등학교를 다닐 때 C군이 상을 받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학생의 정신감정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K교사의 발언 중 C군의 성장기 부분을 중심으로 방송이 나가고 '지금은 정신감정이 필요하다'고 한 부분은 방송되지 않았다는 것. / 김덕련 기자
홍씨는 "해당 교사를 만났더니 아직도 자신의 발언이 왜 잘못됐는지 모르고 있었다"며 "J초등학교 앞에서 1주일간 1인시위를 한 뒤 해당 교육청앞 1인시위와 함께 법적 조치도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J초등학교 교감은 "K교사는 홍군과 C군의 담임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K교사는 "C군을 옹호하듯이 한 말이 아니며, 홍군에 대해서도 말을 많이 했다"면서 "(방송 제작진이) 녹음과 녹화를 안 한다고 약속했는데, 황당하다"고 말했다.

녹음·녹화를 안 하기로 약속했다는 K교사의 주장에 대해 <그것이 알고 싶다> 담당 PD는 "사건의 본질도 아니며 지엽적인 부분이기에 답변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실천하고 싶었다"
급우폭행으로 사망한 중학생이 쓴 '나의 묘비명'

▲ 홍군이 <도덕> 공책에 써놓았던 '나의 묘비명 쓰기' 내용.
ⓒ윤성효 기자

"여기에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과 자신을 아끼지 않고, 오직 나 말고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몸소 실천하는 홍OO이 묻히다."

지난 1일 교실에서 급우한테 맞아 5일 죽은 부산 G중학교 홍아무개(14)군이 <도덕> 공책에 써놓았던 '나의 묘비명'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이를 몹시 실천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홍군이 남겨놓은 일기장과 연습장, 공책 속에서는 '남을 위함’이 그대로 배어있었다.

홍군은 초등학교 때부터 봉사활동을 많이 했으며, '봉사왕’ 상과 '착한 어린이' 상도 받았다. 유품 속에는 학급지도위원 임명장, 모형항공기대회 우수상장, 바둑 6급 인정서 등도 나왔다.

홍군은 중학교 때 방송반 활동을 했다. 방송반원들이 생일날 준 카드를 보면 "내보다 덜하지만 잘 생겼고 착한 편이다" "친구들이 놀려도 그냥 즐겁게 받아주는 네가 참 부러워" "넌 친구를 잘 배려해 줘서 좋아" "OO아 내가 괴롭혀도 그냥 참는 네가 고맙다 친하게 지내자" 등의 문구가 적혀 있다.

교생이 "방송반이라서 아침에도 못 보고 오후에도 OO와 자주 눈 맞추지 못한 게 아쉽다, OO이 지금보다 더 밝게 웃으면서 생활하면 살아가는데 좋은 요소가 될 것 같다"라고 쓴 쪽지도 있다.

홍군은 또래에 비해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비판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기장과 스크랩북에는 신문에 난 태풍피해 사진과 백두산 관광사진을 모아 두기도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일기장에는 '미국이 우리나라에 한 짓'이라는 제목의 글과 그림이 있다. "SOFA 협정, 우리가 아주 불리하게 되었다-병력지원"이라고 써놓다. '이것 잊지 말아야 할 것'이란 대목에는 '쇼트트랙, 김동성-오노' '미선이 효순이' 문구와 함께 쇼트트랙 장면과 장갑차를 그려 놓았다.

부모 양해로 홍군의 유품을 살펴본 김건찬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상임이사는 "남을 배려하고 봉사로 실천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특히 매달 4만원의 용돈 중 1만원을 양로원에 보냈다고 하는데 그늘진 이웃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아이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홍군의 유품에서 평소 '왕따'나 상습폭력을 당했다는 직접적 기록은 이날 발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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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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