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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민의 장'을 수상한 고 이형우 할아버지.
ⓒ 진안군
"처음엔 그저 호기심 많은 네티즌들이 장난삼아 올리는 글 정도로 알고 무시하곤 했는데 고인이 된 지금도 '딸녀 할아버지'라는 포털 사이트 글들이 지워지지 않아 곤혹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최근엔 미국에 사는 친구가 이를 보고 안부 전화를 했는데 어찌나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던지…."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언젠가부터 인삼뿌리를 들고 큰 너털웃음을 지어보이는, 한 전형적인 시골할아버지가 전북 진안군이 매년 선정해 수상하는 '군민의 장'을 받았지만 이미 고인이 된 할아버지 대신 큰 상을 수상한 가족들은 못내 아쉬운 표정이다. 이제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 사진이 인터넷에 떠돌면서 여전히 '딸녀 할아버지'로 불리고 있기 때문이다.

올 7월 5일 82세의 나이로 타계한 그는 지금도 국내 주요 포털 사이트마다 '딸녀 할아버지'를 입력하면 환한 웃음을 짓고 나타난다.

고인이 된 이형우 할아버지 사진이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오르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3년. 당시 딸기를 들고 야릇한 표정을 짓는 여성의 사진이 한 갤러리 사이트에 올라오면서 이름 모를 이 여성에게 '딸녀'라는 별명이 부여되더니 순식간에 포털 사이트에선 '딸녀가 누구인가', '한국인인가 아닌가', '합성인가 아닌가'하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며 호들갑을 떨던 때였다.

'딸녀' 열풍에 휩싸여 온갖 별명 난무... 유명해지긴 했지만 '찜찜'

▲ '군민의 장'을 대신 수상한 아들 이상준씨. 더이상 "'딸녀 할아버지'라는 표현은 쓰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 박주현
지상파 방송 매체들까지 분위기에 편승해 덩달아 호기심을 자극하는 프로그램을 내보냄으로써 '딸녀' 열풍은 '포털의 폭력' 또는 '유머에 가려진 성희롱', '남성의 폭력' 등이란 비판을 낳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2003년 10월, 인삼을 든 한 할아버지 사진이 갑자기 등장하더니 네티즌들 사이에서 할아버지 이름 붙여주기 경쟁이 벌어져 삼을 든 할아버지 즉 '삼옹'이라고 부르거나 '딸옹'(딸녀 할아버지 지칭), 딸녀와 대비시킨 '인남'(인삼든 남자 지칭)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그 별명과 함께 사진이 무차별으로 사이트에 나돌기 시작했다.

그 결과, 지금도 인삼을 든 할아버지의 모습이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까지 고인을 평소 알고 지냈던 사람들까지 가족들에게 안부를 묻곤 한다고 한다.

인터넷 포털로 원치 않는 유명세를 치르기는 했지만, 이형우 할아버지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8년 진안군의 인삼 민간홍보사절로 활약하면서부터다.

1988년 임실 대리초등학교 교장으로 43년간의 교직생활을 마감한 이형우 할아버지는 1998년(당시 76세) 그의 긴 수염을 인상 깊게 보았던 군청 담당자로부터 진안인삼을 알리는 홍보 사절이 되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이에 할아버지는 선뜻 사진촬영에 응하였고, 그 사진이 전라북도 주최 전북 관광 사진 전국공모전에서 은상을 수상하면서 진안과 진안홍삼(인삼)을 알리는 홍보전담 인물로 통하게 됐다.

그 이후로, 청정 지역 이미지를 잘 드러내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친근감을 갖게 하는 할아버지 사진은 전국의 홍보관이나 진안군 주요 도로변과 관광지, 버스승강장 등과 심지어 전주시가 주최하는 약령시제전 표지모델, 진안 관광안내지도 표지모델 등 각종 홍보물에 게재돼 진안을 알리는 홍보역할을 톡톡히 수행해 왔다.

"영원한 인삼 홍보대사로 남기 위해선 포털내용 수정돼야"

그러나 아버지가 사진모델로 활약하게 된 사연을 들려주던 아들 이상준씨는 마음이 무거워 보였다.

진안군청 관계자 역시 "사진이 인터넷에 알려지면서 최근 일본에서도 문의가 오는 등 진안과 진안인삼을 홍보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딸녀 할아버지'라는 표현만은 더 이상 하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82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해 생전의 정겨운 모습을 직접 볼 수는 없지만 긴 수염과 선한 눈매, 그리고 큰 웃음을 짓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사진으로 남아 진안군의 특산품인 인삼과 홍삼을 알리고 있는데 고인에게 더 이상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는 포털 사이트들의 저속한 표현을 삭제하거나 수정해 주었으면 하는 게 바람이지만 그리 쉽진 않겠죠?"

고인이 된 할아버지가 '군민의 장'을 수상한 이날 행사장에서, 고인의 가족들과 공무원들은 취재기자들에게 이구동성으로 이같은 질문을 던졌다.

이날 전북 진안군은 고인이 진안 인삼의 홍보사진을 통해 진안 인삼의 세계화와 농업인의 소득증대 등 진안 인삼의 위상을 드높인 공을 인정해 '군민의 장'을 수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진안군청에서 열린 시상식에는 고인 대신 아들인 이상준(현 전북 농협 본부장)씨와 가족들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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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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