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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혈변을 보며 죽어라 짖기만 했다던 복댕.
ⓒ 박봄이

유기견 기사를 쓰기 시작하면서 많은 의견과 격려를 받았다. 반면, 개새끼들 신경 쓸 시간에 사람에게나 신경 쓰라는 욕이 실린 쪽지도 받았다. 물론 기사를 쓰면서 내가 너무 집착을 한다거나 유별나 보이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생각도 했다. 하지만 내가 기사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개'만 사랑하자거나 사람보다 개가 우선이라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아주 간단하고 기본적인 '생명'에 관한 이야기다.

호기심이 관심으로, 그리고 애정으로...

내겐 두 마리의 유기견 출신 애완견이 있다. 기사를 쓰기 위해 자문을 받았던 네이버 유사모 카페 회원분의 소개로 만난 녀석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처음엔 '개 한 마리 키우고 싶다'는 생각에 그 카페를 찾았다. 그 곳에서 난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처참한 광경들을 목격하게 됐다.

몇 년을 키운 개를 무슨 심술이었는지 사지를 다 꺾어서 버렸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밤새 심란한 마음에 잠을 뒤척였고, 동네 꼬맹이들이 암컷 유기견의 배를 갈라버렸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분노에 치를 떨기도 했다. 여러 가지 사례들을 목격한 뒤 내 생각은 바뀌었다. '한 생명을 거둬야겠다'로 말이다.

독서실 쓰레기통을 뒤지다가 구조되어 병원 케이지속에서 몇 달간 생활하고 있던 복돌이.
복돌이는 케이지에 갇혀 있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는지 피가 섞인 대변을 보며 처절하게 짖고 있었으며 2~3일만 있으면 보호소로 넘어가 안락사를 당해야하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 솔직히 처음엔 복돌이 사진을 보고 실망했지만 같이 살아 정들면 예뻐 보이겠지 하는 마음에 임시보호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거리 출신 복댕, 더 이상 쓰레기통은 뒤지지 않아도 돼!

난 복돌이를 안고 집으로 들어서면서, 악몽을 꾸는 것인지 잠꼬대를 하다 경기를 하며 놀라 일어나는 복돌이의 처량한 눈빛을 보면서, 쓰다듬어주려고 손을 내밀면 때리는 줄 잘못 알고 두 눈을 질끈 감는 그 녀석을 보면서 결심했다. 명품을 휘감아 키워주지는 못해도 모진 짓은 낳겠노라고. 더 이상 쓰레기통을 뒤지게 하지도, 사람들의 발에 채이게 하지도 않겠노라고 다짐했다.

▲ 첫 날, 눈치만 보며 잔뜩 굳어있던 복댕.
ⓒ 박봄이
한가득 복을 담고 들어온 녀석이란 뜻의 '복댕이'라는 이름도 새로 지어줬다. 그리고 어린왕자와 여우가 그랬듯 정을 주며 서로 길들여져 가고 있었다. 그 녀석은 더 이상 경기를 하며 잠에서 깨어나지도, 손을 뻗으면 움츠려 들지도 않았다. 내가 힘들어하거나 눈물을 흘리고 있으면 다 이해한다는 듯 어른스러운 표정으로 내 무릎에 팔을 올리고 내 눈을 빤히 바라보면서 나름의 위로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복댕이가 안정을 찾을 때쯤, 복댕이를 내게 안겨주었던 구조자분이 또다시 임시보호 요청을 하셨다.

"이 녀석은 아주 새끼 때 유기 됐는데 동물병원에서 실험견으로 쓰였어요. 항문낭, 중성화, 성대 수술까지 다 되었고요, 꼬리는 두고두고 실험하려고 했는지 반만 잘랐네요. 하루에 세 네 번씩 채혈을 해서 빈혈기도 있고 5kg도 안돼요. 병원에서 탈출은 했는데 상태가 안 좋아요. 많이 약해서 다른 개들 많은 집보다는 복댕이처럼 순댕이가 있는 집이 필요해요."

▲ 복댕이에 비해 너무 마른 삼식이.
ⓒ 박봄이

짖지는 못해도 마음은 통해요

당시엔 복댕이에게만 정을 주고 싶어서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구조해 온 15마리의 유기견들을 돌보는 구조자분도 계신데'라는 생각에, 그 분께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녀석을 데리고 있기로 했다.

녀석이 바로 삼식이었다. 말라비틀어졌다는 표현이 딱 맞을 정도로 뼈밖에 없었고 작고 볼품없었다. 녀석은 복댕이보다 더 주눅이 들어 있었고 사람에게 안기는 방법도 몰라 안아 주려하면 뻣뻣하게 굳었다. 또 지금껏 병원 케이지에서 지내서 그런지 화장실에 대한 개념도 없었다.

▲ 언제나 사이 좋은 형제처럼.
ⓒ 박봄이
삼식이가 집에 온 뒤로 아침에 일어나면 여기저기 대소변이 쌓여 있었다. 난 하루 종일 삼식이의 배변훈련을 하는 데에 시간을 보냈다. 삼식이 딴에는 낯선 곳에 적응하기도 버거운데 처음 보는 여자가 이리저리 쫓아다니며 볼일 보는 것을 감시하는 것이 마음 편할 리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지치고 싸우고 난리를 피우기를 두 달, 삼식이는 내 눈치를 보더니 슬금슬금 신문지 위로 올라갔고 내 눈을 빤히 바라보며 신문지에 쉬를 했다. 마치 '나도 이제는 안다'하는 표정으로.

울었다. 다 큰 처자가 신문지 위에 볼일을 보고 있는 강아지 한 녀석 때문에 울었다. 세상에 안 되는 일은 없구나, 말 못하는 동물이라도 마음이 통하는구나 하면서. 고맙고 대견하고 뿌듯했다.

극과 극, 그러나 너흰 가족이란다

꼬질꼬질 거리를 헤매며 사람들의 발길질에 멍이 들었을 복댕이와 태어나 본 것이라곤 차가운 수술실밖에 없는 삼식이. 이 극과 극을 달리는 두 녀석이 서로를 인정하며 받아들이는데 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출신도 기질도 어느 것 하나 닮은 구석이 없지만 삼식이는 내가 말썽피우는 복댕이를 가둬두면 안절부절 못하다가 나와 복댕이 사이를 왔다 갔다 하다가 내게 '선처'를 호소하듯 앞발로 나를 긁어댄다. 먹을 때 건드리면 주인도 물어버리는 것이 개라고들 하는데 복댕이는 간식을 주면 자신이 먼저 먹고 난 후라도 삼식이가 먹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한다. 시도 때도 없이 서로를 핥아주며 어디를 가도 함께 한다. 얼마 전에는 드디어 첫 미용을 실시했다. 삽살개 같은 모습이 좋았지만 한번쯤은 다른 개들이 누리는 것을 해주고 싶었다.

▲ 과거의 먼지를 털어내듯,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자.
ⓒ 박봄이

"이 털이 너희가 힘들었던 시기의 마지막이란다"

미용 후 유기견이었다는 것을 상상치 못할 정도로 예쁜 모습과 그늘 없는 눈망울을 갖게 된 녀석들을 바라보며 그동안 기사를 쓰면서 조금씩 꺾였던 자신감이 다시 회복되는 듯했다.

그 어떤 생명도 소중히, 고통 없는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 가는 순간까지 조용히 편안히 눈을 감아야 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개를 모두에게 가족으로 받아들여 달라거나 개고기를 먹지 말라거나 개도 사람처럼 인정해 달라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거둔 생명은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인간이라는 이유로 그 어떤 생명도 하찮게 대하면 안 된다는 것. 생명존중, 생명에 대한 책임감. 바로 그것뿐이다.

▲ 짜잔~!!! 복댕이와 삼식, 이젠 초롱초롱하죠?
ⓒ 박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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