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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양(罷養)만큼 구조자와 유기견을 지치게 하는 것은 없다.

구조자들은 유기견을 분양할 때 보통 농장이나 애완견센터 등지에서 분양하는 것보다 훨씬 까다로운 심사를 한다. 구조자들의 분양 목적은 한번 버려진 유기견들을 다시는 버려지지 않을 가정으로 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기견 분양 심사기준은 현재 가족구성원들의 태도와 미성년자 여부, 개를 키우면서 발생하는 비용 충당이 되는지의 기본 수입, 과거 키웠던 개들의 행방 등에 대한 전력(前歷) 등이다.

▲ 수 없이 버려지고 또 다시 파양되는 유기견들과 고양이.
ⓒ 네이버 유사모
특히 미성년자의 경우 부모의 동의가 필요하다. 많은 가정에서 어린 아이가 한순간의 호기심으로 유기견을 입양했다가 관심이 시들해지면 그 부담이 부모에게 고스란히 넘어가게 된다. 그렇게 되면 개를 좋아하지 않는 부모는 개를 짐으로 여겨 다시 버리거나 방치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므로 미성년자의 경우 분양을 피하곤 한다.

그리고 흔히들 "저는 개도 많이 키워봤답니다"라고 소개를 하곤 하는데 '많이' 키운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얼마나 '오래' 키웠느냐가 중요하다. 그래서 유기견을 분양할 때는 개를 키워보았다는 이들에게 그 전의 개들은 어찌되었는지를 꼼꼼히 물어보고 이곳저곳으로 보낸 적이 있다면 분양 제외대상이 된다.

그러나 심사 조건이 충족했다 하더라도 파양이 되어 돌아오는 경우는 수도 없이 많다. 그렇다면 과연 그토록 험난한 길을 걸어온 유기견들을 입양해 가 다시 파양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0.5kg 차이로 생각보다 크다고?

미니어처 슈나우저 종의 '핑이'는 구조자가 운영하고 있는 가게로 마치 제 살길 찾기라도 하겠다는 듯 떳떳하게 들어와 구조가 된 영리한 개였다. 이후 핑이는 필리핀으로 입양을 가기로 되어 있었으나 한국의 다른 입양자가 기필코 분양을 받겠다고 하여 한국의 입양자에게 분양을 했다.

▲ 결코 크지 않음에도 크다는 이유로 파양되어 결국 병을 얻고 세상을 뜬 핑이.
ⓒ 네이버 유사모
입양한 지 1주일 후, 입양자는 당장 핑이를 다시 데려가라고 했다. 영문을 알 수 없었던 임시보호자들에게 입양자는 핑이가 생각했던 것보다 크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핑이의 몸무게는 5kg 가량 되었다. 5kg에서 15kg까지 나가는 중소형 견에 속하는 슈나우저 종을 감안해 보자면 핑이는 결코 많은 몸무게가 아니었다.

직접 보고 확인하고 입양을 해가고 1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함께 생활했음에도 단지 '크다'는 이유만으로 유기견을 다시 파양한다는 것. 처음부터 한순간의 동정심으로 해본 입양일 뿐이라는 결론이다.

결국 핑이는 고단한 유기견 생활 후 임시보호와 파양을 거듭하면서 마지막 임시보호자의 품으로 돌아온 후 하루만에 발작을 일으켜 세상을 떠났다. 개라고 하지만 연속적으로 주인이 바뀌고 환경변화를 겪으면서 면역력이 급격히 약화되어 홍역이 발병한 것이다.

▲ 요크셔 윤이, 머리가 약간 큰 것이 매력 포인트.
ⓒ 네이버 유사모
요크셔테리어 '윤이'의 경우 요크셔 평균 몸무게인 3~3.5kg을 약간 넘어선 4kg이었음에도 역시 크기가 크다는 이유로 입양 30분만에 파양되었다. 3.5kg와 4kg의 차이를 어찌 알아낼 수 있을까. 윤이의 경우 몸에 비해 머리가 약간 크긴 하지만 애정이 있다면 그것이 오히려 매력 포인트로 생각될 수 있지 않을까.

언젠가부터 티컵 강아지라고 하는 초소형 강아지들이 유행을 타기 시작했고 개의 미덕(?)은 작은 것이라는 이상한 사상이 팽배해지면서 주관적인 기준으로 조금만 크다고 느끼면 가차 없이 버리고 더 작게 키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구조자와 임시보호자들을 가장 분노케 하는 파양 이유, 바로 '생각보다 크네요' 이 한마디다.

"얘는 똥오줌 못 가리네요"

파양 사유 중에 가장 많은 것이 바로 배변 문제다. 유기견의 경우 많은 수가 배변훈련이 되어 있지 않지만 입양자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되어 있기를 바라곤 한다. 하지만 하나의 가족을 새로 맞이하는 데는 노력이 필요하다.

말티즈와 시츄의 믹스견인 '고동이'는 동구협 보호소 출신이다. 믹스견이라는 이유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가 구조자들에 의해 밖으로 나오게 되었고 임시보호를 거쳐 입양도 가게 되었다. 그러나 이틀 후 바로 파양이 되었다. 이유는 소변은 배변패드에 보지만 대변을 밖에다 본다는 것.

▲ 보호소 생활로 배변 훈련을 받을 틈도 없이 입양을 간 후 파양된 고동이
ⓒ 네이버 유사모
시츄 '하나'는 남구로 지역에서 떠돌다가 구조가 되었는데 입양이 되어 배변을 못 가린다는 이유로 하루 동안 묶여 있다가 파양이 되었다. 묶여 있는 동안 갑작스러운 환경변화와 묶여 있다는 스트레스로 설사를 시작하여 온 몸에 범벅을 한 채로 다시 임시보호자의 품으로 버려진 하나. 현재 하나는 완벽한 화장실 매너로 칭찬이 자자하다. 임시보호자만의 비결이 있는 걸까, 아니면 정성과 노력의 결과일까.

▲ 하루만에 배변 훈련이 되는 강아지가 어디있나요? 라고 묻는 듯 하다.
ⓒ 네이버 유사모
결론부터 말하자면 배변훈련이 안되는 개는 없다. 주인이 어떤 방식으로 훈련을 시키느냐에 따라 기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반드시 성공하는 것이 배변훈련이다. 검색을 해보면 꽤 많은 훈련방법이 나열되고 기간을 가지고 천천히 훈련을 하다보면 주인의 노력에 반응을 한다. 하지만 새로운 집과 주인에 적응을 하는 데도 1~2주일 가량 필요한데 단 며칠만에 배변까지 성공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너무 무리가 아닐까.

참고로 현재 내가 입양 전제 임시보호를 하고 있는 슈나우저 '삼식이'의 경우 병원 케이지 속에서 평생을 살아서 화장실 개념이 없었다. 이런 삼식이도 약 2달간의 훈련 끝에 현재는 완벽한 화장실 매너를 보여주고 있다. 그 지루한 2달이라는 기간 동안 우리는 많이 싸웠고 그만큼 정이 들었다. 성공했을 때의 기쁨은 해본 자만이 알 것이다.

키운다는 의미보다 함께 살아가야 하는 가족이기에 서로를 위한 노력과 인내는 기본적으로 가지고 입양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하루 종일 짖어요!!!

▲ 정이 그리워 사람에게만 기대는 토리.
ⓒ 네이버 유사모
'토리'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유기견이 되었으며 구조된 후 불과 한두 달 사이에 무려 5회 이상 임시보호처를 옮겨 다녀야 했다. 이 사이 잦은 환경 변화로 예민한 성격을 얻게 되었고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하여 짖기 시작했다. 이것은 너무나 어릴 때부터 떠돌면서 사람 손을 탄 까닭에 사람을 부모로 생각하는 이유였다. 더군다나 질투도 많아 다른 개가 주인에게 사랑을 받으면 그것도 못 견뎌했다. 그러다 입양을 가게 되었는데 입양간 곳에 많은 강아지들이 있는 관계로 점점 짖음이 심해져 정신이상 취급까지 받고 안락사를 고려하는 상황까지 가게 되었다. 입양자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으나 결국 감당이 어려워져 파양되었다.

파양이 되고 임시보호자의 품으로 돌아온 토리는 한동안의 히스테리 시기가 지난 후 몰라보게 정상적인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개에게 짖는 것은 본능이다. 이 본능을 사람과 살면서 억누를 뿐인데 이 또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제어가 가능하다. 일단 원인이 있다면 그 원인을 제거해주어야 하고 이유 없는 헛짖음의 경우 분사형 목걸이나 지속적인 명령 훈련을 병행함이 좋다. 시중에 나와 있는 전기를 이용한 짖음 방지기나 성대 수술은 고통을 줄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로 인해 더욱 삐뚤어진 성격이 될 수도 있다.

또한 환경적으로 개의 헛짖음이 문제가 된다면 차라리 입양을 하지 않기를 권한다. 짖지 않는 개는 없다. 노력도 없이 처음부터 안 짖는 개를 원한다면 인형가게에서 저렴하게 구입 가능한 봉제 인형을 권하고 싶다.

파양의 이유야 만들면 수백 가지

털이 많이 빠진다는 이유로 파양된 '모글리'. 모글리는 SBS의 모 동물 프로그램에도 소개가 된 스타 견이었지만 환절기 털갈이의 장벽을 넘지 못한 채 임시보호자의 품으로 돌아왔다. 입양 전에 털 빠짐이 심한 종과 그렇지 않은 종에 대한 확인은 해보았을까. 그리고 봄, 가을에는 사람도 털갈이를 한다는 것을 알까.

▲ 환절기 털빠짐과 기존 개와 어울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파양된 모글리와 삐삐.
ⓒ 네이버 유사모
발바리 '삐삐'는 단 8시간만에 기존의 개와 안 친해진다는 이유로 파양되었다. 기존에 있던 개들과 어울리지 못한다는 이유도 꽤 많다. 주로 그러한 경우 입양 후 1주일 안에 돌아온다. 개들의 적응 기간은 1주일에서 2주일 정도 필요하다. 이 기간 동안 천천히 새로운 환경과 가족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노는 것 같지만 개들도 나름대로의 위계질서가 존재한다. 사람 눈에는 죽일 듯 싸우는 것 같아도 개들 세계에서는 신고식인 셈이다. 이 신고식을 인정하지 않는 집으로 입양이 된 경우 대부분 새로 입양된 유기견은 찬밥 신세가 된다.

이 외에 코를 곤다고 파양, 많이 먹는다고 파양, 대소변은 가리지만 양이 많다고 파양, 얼굴 보고 데려갔다가 못 생겼다고 파양, 휴가간다고 파양, 가족들이 마음에 안 들어 한다고 파양, 아이들이 싫증낸다고 파양, 돈 든다고 파양 등등.

유기견을 돕는 것은 한순간의 동정심이 아닌 신중한 선택

물론 애완견센터 등에서 분양을 받을 때도 심사숙고해야 하지만, 유기견의 경우 한번 혹은 여러 번 버려진 기억이 있기에 파양을 거듭하다 보면 성격장애가 오거나 스트레스를 받아 치명적인 병이 오기도 하므로 더욱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 지나치게 명랑하다는 이유로 파양된 또우너와 람보
ⓒ 네이버 유사모
구조자들은 동정심이나 안쓰러운 마음을 가져주는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입양은 단순한 동정심만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10여년을 책임져야 하는 중요한 일이므로 본인의 의사에 대한 스스로의 확인과 책임감, 가족들과의 상의, 환경적 상황을 고려하여 신중에 신중을 기해주기를 바란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만약 진심으로 원하지만 환경이 맞지 않을 경우 차라리 용품 지원이나 보호소 미용 봉사 등을 도와달라고.

자신이 키우다 유기하는 사람들만을 탓할 것이 아니다. 한번 버려진 생명을 최소한의 노력도 해보지 않고 또 다시 돌려보내는 것. 그 또한 유기견을 두 번 죽이는 일임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정보와 사진을 제공해 주신 네이버 '유기견을 사랑하는 모임'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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