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보호소에서 동물병원으로 옮겨 온 흰둥이(좌)와 흰돌이(우)
ⓒ 박병춘
참으로 많은 분들이 분노했습니다. 크게 걱정했습니다. 지난 6일, <오마이뉴스>에 쓴 '제 식구를 버리다니, 차라리 키우질 말든지'라는 글이 여러 포털사이트 톱기사에 오르면서 실로 많은 분들이 분노의 댓글을 달았습니다. 이제 마음 푹 놓으셔도 됩니다. 먼저 사진을 모두 보십시오. 그리고 나서 그동안의 사연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관련
기사
"제 식구를 버리다니, 차라리 키우질 말든지"


▲ 흰돌이 진료
ⓒ 박병춘
수의사는 진찰기록을 쓰면서 두 마리 개에게 흰돌이(말티즈, 2년 이상, 수놈), 흰둥이(말티즈, 2년 이상, 수놈)라는 가명을 지어 주었습니다. 새 주인이 나타나면 더욱 멋진 이름을 짓겠지요. 먼저 오른쪽 눈을 심하게 다친 흰돌이를 진찰했습니다.

▲ 각막궤양으로 오른쪽 눈이 심하게 다친 흰돌이
ⓒ 박병춘
흰돌이 눈은 심각합니다. 각막 궤양으로 눈동자가 움푹 패인 상태입니다. 8일 오전 수술을 하기로 했습니다.

▲ 피부병, 귓병이 심한 흰둥이
ⓒ 박병춘
흰둥이는 너무 못 먹어서 야윈 데다가 오랜 노숙 생활로 피부병과 귓병이 심각합니다.

▲ "흰돌아! 힘내라!"
ⓒ 박병춘
"흰돌아! 잠시만 기다리거라. 의사 선생님이 아픈 눈을 고쳐주실 거야."

▲ "흰둥이도 화이팅!"
ⓒ 박병춘
"흰둥아! 피부병부터 고치자. 귓병도 고치고 먹을 것도 듬뿍 먹자. 당장 미용부터 해야겠지?"

▲ 미용을 마친 흰둥이(좌), 눈 수술을 마친 흰돌이(우)
ⓒ 박병춘
8일 저녁, 저는 흰돌이(우)와 흰둥이(좌)가 입원해 있는 대전의 한 동물병원에 또 갔습니다. 흰돌이는 오전에 수술을 마치고 누워 있었는데, 저를 보더니 활기차게 일어나 꼬리를 흔들며 반겼습니다. 흰둥이는 사진을 찍을 수 없을 정도로 생동감이 넘쳤고 컹컹컹! 우렁차게 잘도 짖었습니다. 수술 경과는 어떤지 담당의사를 만났습니다.

▲ "어서 빨리 회복되어 밝은 세상을 보고 싶어요!"
ⓒ 박병춘
수술을 담당한 의사는 흰돌이의 경우 2주 이상 경과한 후 각막궤양으로 패인 부분이 잘 메워져야 실명 가능성이 없다고 합니다. 물론 수술은 아주 잘 되었다고 합니다.

▲ "제 더러웠던 몸 미용하느라 애쓰셨습니다. 여러분! 폼 나죠?"
ⓒ 박병춘
흰둥이는 오랜 떠돌이 생활로 이가 너무 많아 제거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답니다. 귀 진드기에 감염되어 귓병이 심합니다. 가장 심각한 것은 피부병인데 아마도 시간이 좀 걸려야 나을 것 같습니다. 밥도 잘 먹는 편이며 변 상태도 큰 문제는 없다고 합니다. 다행입니다. 흰돌이와 흰둥이로 거듭난 두 마리 개는 입원 치료를 마치고 마음 착한 새 주인을 만나 새 보금자리를 찾아 행복한 삶을 이어갈 것입니다.

이제 기사가 나간 지난 9월 6일부터 8일까지 사흘 동안 일어난 일들을 정리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9월 6일, 기사가 나간 후

자신이 찾고 있는 개와 무척 닮았다며 유기견 보호소 연락처를 묻는 메일이 쌓였습니다. 서울에서 부산에서 제가 살고 있는 대전으로 생김새와 보호소 위치를 묻는 전화도 많이 왔습니다. 데려가 키우고 싶다는 제안도 받았습니다. 미용 자원봉사를 하겠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기사가 나간 6일엔 메일 답장, 전화 통화를 하며 정신없이 보냈습니다. 기사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하나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중3 딸내미가 기사를 읽고 나서 저에게 던진 말이 육중한 무게로 의식을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아빠! 정말 실망했어! 아니, 저 정도면 무조건 데리고 병원부터 갔어야지 무슨 보호소야! 거기 보호소에 가면 제대로 살지 못한다는 거 텔레비전에서 봤다구! 아빠! 실망이야!"

9월 7일, 이틀째

동물보호소의 존재가 궁금했습니다. 어떤 시설에 어떻게 보호되고 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7일 오후, 저는 하루 일과를 마치자마자 떠돌이개 보호소로 달려갔습니다. 마침 떠돌이 개들을 돌보고 있는 보호소 김씨를 만났습니다.

김씨는 벌도 키우고 농사도 짓습니다. 물론 동네 이장 어른이기도 합니다. 워낙 개를 좋아하다 보니 구청의 위탁을 받아 애견보호소를 맡고 있습니다. 긴 대화를 나눴습니다. 이 보호소 이야기는 가슴이 너무 아파 후속 기사로 실으려 합니다. 중3 딸내미가 왜 아빠에게 실망감을 가졌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보호소에서 김씨와 대화하고 있는 동안 박정순(여, 대전시 갈마동 거주)씨가 전화를 했습니다. 박씨는 '일체의 진료비를 포함 두 아이를 책임지겠다'며 '두 아이를 보호소에 두지 말고 지금 당장 동물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박씨에겐 '두 마리 개'가 아니라 '두 아이'였습니다.

마침 보호소 김씨가 바쁜 일이 있어 저는 두 아이를 제 차에 싣고 동물병원으로 달렸습니다. 동물병원부터 갔어야지 보호소에 주었다며 아빠를 원망하고 있는 중3 딸내미가 생각났습니다. 동물병원으로 가는 동안 딸내미의 실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믿음에 마음 편했습니다.

박씨가 동물병원에 사전 부탁을 해놓아 곧바로 순조롭게 진료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걱정해주신 많은 네티즌들을 그리며 진료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집에 돌아와 딸내미에게 사진을 보여 주었습니다.

"아빠! 잘 했어! 좋아 좋아!"

9월 8일, 사흘째

6일과 7일에 비하면 메일과 전화가 뜸한 상태였습니다. 일과 내내 수술은 잘 되었을까 염려했습니다. 7일 오후 동물보호소에 다녀온 기억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전국 16개 시도가 한마음으로 나서서 보호시설을 개선하고 떠돌이 개를 온전하게 치료하여 분양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믿었습니다.

두 아이의 주인이 될 박정순씨를 아직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기쁜 마음으로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일과를 마치고 동물병원에 달려갔습니다. 흰돌이는 목욕을 하고 눈 수술을 마친 상태였습니다. 흰둥이는 그 더러웠던 털을 모두 밀어내고 미용을 했습니다. 그 눈빛이 참 고와 보였습니다.

오해와 편견

저는 이번 사건을 통하여 길거리에 떠돌아다니는 개들이 모두 버려진 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기견이라는 말을 쓰는 데 주저합니다. 모두가 버려진 개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많은 분들이 애완견을 잃어버린 후 애태우고 있는지 이해합니다. 주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가출한 개도 있고 순간적인 관리 소홀로 잃어버린 경우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개를 버리는 분도 많다는 것을 잘 압니다. 동물병원에 애완견을 맡겨놓고 연락처를 끊어 아예 찾아가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고 합니다. 애완견을 버리는 분께 이 말만은 다시 하고 싶습니다.

"애완견을 버리는 것은 자기 식구를 버리는 것입니다. 자신이 없다면 절대로 키우지 마십시오."

참 좋은 사람들

기사를 읽고 제게 메일과 전화를 주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분들 가운데 두 마리 애완견을 맡아서 키우겠다는 분들이 다수였습니다. 이제 두 아이가 퇴원하게 되면 박정순씨의 품으로 돌아가 새 보금자리를 만들 것입니다. 모두 축하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보호소 김씨의 전언에 따르면, 어떤 분들은 기사를 읽고 자신이 키우던 애완견과 닮았다며 수소문 끝에 보호소를 찾아왔다가 돌아간 적도 많았다고 합니다. 보호소 김씨는 쇄도하는 문의 전화와 일부 방문객들 때문에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어떤 분은 보호소 김씨가 많은 개를 보호하느라 힘들 거라며 김씨에게 후원금을 내겠다고 계좌번호를 알려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김씨에게 전화를 걸어 사연을 말씀드린 후 계좌번호를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저 그런 돈 안 받을래유. 그런 돈 받을라믄 벌써 이 일 그만뒀을 거유."

모두가 참 좋은 분들입니다. 참 좋은 인터넷 세상입니다. 두 마리 개가 아니라 두 아이가 거듭날 수 있게 염려해 주시고 힘 실어주신 네티즌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 저는 대전의 한 인문계 고교 교사입니다. 가을 깊어 우리 학생들이 쓸쓸해하거나 힘들어할 때 이토록 좋은 분들 이야기 학생들에게 들려주렵니다. 끝으로 두 아이를 선뜻 맡아주신 박정순씨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태그: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9,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