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방응모 전 <조선일보> 사장.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방응모 전 <조선일보> 사장이 일제에 기관총을 헌납했다는 자료가 공개된 데 이어 이번에는 방 전 사장이 일본 신(神)을 모시는 데 앞장섰다는 자료가 발굴·공개됐다.

이 자료에 따르면 방 전 사장은 '조선신궁 봉찬회'에 발기인으로 참여했는데, 이 단체는 1933년 11월 8일 결성된 뒤 아마테라스 오미가미(天照大神)를 비롯한 일본 신을 모시고 있는 조선신궁 운영을 위한 기금모금 활동 등을 벌였다.

조선인으로서 발기인으로 참여한 이는 방 전 사장 외에도 박영효, 한상룡 등 10여명이다. 방 전 사장은 박영효 등과 함께 이 단체의 고문을 맡기도 했다.

민족문제연구소(이사장 조문기)는 6일 이같은 내용이 담긴 '조선신궁 봉찬회 취지서·회칙·사업계획서'를 공개했다.

이 자료는 조선신궁 봉찬회가 인가받기 위해 조선총독부에 제출한 문서로서 발기인, 본부역원, 고문 명단이 실려 있다.

이처럼 잇따라 발굴된 자료들은 방 전 사장의 '자발적 친일'을 입증하는 것이다.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은 이와 관련, 6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조선신궁 봉찬회 같은 친일단체에 발기인 및 고문으로 참여해 모금운동에 앞장섰다는 것은 엄청난 친일행위"라고 지적했다.

관련
기사
'친일 망언' 방응모, 시민에게 봉변당했다

<조선>, 폐간 뒤 <동아> 절반 수준의 퇴직금 지급

한편, 같은 날 민족문제연구소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폐간(1940. 8. 10) 뒤 소속 직원에게 퇴직금을 지급한 내역이 담긴 일제의 경찰자료도 공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조선일보>는 <동아일보>의 절반 수준으로 퇴직금을 지급해 직원들의 원성을 샀다.

이번에 공개된 자료는 '폐간 양 언문지의 사원 퇴직금 지급상황에 관한 건'이라는 제목으로, 1940년 10월 15일 경기도 경찰부장이 경성지방법원 검사정(檢事正)에게 보낸 것. 다음은 이 문서의 주요 내용이다.

"동아일보사는 비교적 상박하후하게 지급해서 급사원도 상당액을 받아 만족했다. 그에 비해 조선일보사의 지급율은 전자에 대해 비교도 안될 만큼 소액인 까닭에 당시 일반사원은 조치에 불만을 품었다. 전 사장 방응모를 만나 구제책을 요구했으나 그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아 직공이나 배달부 같은 하급 사원 중에는 아직도 불평의 소리를 높이고 있어서 진상조사한 것이다."

[왼쪽] 조선신궁봉찬회 발기인 명단. 방응모 <조선일보> 전 사장도 포함돼 있다. [오른쪽] 폐간 뒤 <조선일보> 직원들에게 지급된 퇴직금 내역. 방응모 당시 사장에게 5562원 50전이 지급된 것이 나와있다. 사장 공용 교섭비 4055원도 그의 몫이다.
ⓒ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당시 <조선일보> 직원의 평균 퇴직금(665원 40전)은 <동아일보> 직원 평균 퇴직금(1224원 31전)의 절반에 불과했다.

특히 용인(배달)의 경우 <조선일보>는 6원, <동아일보>는 734원 85전으로 100배가 넘는 차이를 보인다. 사원·준사원·공장 종사원을 비교해도 <조선일보>는 801원 55전, <동아일보>는 1473원 99전으로 상당한 차이가 난다.

두 신문사의 퇴직금 총액은 <조선일보> 23만 2891원 90전(350명), <동아일보> 37만 968원 68전(304명)이다.

그러나 방 전 사장의 퇴직금은 두 회사를 통틀어 가장 많아 대조를 보였다. 그는 퇴직금으로 9617원 50전(퇴직위로금 5562원 50전, 사장 공용 교섭비 4055원)을 받았는데, 이는 <동아일보> 사원 중 가장 많이 받은 김연국 오오사카 지부장(7614원)보다 2000원이 더 많다.

당시 양사 퇴직금 문제를 조사한 일본 경찰은 "양사의 차이가 너무 심해 <조선일보> 사원의 불평은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된다"고 밝혔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