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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의 고운 햇살 아래 두 마리 말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습니다. 둘이 서로 외면한 채 서 있는 모습이 마치 서로 다툰 후 삐진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이제 그만 화 풀고 다정히 고개 맞대고 풀을 뜯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푸른깨비 최형국
드넓은 몽골초원에서 거침없이 달리며 화살을 날리고 칼날을 번쩍일 생각을 하며 몽골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리고 수도인 울란바토르에 도착하고 약 9시간 정도 끝없는 초원을 지나고, 바양고비 사막을 휘돌아 캠프장인 차강숨이라는 곳에 도착하였습니다.

차강숨이라 말은 하얀 절(white temple)이라는 뜻인데, 그 이름처럼 참 조용하고 평화로운 작은 시골의 모습이었습니다. 몽골의 전통 이동식 가옥인 겔이 드문드문 있고, 사람 보다 많은 숫자의 양떼들과 말들의 모습을 보며 입가엔 평화로운 미소가 가득했습니다.

▲ 풀을 뜯어먹다가 깜찍하게 혀를 낼름거리는 야크의 모습입니다. 숨 죽이며 몰래 살짝 다가가 그의 얼굴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푸른 초원 이곳저곳을 자유롭게 움직이며 풀을 뜯는 모습이 그림 같습니다. 그러나 모두 야생동물이 아니라 몽골 사람들이 유목으로 키우는 야크입니다.
ⓒ 푸른깨비 최형국
그때 말로만 듣던 야크라는 녀석을 만났습니다. 온 몸에 겨울 털 잠바를 걸친 듯 한 외형에 우적우적 풀을 뜯는 모습이 정말 신기하더군요. 제가 야크라는 동물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교육운동을 고민하면서 읽은 ‘오래된 미래 ’라는 책에서 야크의 배설물을 말려 불을 피워 생활하는 라다크인들의 이야기에서 였습니다. 물론 여기 몽골에서도 야크의 배설물을 이용하여 불을 피운다고 하더군요.

▲ 몽골의 이동식 가옥인 겔에서 불을 피울 때 사용하는 야크의 배설물입니다. 크기는 커 보여도 건조한 날씨 덕에 바짝 말라 아주 가볍습니다. 냄새도 거의 나지 않기에 부담 없이 땔감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야크의 배설물이나 말의 배설물은 땔감으로 시장에서 거래되기도 합니다.
ⓒ 푸른깨비 최형국
제가 몽골에 도착한 때가 7월 말인데 당시에도 낮은 무척 길었습니다. 심지어 밤 10가 넘었는데도 포근한 저녁의 모습을 느꼈습니다. 저 멀리 지평선을 향해 아스라이 사라지는 태양의 끝자락에서 동글동글 머리 맞대고 앉아 있는 겔을 보면서 이국의 땅임에도 결코 낯설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 안에 살고 있는 몽골 사람들이 순수하고 따스한 사람들이어서겠지요.

▲ 차강숨 지역에는 몽골 어느 지역보다 효능이 뛰어난 온천이 있습니다. 차강숨 캠프장에는 이처럼 노천 온천이 있는데, 낮에는 거친 벌판을 말을 타고 달리고 밤에는 별을 보며 온천욕을 즐길 수 있어 승마인들에게는 제격입니다. 차강숨은 과거 오고타이칸의 별장이 있을 정도로 유명했던 온천 지역이랍니다.
ⓒ 푸른깨비 최형국
특히 비록 여름이지만, 아침, 저녁에는 긴 팔을 입을 만큼 서늘한 곳이어서 겔안의 난로에 불을 피우면 저 멀리까지 꼬리 긴 연기가 우리 나라의 시골 마을을 연상시켜서 더욱 정감이 갔을 것입니다. 말을 타고 차강숨 지역을 벗어나 산악지대로 접어들자 곧 또 다른 정경이 펼쳐졌습니다. 마치 저 산허리 아래로 요들송을 부르는 스위스의 귀여운 꼬마들이 달려 나올 것 같은 정경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 차강숨에서 약 40킬로미터 떨어진 은드르상트 학교의 모습입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함께 있는 학교로 건물이 노후해서 보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합니다. 몽골의 아이들에게도 따스한 사랑이 전해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 푸른깨비 최형국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습니다. 수많은 들꽃들이 이산 저산, 이 골짜기 저 골짜기에 마치 불길이 번지듯 피어올라 말 그대로 장관을 이뤘습니다. 그 들꽃 사이로 달리는 것 자체만으로도 천상에서 뛰어 노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 무엇의 모습인지 무척 궁금하지요? 바로 겔 안에 있는 난로에 불을 피운 후의 모습입니다. 빨갛게 달아올라 긴 밤 내내 겔 내부를 따뜻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릴 적 화롯가에 군밤 구워 먹던 기억 새록새록 피어오릅니다. 몽골에서는 여름에도 밤의 기온이 떨어져 난로를 피우곤 합니다.
ⓒ 푸른깨비 최형국
차강숨에서 산을 넘고 평온을 지날 때 갑자기 하늘에서 소나기가 내렸습니다. 제가 마상무예를 하면서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이 폭우 속을 웃옷을 벗고 말과 함께 힘차게 달리는 것이었습니다. 기회는 이때다 싶어 달리면서 웃옷을 벗고 임전(臨戰)의 태세를 갖추자, 함께 동행에 나선 몽골아이도 따라서 웃옷을 벗어 함께 폭우 속을 힘차게 달려 보았습니다. 태어나서 그처럼 짜릿한 경험(?)은 처음이었습니다. 한 번 머릿속으로 상상해 보세요. 저 멀리 끝도 보이지 않은 평온 위에 소나기가 몰아치는데, 웃옷을 벗은 채 말과 함께 힘차게 달려가는 모습, 시쳇말로 '아트~' 그 자체였습니다.

▲ ‘차르샤’라고 하는 몽골의 메뚜기 모습입니다. 우리나라의 가을은 흔히 귀뚤귀뚤 하는 귀뚜라미 소리와 함께 여물어 가는데, 몽골의 여름과 가을은 차르 샤의 찌릭~ 찌릭~ 하는 소리로 영글어 갑니다. 그 소리는 몽골 초원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이야기 하듯 밤이 되도 쉼 없이 계속됩니다.
ⓒ 푸른깨비 최형국
중간 기착지인 강에 도착했을 때에는 온몸이 비에 젖어 천천히 한기가 들었습니다. 간단히 점심을 먹고 나니 하늘은 벌써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맑고 고운 빛이 가득했습니다. 빙하가 녹아 흘러내린 강물이라 무척 차가웠으나, 대한민국 건아의 이름으로 당당히 홀딱 벗고 강물에 뛰어들어 수영을 했습니다. 들어가는 순간 ‘아흐~ 잘못 들어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물은 차가웠습니다.

수영을 마치고 나니 함께 간 몽골 아이들이 상류 쪽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팔뚝만한 송어들이 물려 올라오더군요. 초원에서 이리 저리 흩어져 있는 야크의 배설물들을 주워다가 그 송어를 구워 먹었습니다. 마치 어릴 적 섬진강에서 고기 잡아 구워 먹던 생각이 아련하게 떠오르더군요.

▲ 몽골의 강에서 잡아 올린 송어와 이름을 알 수 없는 물고기입니다. 몽골의 강은 빙하가 흘러내린 물이라 무척 차갑지만 송어를 비롯한 다양한 민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습니다. 낚싯대 하나들고 몽골에서 세월을 낚아 보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일 것입니다.
ⓒ 푸른깨비 최형국
다음날 마상무예 훈련을 간단히 마치고 몽골의 산딸기를 따러 또 다시 말을 타고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늘 그렇듯이 그곳 또한 드넓은 초원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천에 흐드러지듯 피어오른 야생화를 보며 시원하게 달렸습니다.

그리고 "오땅 오땅~"(몽골어로 천천히)이라는 몽골 동행인의 이야기를 듣고 천천히 걸으며 주위의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마장에서는 결코 이런 경험을 할 수 없기에 아마도 그런 질주본능이 마음 속에서 피어올랐는지 모릅니다.

▲ 아스라이 해가 저물어 갈 때 저 멀리 언덕에서는 양떼들이 자유롭게 풀을 뜯고 있습니다. 마치 동화 속의 한 장면처럼 그 속으로 해가 저물면 양떼들은 저마다 애처러이 울음 울으며 주인을 기다리곤 합니다. 몽골의 그림 같은 초원을 보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어릴 적 꿨던 동화꿈이 별처럼 반짝이게 됩니다.
ⓒ 푸른깨비 최형국
그런데 몽고마도 살아 있는 생명이라 어느 정도 달렸으면 천천히 숨을 고를 시간을 줘야합니다. 과거 칭기즈칸이 몽골제국을 건설할 때에도 말에 대한 생각은 각별했습니다. 몽골제국의 최고의 무기는 속도전이었습니다. 그 속도는 반드시 말과 함께 이뤄진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상 유래 없는 광활한 영토에 약 30킬로미터 마다 역을 설치해 파발마를 갈아타는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이 30킬로미터라는 거리는 말이 습보(전속력으로 달리는 것)로 달릴 때 탈진하지 않고 최고의 속도를 낼 수 있는 거리입니다. 천리마라 하여 천리를 가는 말도 쉼 없이 천리를 갈 수는 없는 법이지요. 그 만큼 말을 소중히 아꼈기에 몽골제국은 번성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떠나는 그날까지 수수한 미소 잃지 않고 잘 챙겨 주었던 그들이 아직도 눈앞에 선합니다.

▲ 저녁노을에 잠긴 차강숨 캠프장의 모습입니다. 동글동글한 머리를 맡대고 앙증맞게 앉아 있는 모습이 참 귀엽습니다. 그 안에 살고 있는 몽골 사람들 또한 순수해서 더욱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내년에도 꼭 그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 푸른깨비 최형국
비록 제국의 영광이 오늘날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아직도 그들에게는 그토록 소중한 말이 있고, 대 초원이 있기에 그들의 삶은 여유롭습니다. 그 훈훈한 마음을 가슴속에 새기며 몽골여행의 마지막을 정리합니다.

덧붙이는 글 | 몽골의 차강숨 지역의 은드르상트 학교를 돕기위한 모임은 네이버카페 '아름다운 몽골'에게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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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깨비의 몽골문화 답사기는 총 10편으로 자연, 들꽃, 마상무예, 역사, 생활 등으로 연재되고 있습니다. 마지막 10편은 몽골여행때 찍은 사진 중 베스트 컷으로 이야기 하려 합니다.

최형국 기자는 무예24기보존회 마상무예단 '선기대'의 단장이며, 수원 무예24기 조선검 전수관장입니다. 중앙대학교 사학과 박사과정으로 몸철학과 무예사를 공부하며 홈페이지는 http://muye.ce.ro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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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의 역사와 몸철학을 연구하는 초보 인문학자입니다. 중앙대에서 역사학 전공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경기대 역사학과에서 Post-doctor 연구원 생활을 했습니다. 현재는 한국전통무예연구소(http://muye24ki.com)라는 작은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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